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정미 Mar 15. 2024

육아의 묘미는 역시 예측불가이지

지난달 드디어 막내딸의 Gymnastic class (체조) 등록했다. 막내딸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체조수업을 듣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사실 어릴 때부터 막내는 운동신경이 남달랐다. 걷지도 못하는 아기가  집안 2층 계단을 배로 밀어서 오르락내리락하고, 뒤뚱뒤뚱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놀이터의 거미줄을 보자마자 타고 올라가려고 했다.  자전거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오빠가 배우는 걸 보고는 금방 따라 하고 급기야는 외발 자전거까지 타기 시작했다. 롤러브레이드 스케이트 보드 뭐든 동네 아이들이 타기 시작하면 자기도 꼭 해야 했다.

외발자전거를 타는 딸

재미있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을 딸아이는 독학으로 배웠다는 것이었다. 첫째나 둘째는 두 발 자전거를 배우는 데도 몇 달이 걸렸다. 하지만 막내는 가끔 아이가 외발 자전거를 배우고 롤러브레이드를 탈 때 손잡아주는 정도뿐이었다. 아이는 혼자서 넘어지고 자빠져도 될 때까지 도전했다. 멍이 들고 다쳐도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막내는 나에게는 1도 없는 운동신경을 타고났다. 그게 너무 신통방통할 때도 있었지만 걱정 많고 겁 많은 나에게 늘 노심초사였다. 그래서 늘 막내에게 하는 말은 "위험하게 놀지 마, 다치면 안 돼."이다.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막내는 학교 놀이터를 날아다닌듯했다. 학교에 있는 멍키바에 얼마나 매달려 있었던지 조그마한 손바닥엔 굳은살이 박이기 시작했다. 그리곤 Gymnastic 수업을 듣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미국에 많은 부모들, 특히 딸 가진 부모들은 아이의 바른 자세와 체형을 위해서 체조수업을 많이 듣는 편이다. 사실 나도 아이가 오히려 재능이 없었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딸의 기질과 재능을 알고 있기에 일단 한번 발을 들이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불안이 많은 나는 '체조= 사고'로 생각하다 보니 딸아이가 다칠까 봐 미리 걱정부터 들었다. 그래서 체조 말고 좀 더 안전한 댄스나 음악 쪽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시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코로나 핑계, 여행 핑계를 대면서 아이가 체조에 대해 흥미를 잃기를 바랐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해가 지나고 아이가 크면 클수록 아이의 열망은 더 커졌다.


아이의 기질과 재능을 있는 그대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늘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나도 내가 바라지 않던 아이의 재능은 달가워할 수가 없었다. 마치 나의 아버지가 나의 미술적 재능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과 같은 마음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어느 날 들었다. 물론 나는 '그림은 위험하고 다치는 일이 아니지만 체조는 달라.'라는 마음속 변명이 있었지만 사실 아이의 입장에선 똑같을 것 같았다. "왜 내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걸 엄마, 아빠는 못하게 하는 거야? 나쁜 일도 아닌데. 엄마 아빠는 정말 내 맘을 몰라주네."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아버지가 나의 재능을 묵살한 것이 오랜도록 마음에 상처로 남았으면서도 나 또한 딸아이의 운동재능은 외면하고 싶었던 거였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사고 때문에 아이의 꿈과 재능을 묵살시키는  어리석은 엄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곤 바로 체조수업을 등록하고 얼마 전부터 시작했다. 수업을 등록했을 때부터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던 딸은 처음 하는 체조수업임에도 기초반을 가뿐히 뛰어넘고 중간레벨로 넘어갔다. 고작 60분 수업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1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이렇게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데 진작 보내줄걸.


세 아이를 임신하면서도 나는 막내딸 같이 운동에 재능이 있는 아이가 내 뱃속에서 나오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학창 시절 영어, 수학보다 더 싫었던 것이 운동이었다. 고3이 되고 나서 입시에 대한 부담이 있었지만 이젠 체육을 안 해도 된다는 게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엔 고 3이 되면 암묵적으로 체육, 미술, 음악 시간은 자동으로 자율학습시간이 되곤 했었다. )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운동은 내 삶에서 사라졌다. 졸업 후 전력질주를 해본 것이 손에 꼽을 정도이고 내 삶에 운동이라고 칠 수 있는 건 아마 세 아이 어린 시절 하던 육아가 전부이다. 남편도 다른 남자들과 달리 운동에 딱히 취미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 중에 운동신경이 이렇게 좋은 아이가 태어나리라곤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육아가 힘든 것은 예측불가 때문이다. 육아서에 나오는 아이들은 몇 개월엔 통잠을 자고, 몇 개월이 되면 걷고 몇 개월에 말을 하고 몇 살이 되면 문장을 말하고 이렇게 단계로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시간과 속도대로 성장한다. 그리고 자신안에 있던 기질과 재능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 안에서 밖에 예측하지 못한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부모의 예측이나 기대는 대부분 무척 제한적이고 좁다. 아이는 부모와는 또 다른 생명채로 다른 기질과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때문에 부모의 예측을 벗어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로 인해 많은 부모들이 당황해하고 어려워하는 것이다.  


이때 부모의 태도가 아이와의 관계와 성장에 영향을 준다. " 얘는 왜 이래? 뭘 이런 걸 좋아해? 왜 아직 이걸 못해?"라고 부모의 기대와 예측에 벗어난 아이를 거부하기 시작하면 관계도 나빠지고 아이도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아! 우리 아이는 나와는 다르구나.  그럼 이 아이는 무엇을 가지고 있는 걸까?"라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를 알아가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아이의 세상을 확장시켜 주기 위해 함께 배워가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때문에 미지의 세계를 아이와 함께 가야 하기에 육아가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나는 딸 덕분에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체조라는 영역을 알아가고 있다. 아마 딸이 아니었으면 전혀 모르고 살았을 세계이다. 이렇게 오늘도 내가 가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육아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핍만 채운다고 인생이 해결되지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