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식구들 모두 먹는 것에 진심이다. 그래서 각자 요리를 도전하고 해 보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신기한 게 요리하는 모습만 보아도 성격이 보인다. 요리가 다 같은 요리일 것 같지만 요리를 대하는 태도는 모두 틀리다. 나는 요리를 그림을 그리듯 한다. 큰 틀 안에서 재료나 양념이 크게 바뀌진 않지만 들어가는 양은 거의 내 맘대로 창작하는 편이다. 내가 원하는 맛을 만들어가는 편이다. 그래서 꼭 정해진 레시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양도 그때그때 다르다. 그래서 누가 레시피를 달라고 하면 늘 이런 식이다. "00랑 00랑 준비하시고 간장 조금 참기름도 조금 고춧가루랑 설탕 좀 넣으시면 돼요"라고 밖에 설명이 못하니 레시피를 가르쳐 줄 수가 없을 때가 많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맛을 만들어 본 경험이 많기에 나는 별로 요리를 겁내지 않고 재료가 몇 개 빠져도 비슷한 양념이나 재료로 얼추 비슷하게 만든다. 거의 손맛에 의한 요리였고 그렇게 해도 거의 실패가 없다. 그래서 내가 주로 하는 요리는 한식이다. 한식은 간만 잘 맞으면 대부분 맛있기 때문에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한다면 정량으로 요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때그때 마다 약간씩 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런데 베이킹은 달랐다. 빵과 과자를 좋아해서 한 때 집에서 빵과 쿠키를 구워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곤 번번이 실패했다. 그 이유를 나중에 큰 딸이 빵을 만드는 것을 보고 깨달았다. 나는 재료를 정량으로 맞추지도 않고 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헐..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거 아냐? 반만 넣자. 아... 버터가 없는데.. 우유 넣어도 되겠지" 늘 이런 식이었다. 1시간 숙성시키라고 하면 깜빡하고 2시간 내버려 두고.. 마치 한식 만들듯이 대충대충 했더니 늘 번번이 실패였다.
큰 딸이 베이킹을 하는 것을 보면 일단 베이킹이나 쿠키를 굽기 전에 저울과 타이머, 정확한 계랑 컵과 수저가 기본으로 나와 있다. 저울을 가져다 놓고, 밀가루, 버터, 설탕, 소금등을 아주 정확하게 재고 정확한 시간을 숙성시키고 정확한 온도도 필요한 만큼만 딱 구워내는 것이다. 그때 알았다. "아.. 베이킹은 과학에 가깝구나.. 이래서 나는 늘 망했구나. 그리고 나랑 베이킹은 안 맞는구나." 이후로 나는 베이킹은 하지 않는다. 베이킹은 성격이 꼼꼼하고 약간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 잘하는 분야였다. 그냥 나처럼 '손맛'으로 '예술'처럼 요리하는 사람에겐 맞는 분야가 아니었다.
잘하는 요리만 봐도 성격이 보인다. 나는 뭐든지 자로 잿든 정확한 걸 선호하지 않는다. 늘 융통성이 필요하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스스로 구상해서 창조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상담도 정해진 절차나 매뉴얼대로 하는 일이 아니다. 늘 그날 내담자의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적절히 반응해야 하기에 융통성과 유연함이 무척 필요한 직업이다. 그림 그리는 것도 글을 쓰는 일도 다 마찬가지이다. 똑같은 걸 반복하는 것도 싫어하고 주도적으로 내가 이끌어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가장 큰 장점이 융통성과 유연함이지만 반대로 꼼꼼하거나 완벽하지는 못하다.
그런데 큰 딸은 창의력이 있기도 하지만 오히려 정해진 순서가 있고 매번 예상된 결과가 나오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뜨개질이나 네일, 베이킹을 좋아한다. 뭔가 딱 떨어지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일은 디테일이 훌륭하고 완벽하지만 중간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무척 힘들어한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포기해 버린다. 과거 실패한 빵들과 쿠기들은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쓰레기통 행이었다 .유연함이 부족하고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다.
이렇게 우린 각자 잘하는 거 하면서 살고 있다. 누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라기보다는 각자의 성격과 취향이 다를 뿐이니까. 인간관계에서 이런 차이점만 알아도 관계는 한결 유연해질 수 있다. 이런 딸의 성격 덕분에 나는 매년 생일 때마다 집에서 만든 수제 케이크를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