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선 Nov 14. 2023

첫 만남(2)

 돌아가는 길, 엄마에게 집을 구했다 알렸다. 엄마는 내일이라도 집을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부모란 새끼 사는 곳이 어떤지 궁금한 법이다. 그렇지 않아도 다시 한번 가볼 참이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이사 갈 집으로 향했다. 한번 와봤던 길이고 J의 집에서 차도로 나와 따라 쭉 걸으면 나오는 집이라 지도를 보지 않아도 수월하게 찾아갈 수 있었다. 철물점 두 개를 지나고 주류창고를 지나자. 회색빛의 KT빌이라 이름 써진 빌라가 보인다. 기택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지었구나. 앞으로 2년을 살 집이라 들어가기 전 괜히 건물을 빙 둘러보기도 했다. 이전에 봤듯이 아주 많은 재물을 바라는지 해바라기 타일크기가 성인남성만 하다. 가장 안쪽 이백사호. 들어서니 썰렁하다. 사람의 온기가 없으니 당연하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 전. 이리저리 방의 길이도 재보고는, 아직 도배되지 않은 화려한 프랑스 파리 카페 거리 벽지에 등을 기대앉았다. 형광등엔 날벌레들 시체가 대여섯 마리 쌓여있다. 뜨거운 줄도 모르고 들어가서 죽어버렸나 보다. 


 몇 없는 짐들이 이곳에 쌓인다면 어떨까. 침대 놓는 곳이 현관에 보이지 않고 쏙 들어가 있으니 그것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닫혀있는 창문 밖이 새-파랗게 물들어있길래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어봤다. 쭉 뻗지 않아도 간단히 손 닿는 거리에 지금 내가 서있는 방의 천장보다 높게 술짝들이 쌓여있다. 매화주, 청하, 참소주, 참이슬 처음처럼, 종류별로 가득 쌓여 내 창문을 다 가렸다. 병들 틈새로 보이는 것 말고는 바깥풍경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술 한 병씩 빼먹어도 모르겠다. 다시 창문을 닫고 보니 불투명유리가 새 파랗게 물든 것이 2년 전 다녀온 제주도 바닷빛 같다. 푸르른 알코올로 가득 찬 오션뷰.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것도 없는 빈집을 보여주었다. 


…반지하 아니제? 

…응 

… 집이 많이 좁네. 주방은 어떤데? 화장실은? 

 

 화면을 돌려 엄마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엄마는 살아온 나이에 비해 그다지 표정을 잘 숨기는 사람이 아니다. 누나들이 지냈던 월세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마포의 오피스텔이 떠오르나 보다. 그녀의 표정이 굳어가는 게 보인다. 


 … 그기 주방이가..? 

… 그렇긴 한데 엄마, 서울은 다 이렇다. 

… 창밖도 함 보자.

… 여기 주류창고란다. 그래서 건너편에 사람들 안 살고 좋다. 여기 봐라 술도 꺼내마실 수도 있다 


 그녀의 기분을 풀어주고자 하찮은 농담을 시도했으나 엄마는 쉽사리 웃지 못한다.


… 창도 두 개다! 건물 제일 안쪽방이고. 환기도 잘되고 지하철도 전에 집만큼 가깝다! 

… 동네는 어떤데? 

… 동네도 괜찮다 전에 보다 낫다! 찬찬하이(차분하니) J랑도 가깝다 아이가 

… 니 괜찮으면 됐다. 

… 엄마 듣기 편하라고 그래 말하는 게 아니라 이 가격에 반지하 아닌 거 기적이다 진짜 잘 구했다! 재영이 알제. 고등학교 친구 재영이도 최근에 서울 올라와서 전세 구했는데 반지하 밖에 없어서 반지하 들어갔다. 가는 심지어 9천인데도 반지하라니까!   


실은 친구 재영은 여전히 고향에 산다. 당신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면 없던 친구 수십 명도 만들어 낼 수 있다. 


… 그래 집 구한다고 고생했다. 야야 이사준비 잘하고, 그래. 잘 알아봤네. 

…어 끊을게. 쉬세요. 


그녀가 통화종료를 누를 때까지 카메라를 바라보며 송곳니가 환하게 보이도록 웃었다. 전세대출은 큰 문제가 없었다. 도배는 작년 J가 도배를 했던 사장님에게 맡겼다. 멋들어진 인테리어를 꿈꿀 수 없지만 잿빛의 도시 안에서 굳이 내가 머무르는 곳까지 누런 때와 잿빛을 바라보긴 싫었다. 이사 4일 전 도배집 사장님이 도배를 마쳤다 연락을 주셨다. 사진을 보내주셨고, 겨울이니 이사 오기 전까지 가구를 살짝 빼놓았다 말씀하셨다. 잔금까지 마쳤다. 몽마르트르의 예술적인 카페거리는 이제 없다.  


