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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림 Mar 23. 2024

지금 여기 이 순간

어느 결혼식 풍경에서

매일 보는 내 얼굴은 늘 변함이 없다. 아니 변화가 워낙 미세해서 잘 느끼지 못한다. 거의 10여 년이 지나서 만나면 세월의 풍화작용을 이겨낸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삶의 이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혼사를 치르는 그 집 6남매의 얼굴은 각각 달랐다. 인생이 지독히 불운했다고 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어떤 일이든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낸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찬찬히 돌아보면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들은 나중에 혹독한 대가를 요구한다. 그건 얼굴일 수도 있고 삶의 전반적인 여건일 수도 있다. 인생의 짐에 속절없이 무너진 얼굴도 있고 그 짐을 지혜롭게 치워내고 활짝 핀 얼굴도 있다.


배가 안정정으로 나아가려면 약간의 바닥짐이 실려 있어야 하듯이 

우리 삶에도 어느 정도의 근심이나 슬픔, 결핍이 필요하다.    

  - 쇼펜하우어


거창한 미래는 불현듯 찬란한 서광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그 얼굴을 드러낼 것이다. 조금씩 동녘에서 떠오른 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새 온 사방을 비추듯. 


지금 여기 이 순간이야말로 10년 뒤 내 모습을 가꾸는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내가 가진 약간의 인생의 짐 또한, 삶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바닥짐이지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남들과 비교하기에 골몰하고 시계를 자주 보고 멈춰 서서 머뭇거리고만 있기엔 인생은 너무 짧다.


시계를 보지 말아요

시계가 하는 일대로 하세요.

(계속 나아가는 것 말이에요)

  - 샘 레븐슨


Morricone: Theme from Cinema Paradiso (Renaud Capuçon) (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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