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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상혁 Aug 18. 2022

당근 마켓과의 만남.

7. 처음으로 다시.

 제주를 떠나 한 달 가까이 시간이 지났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돌아보니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이삿짐을 정리하는 대로 계획표를 다시 세우고 소설 집필과 번역, 그리고 브런치 글쓰기를 알차게 진행하려고 했다. 계획은 틀어지라고 있는 것인지, 물론 계획대로 전혀 되지 않았다. 이삿짐도 별로 없으면서 짐을 정리하느라 온종일 시간을 보냈고, 새로 이사 온 집이 오래된 아파트라 여기저기 수리해야 할 곳이 계속 눈에 띄었다. 집 계약 당시에는 ‘도배 · 수도 · 문 여닫이 그리고 소음’ 정도만 확인한 것도 나름 꼼꼼하게 살펴본 것이라고 자부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웬걸 여기저기 내 눈에 차지 않는 곳이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도드라지기만 했다.      


 나는 진이 빠지기 시작했다. 누가 좀 옆에서 같이 고민해줬으면 좋겠는데,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내게,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혼자서 제대로 다 수습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든 혼자서 해보겠다고 나는 무지 애를 썼다. 제주에서 1년 남짓 살면서 되도록 세간살이를 늘리지 않으려고 무척이나 애를 썼지만, 동시에 사람이 사는 데에는 아주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혼자 사는데도 이렇게나 많은 물건이 필요한데, 식구들이 많은 집은 그 살림살이를 다 어떻게 감당하고 사는지, 새삼 ‘삶’이라는 것이 경이로워지기까지 했다.     


 제주에서 사놓은 세간살이는 다행히 그리고 전부 ‘당근 마켓’에서 ‘완판’을 했다. 처음에 ‘소파’를 내놓았다. 원룸이었으나 방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었고, 거실에 TV가 거실장 위에 놓여있었는데 맨바닥에 앉으면 고개를 한참 들고 TV를 봐야 해서 시선이 맞지 않기도 해 소파를 구입했었다. 무엇보다 쿠팡에서 제주까지 무료로 배송과 설치를 해준다는 말에 혹해서 나는 기어코 소파를 사고야 말았다. 소파 테이블도 하나 사서 소파에 앉아 책상처럼 쓰기도 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꽤 유용하게 쓰여 후회는 없었다.


 그러나, 제주를 떠나는 시점에서 소파는 책 다음으로 너무나도 큰 짐이었다. 제주에 나를 보러 놀러 온 친구는, 아무리 중고 마켓에 소파를 내놓는다고 해도 절대로 팔릴 리 없다고, 소파를 가져가려면 용달차를 불러야 하는데 그 비용을 내면서 중고 소파를 살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친구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나는 소파를 팔아야 했기 때문에 일단 당근 마켓에 올려보기로 했다. 팔리지 않으면 내게 친절했던 집 임대인에게 그냥 드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임대인 생각은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서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사용한 지 1년이 되지 않았고, 용달차 비용 일부를 지원해주겠다고 당근 마켓 제품 소개하는 곳에 자세하게 내용을 적었다. 소파를 산 쿠팡 사이트의 URL을 복사해서 물건을 사는 사람이 제품 가격이나 품질을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나는 소파는 팔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제주를 떠나기 두 달 전 여유를 두고 당근 마켓에 물건을 올려놓았다. 두 달 동안 팔리지 않으면 안 팔리는 것이니, 그때는 비용을 주고 소파를 버리든지 아니면 위에서 말한 대로 임대인에게 무상으로 주든지 하는 방법을 선택하려고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생겼다. 소파를 팔겠다고 당근 마켓에 올린 지 5분 후에, 무려 5명에게서 동시에 연락이 왔다. 당연히 원래 산 가격보다야 싸게 올렸지만 그래도 용달차 가격을 생각하면 소파 가격이 싼 가격이 아니었는데도 서로 사겠다고 했다. 나는 서귀포에 살고 있었는데, 제주시에서까지 연락이 와서 나와 가격 흥정을 했다. 그리고 가격과 제품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문자 메시지로 나눈 뒤에 최종적으로 제주시에서 소파를 사겠다는 사람에게 팔기로 했다. 이렇게 빨리, 그것도 수월하게 무려 ‘소파’가 팔리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면서 나는 살짝 내 몸이 뜨거워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열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뭔가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을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쾌감과 희열 같은 것을 느낄 때의 열감이었다.

