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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 Sep 30. 2021

백수일기-5

가사노동의 최고봉은 요리?

얼마전까지 나의 집안 일은 왼손 정도였다.

뭐 그저 거드는 정도랄까?


뭐 출장과 야근이 워낙 많았기에 

집에 머무는 시간 자체가 그리 길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라는 핑계를 생각해봤지만 구차하다.  


또 다른 핑계라면 아내는 그의 타이밍과 방식으로 가사노동을 하길 원했지만 

나에게 그걸 하나하나 설명해주지는 않았다. 

가령 빨래는 할때 세탁물을 구분하는 기준이나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을 때 고무장갑에서 떨어지는 물을 미리 닦아야 한다는 것... 등이다.


뭐, 그런 것 까지 알려줘야 하냐고 생각하겠지만 

둘 중 어느 한쪽의 방식과 타이밍을 따르기 원한다면 

(반복적으로)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소심한 주장을 해본다. 

왜냐면, 나도 나름 내 방식과 타이밍으로 집안 일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깥 일이 그러하듯이 집안 일도 주도권이나 권한을 지닌 쪽이 필요하고

누군가 정해주지 않으면 서서히 생기기 마련이다.


백수가 되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며 

조금씩 아내가 해오던 가사노동의 루틴과 방식을 습득할 수 있었다.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어깨너머로 보며 

시행착오를 연거푸하며 쿠사리도 먹어가며 익힌 가사노동은 나름 레벨이 있었다. 


나에게 있어 넘사벽은 요리였다. 

부부의 아침은 빵이나 떡, 커피로 간단히 하고, 

점심은 대부분 같이 먹을 일이 없지만

문제는 저녁이었다. 

퇴근하는 아내가 오늘 저녁은 뭐 먹어? 라고 물어보면 

순간 머리 끝이 바짝 서는 오싹함이 느껴졌다.


사먹는 반찬도 한계가 있고, 배달음식도 일주일에 한두번이다.

게다가 배달음식이 야기하는 엄청난 플라스틱은 배달을 주춤하게 한다.

그래서 요리를 시도했다. 

그리고 좌절했다.

 

아내의 전언에 의하면 내 요리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요리도 못하면서, 레시피대로 안하고 자꾸 창작하려 한다"

  "평상 시 위생관념으로 봐서 재료 손질이 얼마나 깨끗할지 의심스럽다"


그래서 요리를 배워보기로 맘먹었다.

백수가 되고 나서 1년만의 결정이다. 

왜 이런 생각을 진작하지 못했을까하는 맘도 들었지만 

구민회관에서 운영하는 요리클래스를 등록했다. 

무려 2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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