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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상혁 Apr 07. 2022

먼 곳에서 친구가 오니 기쁘지 아니한가.

4. 처음으로 다시.

 제주에 살다 보니 먼 곳에서 친구나 지인이 찾아올 때가 있다. 나만 보러 제주까지 오는 것은 아니지만, 겸사겸사 나를 본다고 해도 시간과 품을 들여 일부러 찾아와 주니 고마운 일이다. 일본에 살면서는 오랫동안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나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핑계로 그 외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이유를 갖다 붙여서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과 멀어졌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은 언제나 옳은 듯하다.

      

 짧으면 3년, 길면 10년 정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요 몇 달 사이에 한꺼번에 거의 다 만났다. 모두 내가 제주에서 머물게 되어 만날 수 있었다. 친구들은 친구들대로, 지인들은 지인들대로 나름대로 삶에 요령이 붙고 연륜이 쌓인 모습이었다. 그들이 나를 보는 시선은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얼굴에 주름이 많아지고, 나잇살을 먹었다고 생각했을까. 30대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했던 뱃살을 숨기느라 나름 애를 썼는데 친구들과 지인의 눈에 나는 어떻게 비쳤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긴 시간을 만나지 못해 어색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었다. 시간은 순식간에 깡통 캔이 압착된 것처럼 흘러가 우리들 사이에 있었다. 다사다난하고 지난한 시간들을 건너뛰어 우리는 마주 섰고 어떤 모습으로 헤어졌는지 기억도 못하면서 서로를 보며 웃었다. 웃음 뒤에 밀려오는 안도감은 내가 너의 친구이고, 당신의 지인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게 해 주었다.


 외국 생활에서 늘 외톨이라 생각했고, 제주에서도 아는 사람 없이 지내다 보니 사람이 그리워지고 애틋해졌다. 아무 인연이 없는 사람이 내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반가울 텐데, 이렇듯 멀리서 나를 보러 왔다는 사실은 더 말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었다. 네가 그리고 당신이 와서 기쁘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말보다 더 확실한 표정과 눈빛으로 똑똑한 친구들과 지인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었다.


 내게는 마음에 담긴 수많은 말들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재주가 부족하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면서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생각하면,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결국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을 꺼내기를 매우 어려워하는 사람일 거라 생각한다.


 친구들과 지인들을 보고, 사실은 울고 싶을 때가 더 많았다. 정말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끌어안고 나의 그리움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코로나 시대로 우리는 거리를 둬야 했고 주변 사람들 시선에 아주 오랜만에 보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바로 어제 만났다 헤어진 것처럼 태연하게 굴었다. 서로의 표정을 바쁘게 살피면서, 쏟아지는 그리움의 깊이를 한 번에 드러내는 것이 멋쩍어져서,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재빨리 숨 고르기를 해야 했다. 마스크 속에 가려진 복잡 미묘한 나와 친구들, 지인들의 표정이 궁금해지는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고마워졌다. 내가 모르는 어렵고 힘든 순간들을 다 건너와서 내 앞에 있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무척 애틋하게 느껴져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발견한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울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나를 만나러 바람을 가르고 제주까지 와서 내 앞에 서 있는지, 나는 복받쳤고 물밀 듯 밀려오는 행복함에 미소 지었다.      


 왜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을까? 내가 필요한 순간들이 분명 있었을 텐데, 나는 도망치듯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서는 외국 땅에서 나름 적응하고 살아보겠다고 한국말도 잘 쓰지 않았다. 허우적허우적 닥친 일들을 해결해가며 계절이 지나가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3월 ~ 4월이면 일본에 벚꽃이 그럴 수 없이 예쁜 데도, 나는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기보다 떨어져 있는 꽃잎을 바삐 밟으면서 지내왔다. 그 틈 사이사이 내 친구들과 내 지인들이 문득 보고 싶어 졌지만, 그때마다 약해지는 마음을 감추려는 듯 나는 더욱 옷깃을 여미고 일을 만들어서 하기도 했다.


 홀로 어두운 다다미 방에 앉아 쏟아지는 외로움을 고스란히 느끼며 나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릴 때가 있었다. 터치 한 번이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반가운 이름들을 하나씩 눈으로 읽어가며, 혼잣말로 화면 속의 이름들에 잘 지내느냐는 인사를 건넸다. 전화를 걸지 않았으니 아무도 내게 대답을 해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언제든 전화를 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위안이 됐다. 실제로 전화번호를 누를 적은 없었지만 그래서 무척 외로웠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용기를 내보자고 스스로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보고 싶었으면서, 그리웠으면서, 사실은 정말 만나고 싶었으면서, 아닌 척 센 척하는 것이 내게는 어울리지도 않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다는 걸 43살이 되고 나서야 겨우 조금 깨달은 것 같다.


 만나면 이리도 좋은 것을, 무엇에 쫓겨 내 좋은 사람들과 이토록 멀어졌는지 스스로 돌아보았다. 제주 바닷바람에 몸을 맡기며 내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시간은 순식간에 깡통 캔을 압착한 것보다 더 빠르게 흘러간 듯했다. 술이 좀 취하고 서로의 흉금을 어느 정도 풀어놓으면 어김없이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무도 묻지 않았지만, 우리의 헤어짐이 꽤 길어질 수 있다는 걸 서로 잘 알고 있기도 했다. 물리적인 이별이 눈앞에 닥쳐서야 서로 끌어안으며 그동안의 그리움을 한꺼번에 쏟아놓는 친구들과 지인들. 솔직한 감정 표현은 늘 그렇듯 어렵다. 그래도 나는 이런 이들이 있어서 숨 쉬기가 조금 편해지고 때로는 평온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제주에 와서 알았다.   

  

 내가 제주에 오지 않았다면, 나는 이들의 소중함을 잘 몰랐을 것이다.      


 지금 제주는 온 사방에 봄기운이 넘치고 있다. 드넓은 제주 들판에는 봄꽃들이 한창이다. 생각도 하지 못한 또 다른 이들이 나를 보러 (–여러 가지 일로 겸사겸사-) 제주로 온다고 한다. 이들이 내게로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영화를 드디어 보게 되는 마음처럼 들뜬다. 나만 보러 오는 것은 아니지만, 나를 꼭 만나야 제주를 다 보고 가는 것처럼 말하는 친구들과 지인들을 보면서 봄바람이 제법 따뜻해졌다는 걸, 그러면서 위축됐던 내 마음에도 따뜻한 봄바람이 깃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봄이면 어김없이 피는 봄꽃처럼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늘 내 곁에 있었다.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것도 모두 내 마음에서 일으킨 작용 일지 모르겠다. 봄꽃은 잠깐이지만 봄꽃이 남긴 향기롭고 싱그러운 여운은 오래도록 이어지는 것처럼 내 친구들과 지인들 역시 그런 존재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 나를 찾아준 이들, 앞으로 나를 찾아 줄 이들 모두에게 제주의 봄소식을 전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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