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평범한 미래에 대해
주인공과 지민은 대학교 2학년 때 만난 사이다. 대담하면서도 염세적인 모습의 지민을 한 학기 동안 짝사랑하던 주인공은 종강할 때 그녀에게 고백했고, 그녀는 자신은 죽을 생각이라고 말한다. 고백에 대한 답 대신 그녀가 제안한 건 동반자살이었다. 지민이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엄마가 낸 책이 유신 체제를 비판하는 글로 해석되어 정신병동에 감금되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엄마를 정신병으로 내몬 아빠와 그 가족들을 용서할 수 없다며 그녀는 죽으려 했다.
하지만 지민은 엄마가 쓴 책을 직접 본 적이 없다. 그런 지민에게 주인공은 옛날 책을 많이 아는 삼촌에게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한다. 삼촌은 그 책을 기억하고, 지민에게 책의 내용을 이야기한다. 그 책에는 동반자살을 했다가 미래에서 과거로 진행되는 삶을 다시 살게 된 연인이 등장한다. 그들은 그들이 가장 설렜던 순간을 향해 거꾸로 인생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정방향으로 세 번째 인생을 살게 된다. 거꾸로 가는 인생에서 그들은 미래를 먼저 경험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태도를 배운다. 그리고 세 번째 인생을 다시 살 때 그 태도처럼 미래를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삼촌은 그 책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서 지민에게 자살을 생각하지 말고 살아가라고 한다. 삼촌은 지민의 엄마가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과거의 불행한 일이 오늘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미래의 행복한 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라는 말이었다고 이야기한다. 지민의 엄마는 책에서 '미래를 기억한다'라고 했다. 정작 그녀 자신은 대학생이 된 지민의 모습 같은 평범한 미래를 그리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래도 그녀가 이야기한 건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민과 주인공은 결국 목숨을 끊지 않는다. 평범하고도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며 살아간다. 삼촌이 넌지시 이야기했던 둘이 결혼한 평범한 미래가 20년 뒤 그들 앞에 펼쳐진다. 소설은 그렇게 끝난다.
이 책은 여러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다른 이야기도 많다. 이야기는 서로 다르지만 모두 '기억'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체로 아픔인 과거의 기억에 대해, 그리고 그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오늘의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평범한 미래라는 희망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의 우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과거지만 우리가 오늘을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다. 과거는 오늘을 만들고 미래는 오늘을 살게 만든다. 오늘을 살아가기가 힘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