입주를 3일 앞둔 날이다. 전화가 걸려왔다. 집주인 기택이다. 


 …네 어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육두문자가 날아왔다. 


…어! 이백사호지!


그렇다 나는 이백사호다. 


… 지금 어! 이 씨발 어디다가 도배를 맡긴 거야? 우리 집 벽지가 고호오급 비싼 실크 벽지였는데  어! 이딴 싸구려 벽지를 처바르고 청소도 더럽게 해 놓고 갔어 청소를 하나도 안 해놨단 말이야. 인건비 5만 원 주고 청소를 싹~ 다 깨끗하게 해 놨는데 말이야! 어디야 씨발새끼들. 이 딴 데다 할 거면 그냥 있는 대로 살면 되지 뭘 그렇게 까탈시럽게 구는 거야! 어디냐고 전화번호를 줘봐. 내 이렇게 못 넘어가겠으니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쌍욕을 듣기가 쉽지 않은데 오랜만에 들어본 시원한 육두문자다. 


… 할아버지 제가 지금 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서요.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는데 다시 설명해 주시겠어요?

… 아니 도배를 해놨는데! 으디 급도 안 맞는 싸구려 도배를 처바르고 간 거야. 인건비가 올라서 청소비를 5만 원 주고 청소를 다~ 해놨는데! 어 청소하나도 안 해놓고 가구도 다 빼놓고 그걸 다시 내가 했잖아! 80 먹은 할아버지가!! 어! 어쩔 거야 이걸

… 제가 도배를 맡겨놓고 확인을 못했네요. 이전에도 맡겼던 곳인데. 제가 바쁘더라도 시간을 빼서. 도배하는 동안 자리에 있었어야 하는데, 저도 초년생에 아직 잘 몰라 생각이 짧았습니다. 사진으로는 깔끔하게 해 놓으셨더라고요. 안 보이는 곳이 청소가 안 돼있었나 봐요.  

… 아니 그카믄 뭐 내가 깨끗한걸 더럽다고 지랄하는 걸로 보이나? 도배를 할 거면 내한테 말을 하고 내 아는 도배집에 말을 해서 내한테 돈을 줬으면 훨씬 더 예뿌게 해났을낀데! 


 보이지도 않는 통화너머의 영감이 내 앞에 현신이라도 한 듯 연신 허공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핸드폰은 신줏단지 모시듯 손을 맞잡았다.


 … 제가 지금 가서 청소를 해놓겠습니다.

 … 아니 됐어! 내가 다 청소를 했어. 할아버지가 다 청소를 했단 말이야! 몸도 성치 않은데! 

 5만 원 주고 이미 인부 불러서 먼저 했는데!!! 그게 도루묵이 돼서  내가 다했다니까! 할아버지 몸이 안 좋아서 청소비를 5만 원 주고 이미 했는데! 내가 그걸 다 다시 청소를 했어 80 먹은 할아버지가!!!!!!! 

… 어르신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아니 뭣도 모르는 사람이면 그냥 나한테 돈 주면 내가 아는 곳에 맡겼을 거 아니야. 

… 그땐 자율적으로 하라고 하셨어서 제가 여쭤볼 생각을 못했습니다.

… 그건~ 모르겠고 원래대로 집을 해놓고 갔어야지. 뭐 하는 거야 가구는 왜 빼놔 

… 겨울이라 이사 전까지 도배지 마르도록 잠시 빼놓는 게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  이백사호가 집에 들어올 때 가구가 빠져나와있으면 돼 안돼? 

그래서 할아버지가 몸도 성치 않은데 다 가구를 원래대로 해놨어. 

… 아이고 제가 너무 죄송하네요 그래도 있는 동안은 정말 제 집처럼 깨끗하게 쓸 테니

노여움 풀어주세.. 


 기택은 내 말이 끝나기 전 전화를 끊어버렸다. 두 손 맞잡은 전화기를 떨쳐내기도, 잔뜩 움츠러든 고개도 쉽게 펴지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기택빌로 갔다. 크랙이 말끔히 메꿔진 하얀 벽지를 둘러보고,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오늘 있었던 일을 잊어보고자 했다. 형광등 커버아래엔 여섯마리의 날벌레 시체가 여전했다. 욕실 변기 옆엔 내가 처음 집을 본 날처럼 물 떼가 여전히 서려있었고, 화장실 창문엔 여전히 주인 잃은 거미줄이 그대로 내려앉아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만남(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