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
현관 앞 햇반 떡 하니 적힌 종이박스 위 빨래거리 올려둔 바구니 번쩍 든 채 잡히는 대로 흰쌀밥 한 개 꺼낸다. 돌아오며 황무지일 줄 알지만 괜스레 냉장고를 열어본다.
토마토, 쌈배추, 닭가슴살 어림잡아 70팩. 플라스틱 포장 용기 속에 깔려진 키친타올 위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이틀 전 구매한 토마토 그리고 닭가슴살 하나 꺼낸다.
새 돈 주고 못 사겠다 싶어 이 날씨에 가슴팍 속이 다비칠만큼 땀에 절도록 짊어지고 온 만 오천 원짜리 전자레인지 앞에 선다. 햇반 비닐을 벗긴다. 포장 상태가 이상한지 손잡이 부분만 죽 찢어진다. 비닐이 양 옆에만 남았다. 데워지는데 문제없다. 2분 돌린다. 만 오천 원짜리 중고 가전에 정확한 수치는 사치. 밥이 되는 동안 호떡 모양 마늘맛 닭가슴살을 꺼내고는 그놈 몸 덕지덕지 달라붙은 성에를 으깬다. 언젠가 성에와 닭가슴살을 갈라놓지 않고서 전자레인지 속에서 비밀스러운 왈츠를 추게 내버려 뒀더니 밍밍한 닭가슴살 전골이 되어 나왔다.
토잉! 밥이 김을 낸다.
대충 뜯겼긴 해도 꽤나 뜨겁다. 성에와 사별한 닭가슴살을 그릇에 담아 레인지에 넣었다. 자고로 닭가슴살은 항상 마지막에 레인지에 넣어야 한다. 맛없는 마늘맛 닭가슴살은 그래야만 최소한의 품격을 지킬 수 있다.
숫자 침이 2를 조금 넘게 돌려보자. 정확할 진 모른다.
토잉! 닭가슴살도 김을 낸다.
닭가슴살 육수가 자박한 가득한 그릇에 그대로 토마토 열 알을 놓는다.
채소가 좋다. 채소로 식사를 시작한다. 유전자를 조작한 걸까. 토마토에서 꿀맛이 난다.
이래도 되나 싶게 달다.
밥 한입 토마토 한입 닭가슴살 한입
밥 한입 토마토 한입 닭가슴살 한입
밥 한입 토마토 한입 닭가슴살 한입
토마토가 언제나 홀로 남는다. 뱃속에서 곧 다시 만나렴.
엄마가 두고 간 견과류 통에서 아몬드 8알, 호두 세 조각을 한입에 털어놓는다.
내 구강은 파쇄기. 콰적콰적 흉포하게 견과류들을 다지다 보면 쌉싸름과 고소함이 입안을 채운다.
브리타 정수기에서 물을 한가득 따라 식사를 마친다.
이것이 웰빙인가 헬빙인가 교도소 음식인가.
그렇지만 토마토는 의외로 달고 밥은 생각보다 더 달다.
하지만 다음엔 절대 마늘맛 닭가슴살은 사지 않으련다.
마늘맛 닭가슴살은 마늘맛이 매콤함은 온데간데없고 쿰쿰한 마늘맛만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