 ‘팔렸어, 소파가 팔렸어, 이게 무슨 일이야? 소파를, 용달차 비용까지 본인이 내고 사 가겠다는 것이, 이게 정말일까? 사기 아닐까?’


 며칠 후에 소파를 사겠다는 사람이 정말 용달차를 보냈고, 용달차 기사 분이 소파를 싣고 제주시로 떠났다. 소파가 떠나는 사진을 물건을 산 사람에게 전송하니, 바로 내 통장에 소파 판 금액이 입금되었다. 휴대폰에 뜬 입금 화면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몸이 뜨거워졌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물건을 팔아보았기 때문이었다. 천 원도 아니고 만 원도 아닌, 십만 원 단위의 물건을 판 것이다. 당근 마켓이라는, ‘중고 물건 거래 사이트’를 통해 합법적으로 말이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어떤 용기가 생겼다. 안 팔릴 거라 생각했던 소파를 팔았으니, 이제 못 팔 것이 없는 것이었다. 제주 땅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캐리어 하나만 끌고 왔듯이, 제주를 떠날 때도 캐리어 하나만 들고 비행기를 타리라 다짐하면서 나는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당근 마켓에 올리기 시작했다.     


 침대, 소파 테이블, 의자, 밥솥, 전자레인지, 그릇, 냄비, 전기 포트, 반찬 통……, 그리고 비데까지 팔았다. 비데는 절대 안 팔릴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소독을 하고 청소를 해놓는다고 해도 남이 쓰던 비데를 쓸 사람이 있을까 싶었지만, 세 사람이나 사가겠다고 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비데를 설치하고 해체해 본 적이 없고, 비데를 샀을 때 설치 서비스를 받았기 때문에 제주를 떠날 때는 설치한 비데를 해체해서 원래 변기 모양대로 해놓아야 해 어쩌면 좋은가 걱정이 태산이었다. 임대인에게 무료로 드리겠다고 해도, 비데는 임대인도 탐탁지 않게 여길 거라 지레 겁을 먹었다. 제아무리 당근 마켓이라고 해도 비데는 안 팔릴 거라 생각했다. 우선은 판매해 보고 안 팔리면 ‘나눔’으로 해서 원하시는 분에게 그냥 드리려고 했다. 하지만, 비데 사진을 당근 마켓에 올리자마자 거래 연락이 왔고, 비데를 사시겠다는 분이 설치되어 있는 비데를 해체하고 기존 변기로 교체까지 해주시겠다고 했다. 그것도 적은 돈이기는 하지만 비데 값을 내게 지불하고 말이다. 비데를 가져가 주시겠다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인데, 나는 당근 마켓에서 물건을 팔면서 요령이 붙어 거래와 흥정의 재미를 붙인 상태였다. 비데를 무료로 나눠주기는커녕, 비용을 받고 해체와 기존 변기 교체까지 받아냈다.     


 비데까지 팔리고 나서, 나는 내 얼굴을 화장실 거울에서 잠시 살펴보았다. 만면에 퍼져있는 어떤 승리의 표정, 해내었다는 자아도취의 달뜬 미소, 그러고 보니 나는 웃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거울 속의 나를 보면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푸른 제주의 바다를 보면서도, 드넓은 제주의 하늘 아래 있으면서도 나는 잘 웃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물건만 팔면서 웃었던 것이 아니다. 물건을 팔면서 만난 사람들 때문에 나는 웃기도 하고 기쁘고 행복했으며 심지어 눈물짓기도 했다. 1년 동안 제주에 살면서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눠 본 적이 별로 없던 내가, 당근 마켓에서 물건을 팔면서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처럼 제주살이를 왔다던 50대 아주머니는 제주 생활이 어땠냐고 내게 물었고, 나는 나름 제주에서 살아봤다고 아는 것을 다 쥐어짜 내서 아주머니에게 정보를 제공해주기도 했다. 그 아주머니는 내게 밥솥을 샀고, 내 물건이 좋다고 내가 쓰던 샤워 커튼도 사주셨다. 그 아주머니와 집 앞에 서서 나눈 3분 남짓의 대화가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정이 넘쳤기 때문에 그날 오후 내내 따뜻한 마음에 행복했었다.


