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나은 Jul 24. 2021

얼어붙은 눈 #1

안데르센 <눈의 여왕>  재해석 글

  너를 만난 건 스무 살, 겨울이었다. 네가 일하고 있던 카페에 들러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나가는 길에 내 앞의 문을 활짝 열어주며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하는 그 미소가 너무 싱그러워 집으로 가는 내내 너의 미소가 생각이 났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옷깃을 여미면서도 피식 웃음이 났다.

  자꾸만 생각이 난 너의 미소 때문에 그 가게를 다시 찾아갔다. 이번엔 혼자였다.

 따뜻한 차 한잔을 하면서 힐끗 거리며 너를 쳐다보니, 다가와 냅킨을 한 장 건넸다. 너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알고 보니 그날 이후, 너도 나를 계속 생각했었다고 했다.

  스무 살의 우리들의 연애는 서툴렀지만 가볍지는 않았다. 너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학비 마련을 위해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아주 잠깐 시간이 나면 나에게 전화를 하고 쉬는 날에는 나를 만났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런 너의 상황에 대해 신세 한탄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몰랐다. 너에게 갑자기 일어난 그 일이 너를 얼마나 변하게 만들었는지.

 어느 날, 함께 겨울 바다를 보러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설레어하며 짐을 싸고 있는 데, 너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나 급하게 일이 생겨서 당분간 연락을 할 수 없을 거 같아. 바다 여행은 다음에 가자."

  한 번도 이런 식으로 통보하듯이 말하고 연락이 두절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전화기 너머로 너의 목소리에는 지금껏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단호함이 들어 있었다. 더 이상 이유는 물어보지 않기를 바라는 너에게 기다릴게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기다리는 동안 나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계속 나쁜 쪽으로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나와 헤어지고 싶은 건가.'

'이게 이별의 통보인가.'

 일주일이 지났을 까. 너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온갖 복잡한 생각으로 밤잠을 설쳤다. 어두운 낯빛으로 오랜만에 너를 만나러 들어가는 카페에 저 멀리 우리의 단골석에 네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던 모습의 너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알던 네가 맞는지 너에게 가까워지는 한 걸음을 뗄 때마다 눈을 비벼야만 했다. 한눈에 봐도 꽤 비싼 슈트를 입고 다리를 꼬고 앉아 나를 향해 말했다.

 "오랜만이네"

 처음 꺼낸 너의 말에는 내가 그동안 느꼈던 따뜻한 온도는 없었다.

  "응.. 잘 지냈어?"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커피를 한 모금을 마신 너는 내게 말했다.

  "길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어. 나 지금 떠나야 돼."

  "어디로 간다는 말이야? 헤어지자는 얘기야?"

  "..... 갈게. 마지막으로 얼굴만 보고 싶어서 온 거야. 더 이상 나 기다리지 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옆에 놓인 처음 보는 캐리어를 끌며 너는 나갔다.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가늠이 안돼 멍하니 있다가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 너를 황급히 뒤따라 나섰다.

  빨간 스포츠카를 탄 어떤 여인이 카페 앞에서 너를 태워가는 모습이 보였다. 너의 이름을 부르려고 하는 데 목구멍에서만 돌뿐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너는 나를 떠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