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무지한 것은 죄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람들은 '모르고 그랬다. 나도 몰라서 어떻게 해야 하는 줄 몰랐다. 몰라서 그런 거니 네가 이해해 달라는'는 핑계를 제일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은 죄에 가깝다고 믿는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하고 섣부르게 선택하거나 행동하지 말고 알아야 할 것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주의이다.
하지만 내 인생을 돌아보니 모르고 선택한 것도 많고 몰랐기 때문에 성공한 것도 많았다. 만약 아이를 낳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딩크족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첫째는 무통분만도 하지 못한 채 완벽한 자연분만을 했었다. 그때는 정말 남편이고 아이고 나를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줄 사람이 있다면 다 포기하고 싶었다. 크리스천인 나는 나도 모르는 원죄까지도 주님께 용서를 구했다. 그렇게 회개라도 해서 그 고통을 면하고 싶었다.
아이 키우는 건 또 어떤가? 아이들이란 존재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마구마구 가져가는 존재들일 줄 몰랐다. 가장 행복하고 뿌듯하고 감사한 존재이면서 나를 가장 비참하게 하고 화나게 하고 슬프게 만드는 존재가 되기도 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아이를 낳을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결혼도 육아도 완벽히 잘 몰랐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다.
결혼과 육아뿐만 아니라 공부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가끔 미국에서 나처럼 Licesned Marraige Family Therapist (LMFT)가 되고 싶어 하시는 한국분을 종종 만난다. 한국으로 말하면 국가 공인 심리치료사쯤 될 것 같다. 미국은 국가 공인시험보다는 주(State) 법이 더 중요하기에 각 주에 따라 임상심리치료사로 교육받고 훈련하고 시험을 치르는 것이 조금씩 다르다.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는 LMFT가 공인된 심리치료사로 가장 많이 일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주에서 주는 license (자격증)가 거의 국가공인자격증과 같다. 그래서 그만큼 교육과 훈련과정이 까다롭다.
나에게" LMFT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묻는 분들에게,
"일단은 상담심리 대학원을 졸업하셔야 해요. 근데 만약 학부 때 심리학이나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으셨다면 대학원 입학하시기 전에 심리학 관련 필수 수업 몇 개를 들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 졸업 전에 실습 보통 500-700시간)을 하셔야 되고 학교에 따라서 저처럼 졸업논문을 써야 할 수도 있고, 졸업발표를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졸업 후에도 인턴 과정을 하셔서 총 3000시간을 채우시고 자격증 시험을 통과하셔야 LMFT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실습과 인턴 3000시간을 채우는데 얼마나 걸리나요?'라고 물어보신다. ' 그건 사람마다 다 달라요. 무조건 내담자를 만나는 1:1 상담시간이 1750시간이 넘어야 하고 나머지 1250시간은 슈퍼비전이나 훈련, 상담일지 쓰는 시간으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실습생이나 인턴들에겐 일주일에 10-20시간 정도의 상담시간을 주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얼마나 상담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실상은 일주일에 10시간 상담도 못하는 경우도 많고요. 대학원 실습기간엔 10시간 대면상담에 3시간 슈퍼비전이 필요하고 졸업 후 인턴에겐 20시간 상담이면 3시간 슈퍼비전이 필요해서 생각보다 많이 할 수가 없습니다. 보통은 풀타임으로 하면 2년 반에서 3년 걸리고 풀타임으로 하지 않으면 훨씬 더 오래 걸립니다. 그리고 보통 인턴 시간 동안에는 최저시급정도밖에 받지 못해요."라고 말한다.
"아? 정말요. 그럼 졸업하고도 3-4년은 해야겠네요. 그 시간 동안 돈도 많이 못 벌겠네요?"라고 다시 물어보신다.
"네..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해도 자격증을 못 받으면 최저시급정도 혹은 거기서 조금 높은 정도밖에 못 벌어요. 그래서 좀 힘들죠"
"아... 생각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못 버네요"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랬다. 미국에서 심리치료사가 되는 건 공부와 훈련시간은 오래 걸리고 돈은 많이 못 벌었다. 나는 처음에 심리치료사가 되려고 할 때 이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대학원 정도 나오면 어디에서나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너무도 무식하게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입학원서를 낸 것이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서 알았다. 졸업을 하고 나서도 실습시간을 3000시간이나 채워야 하고 4시간이 걸리는 시험을 통과해야 된다는 것을. (간혹 한국에선 이 실습시간을 복지관에 인맥이 있거나 돈을 주면 대충 사인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런 부조리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 정말 5분 10분까지도 정확하게 계산했고, 슈퍼바이저가 일일이 다 사인을 해야 한다. 그래서 절대로 1-2년 안에 끝날수 없는 훈련이다.) 내가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았다면 막내를 낳고 애 셋을 데리고 7-8년이 걸리는 과정을 절대로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엔 대학원 3년이면 끝났줄 알았기 때문에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공부를 시작했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끝까지 간 것뿐이었다. 어쩌면 무식했기에 가능한 도전이었다.
나에겐 이처럼 무식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 꽤나 많았다. 미국에 정착한 것도, 결혼을 한 것도, 아이를 낳고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도 어쩌면 적날한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가능했던 것 같다. 그냥 너무 멀리 바라보지 않았고 오늘 하루, 이번 한 달, 이번 한 학기 최선을 다했을 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고 스스로 자책을 하기도 했지만, 또 기쁜 일도 생기고 뿌듯할 때도 스스로 성장하고 잘했다고 칭찬할 때도 생겼다.
나는 비혼이나 딩크의 삶이 전업주부의 삶이 좋은지 나쁜지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 정답은 없다고 믿는다. 다만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최선을 다하고 만족하느냐에 있는 것 같다. 비혼으로 살면서 결혼한 부부를 부러워하거나, 아이를 낳고 살면서 딩크족을 부러워하며 현실을 원망하는 삶이 가장 불행하고 어리석다고 믿는다. 그게 원하든 원치 않았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이 가장 좋은 길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가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버티면 좋은 날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인생은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