 여름이라 ‘온수 매트’는 팔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당근 마켓에서는 허용된 물건이라면 못 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어떤 ‘뻔뻔함’이 생겨 5년이나 쓴 -일본으로 가면서 엄마한테 드린 온수 매트를 도로 뺏어 내가 썼다- ‘온수 매트’를 가격을 붙여 당근 마켓에 내놓았다. 예상대로 잘 팔리지 않았고, 올린 지 한 달 만에 겨우 연락이 와서 기쁜 마음에 원래 가격보다 5,000원 낮춰 팔기로 했다. 거래 당일, ‘온수 매트’를 사겠다고 내가 살고 있는 집 앞까지 온 아저씨는 60이 훨씬 넘어 보이셨고, 철물을 모아 생계를 이어가신다고 했다. 아저씨가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는데, 말씀하실 때 보니 앞니가 거의 없었고, 손톱 마디마디마다 기름 때가 잔뜩 끼어있었다. 나는 아저씨에게 ‘온수 매트’를 돈을 받고 팔아야 하나 잠시 고민이 됐다. 그냥 드리겠다고 하면 기분이 나빠지실지도 모르니, 원래 받기로 한 가격에서 만 원을 더 깎아 드리겠다고 했더니 그러지 말라고 오히려 아저씨가 거절하셨다. 깨끗하게 쓴 물건 같은데, 이 가격이면 충분히 싸게 산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올겨울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거 같다며 감사해하셨다.


 아저씨가 돌아가고 나서, 나는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그날 오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아저씨가 당근 마켓 ‘거래 후기’를 보내왔다. 생각보다 좋은 물건이었다, 5년 사용을 한 것 치고는 아주 깨끗하다, 싼 가격에 거래를 해주셔서 감사하다……. 그 순간 나는 잠시 뭉클해졌다. 아, 당근 마켓, 인터넷 공간인 당근 마켓에서 내가 사람의 정을 느끼다니, 물건이 오가고 돈이 오가고 어쩌면 사기를 당할 수도,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낄 수도 있는 공간에서 내가 감동을 받고 있다니, 이래서 당근 마켓에 한 번 빠져들면 집 안에 모든 물건을 팔아치우는 사람이 있다는 거짓말 같은 말도, 믿게 되었다. 제주를 떠날 준비를 하는 두 달 동안, 나는 당근 마켓에서 물건을 파는 것이 아주 재미있었고, 모처럼 생기가 돌아 생활에 탄력이 붙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비상용으로 갖춰두었던 ‘햇반’과 ‘3분 카레’까지 제주에서 자취하는 학생에게 팔면서 당근 마켓에 내놓은 모든 물건을 깔끔하게 다 팔게 되었다. 제주를 떠나는 날이었고, 물건을 사겠다고 하는 학생과 시간이 맞지 않아 비대면 거래를 하기로 했다. 이사를 나가는 날, 현관문 앞에 내가 시장 갈 때 쓰던 장바구니에 물건을 가지런히 담아 내놓았다. 물건을 담으면서 내 마음도 정성스럽게 담았다. 햇반과 카레 외에도 생수라든지 당장 자취하는 데 도움이 되는 물건들을 챙겨 넣었다. 모쪼록 제주에서 무탈하고 건강하게 생활하길 바라는 마음, 별거 아닌 이런 물건이라도 제주에서 자취하면서 힘이 되면 좋겠다는 진심이 담긴 마음 말이다. 자취생뿐만 아니라 내가 쓰던 냄비와 전기 포트를 사겠다는 아주머니도 그날 비대면으로 거래했는데, 살림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종량제 봉투’에 물건을 담아 마찬가지로 현관문 앞에 내놓았다. 제주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직전, 무료로 종량제 봉투를 나눠줘서 고맙다는 문자 메시지가 아주머니에게 들어와 있었다. 제주 생활의 마지막을 이토록 따뜻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나는 마음속으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김포공항에 도착해 휴대폰을 확인했을 때, 내가 마지막으로 판 물건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을 자취생에게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정말 힘이 납니다. 햇반 하고 카레 외에 여러 가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햇반이랑 카레로 점심 먹고 있어요. ^^ 먹고 힘내서 제주살이 열심히 해볼게요. 따뜻한 분을 만난 거 같아 행복했습니다.”     


 나를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이 내게 ‘따뜻한 사람’이라니, 내가 얼마나 독종이고 차가운 사람인데, 라는 말을 김포공항에서 혼자 나직이 읊조렸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나는 웃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지나가는 사람이 나를 보고 ‘저 사람 미친 사람 아니냐’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나는 제대로 웃고 있었다,

 계속 그리고 활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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