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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 May 04. 2024

베른하르트 슐링크, '책 읽어주는 남자'

서로 다른 세상을 사는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하여

우리는 구분 짓는 것에 익숙해지며 어른이 되어 간다. 세상을 더 많이 경험했다는 말은 사회가 우리를 구분하는 수많은 잣대를 더 많이 깨달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릴 때는 나이, 지역, 직업, 돈,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친구들을 사귀지만 살아가면서 점점 이런 기준에 민감해진다. 가끔 우리는 어린 시절에 함께 지냈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나와 다른 세상에, 다른 층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그 사람이, 사실은 나와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그 사람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 거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책 읽어주는 남자'는 당신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남자는 건강이 좋지 않던 어린 시절,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구토를 하다가 우연히 한나를 만나 도움을 받는다. 한나는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지만 둘 사이는 그 일을 계기로 깊어지게 된다. 그는 매일같이 한나를 만나러 가고 둘은 여느 연인들이 그렇듯 그들만의 익숙한 데이트 방식을 가지게 된다. 둘은 한나의 집에서 만나 그는 한나에게 책을 읽어준다. 책을 읽고 나면 한나는 그를 씻겨주고 둘은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나란히 누워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쉰다. 둘만의 의식과도 같은 만남이 이어지면서 그는 한나에 대해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하지만 한나가 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작품에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한나가 화를 낸다. 그가 이번 학기는 낙제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할 때나, 그가 한나가 일하는 열차에 찾아갔을 때, 같이 간 자전거 여행 중에 먼저 일어나서 쪽지를 남겨두고 외출을 했을 때 한나는 그를 모른 채 하거나 화를 낸다. 그러면서도 그의 집에 갔을 때 그의 아버지의 서재에 꽂혀 있는 수많은 책을 보며 책을 쓸며 지나가는 아련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에게는 이 모든 행동이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지만 그녀를 잃기 싫어 용서를 구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친구들과 수영장에서 놀고 있을 때 한나가 수영장에 왔고 그는 한나를 봤지만 그녀에게 가지 않는다. 그런 그를 한나는 지켜보다가 사라진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그들은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한다. 한나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그가 한나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전범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재판장이었다. 그녀는 수용소의 사람들을 이동시키던 중 불이 붙은 교회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아 모두를 죽음으로 내몬 죄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두 가지를 깨닫게 된다.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녀를 만났지만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글을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문맹이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문맹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받게 된다. 그녀에게는 자신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문맹이라는 사실이 종신형보다 싫었다.


다시 몇 년의 세월이 지나 그는 감옥에 있는 그녀에게 책을 녹음해서 보낸다. 그러나 한 번도 그녀를 직접 찾아가지는 않는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더 흐르고, 그녀는 가석방되어 감옥에서 나올 수 있게 된다. 그녀에게 녹음된 책을 꾸준히 보냈지만 한 번도 직접 편지를 쓰거나 찾아가지는 않은 그에게 형무소장이 연락하게 되고 그녀의 재립을 도와달라고 한다. 그는 그녀의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를 하지만 그동안에도 그녀에게 편지를 쓰거나 찾아가지는 않는다. 그는 그녀를 위한 준비를 하면서도 그녀를 실제로 만나는 것은 피했다. 보다 못한 형무소장의 연락에 의해 그들은 석방 전에 잠시 만나게 되지만 그는 그날 예전과는 다른 모습의 한나를 만난다. 그리고 그녀의 석방 전날 한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들이 만날 때 왜 한나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였고, 왜 그는 수영장에서 한나를 보고도 보지 못한 척했으며 왜 한나는 떠났을까? 다시 만난 그는 왜 한나를 보고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고, 한나는 왜 글을 읽고 쓰지 못한다는 사실을 감췄을까? 왜 그는 한나를 생각하며 수많은 책을 녹음해서 보내면서도 한나에게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하거나 찾아가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한나는 석방되기 직전날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까?


그건 그와 그녀가 다른 세계에 산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그가 어리고 허약하던 시절, 아직 세상이 어떻게 구분되어 있지 않지 못하던 시절에 그는 한나를 만났고 순수하게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그는 부족함 없는 학자 집안의 아들이었고, 그녀보다 17살이나 어렸다. 그의 친구들은 그녀의 친구들이 될 수 없었다. 그는 글을 읽었고, 후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녀는 글을 읽을 줄도 몰랐다. 그는 법조인이 되었지만 그녀는 열차 차장으로 일했다. 그리고 그는 전쟁을 일으킨 세대를 비난하고 잘못을 들추는 전후 세대였지만, 그녀는 전쟁에 가담한 세대였다.


둘은 어찌 보면 전혀 만날 수 없는 사이었지만 우연히 둘의 세계가 겹치던 순간에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걸 알지 못했지만 그녀는 이미 둘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고 그때마다 피하고, 화를 냈다. 하지만 그 자연스러운 이해를 끝까지 막을 수 없었고 그는 스스로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차이를 불현듯 느꼈다.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이 늘면서, 또 법정에서 그녀를 보았을 때, 마지막으로 석방 전의 그녀를 만났을 때도 그렇다. 서로 다른 세상에 속했다는 것을 느낄 때 그는 그녀에 대한 감정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이미 두려워했을 것이다.


남자는 깨달아가고, 여자는 회피한다. 그리고 그 끝에서 남자는 머뭇거리게 되고, 여자는 생을 포기했다. 


책은 그의 시점에서 쓰여 있다. 한나의 마음과 한나의 생각은 직접적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나의 행동과 그녀의 선택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과, 그 사람이 잠시 그 세계의 경계에 있을 때 만나서 관계를 맺고,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다가올 때, 불행한 세계에 속한 사람이 느끼는 두려움은 어느 정도인가


그녀는

수영장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그를 봤을 때는 도망가는 것을 택했고,

법정에서 만났을 때는 종신형을 받는 것을 택했고,

교도소에서 봤을 때는 그를 직접 마주하는 순간을 앞두고 죽음을 택했다.

그녀는 어린 그를 만나 그의 육체를 착취한 게 아니다. 그녀는 사랑했고, 그래서 두려워했다.


아이와 어른

전쟁 후의 세계와 전쟁 범죄

부와 가난

지식인과 문맹


둘은 현실의 어느 측면에서도 같은 세계에 속하지 않았다. 


그들이 현실을 떼어 놓고 있었던 장소, 그런 순간에 그들은 어느 연인처럼 만나고, 사랑을 나누고, 나란히 누워 서로를 느끼며 지냈었다. 한나의 집에서 그들이 만날 때 그들은 한 세계에 존재했다. 


현실이라는 건 그것을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마음을 흔든다. 어린 시절 가졌던 마음이 어느 순간 불편해지는 순간을 우리는 경험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이든, 친구, 가족, 혹은 그 누구와의 관계이든 우리는 우리를 구분 짓는 현실이 우리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안고 살아간다. 그녀는 회피했고, 그는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서로에게 닿지 못한 채 죽음으로 끝났다. 그러니 결국 현실에 흔들리지 않는 방법은 도망치지 않고, 그 현실과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는 것뿐이다. 누구도 우리와 완전히 같은 세계에 살고 있을 수는 없다. 인생은 우리에게 수많은 구분을 경험하게 한다. 그러니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을 현실의 잣대가 갈라놓지 않게 하려면 당신은 똑바로 봐야 한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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