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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맹글 Feb 07. 2022

아가들아 잘 가, 행복해야 해

5마리의 꼬물이들과 헤어지며

작년 11월 27일 밤에 찾아온 5마리의 강아지들이 벌써 두 달을 훌쩍 넘겼고, 그동안 삽살개 재단에 가서 등록도 하고 혈통서도 받고 1차 혹은 2차 예방접종까지 맞으면서 각자 새로운 가족의 품으로 갈 시간이 다가왔다. 재작년에 찾아온 3마리의 강아지들 중 곰이를 제외한 두 마리는 정말 좋으신 분들이 가족으로 맞이 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셔서 보낼 때 아쉬움도 있었지만 뿌듯함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이번 아가들은 5마리 모두 분양이 완료되었다. 중간에 계약 취소를 하시거나 마음이 변하셨다고 연락을 주시거나 혹은 책임을 못 질 거 같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셔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그런 분들에게 우리 아가들이 가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안 가게 된 것이 천운이라고 생각하기에 취소해주셔서 감사했다.

삽살개 재단과 동물병원을 다녀 온 날, 차 안에서

이번 5마리의 아가들은 재작년에 찾아온 아가들보다 태어날 때부터 덩치가 컸고 성장 속도가 남달랐다. 삽살개 재단에서조차 깜짝 놀랄 정도였고 털이 너무 윤기 난다며 아가들 모두 건강하고 너무 좋다고 칭찬이 가득하여 왠지 모르게 내가 뿌듯하고 아가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그만큼 두리가 잘 돌본 것이기에 두리가 자랑스럽기도 하였다. 건강한 만큼 성장 속도가 빨라서인지 젖을 먹으면서도 사료를 먹기 시작하는 시기가 지난번 아가들보다 빨랐고, 집 밖으로 나와 잔디밭에서 걷기 시작한 것도 빨랐고, 뛰어다니며 집 마당 동네방네를 다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도, 날아다니며 뒤를 쫓아와서 깜짝 놀라게 하기 시작한 것도, 대소변을 장소를 가리며 최대한 산책 시에 대소변을 누기 시작한 것도 빨랐다. 사실 지난번 아가들은 떠나기 직전까지 두리 집 밖을 나오는 데에도 겁이 많아 힘들어하였고, 잔디밭에서 걷다가 뒹굴다가만 하다 떠나갔는데 이번 아가들은 우리, 두리, 곰이를 따라 한옥집으로 내려갔다 오기도 하고, 뒤 텃밭에 따라 올라가기도 하며 자신들의 영토를 넓혀 갔다. 거기다 앉아 있으면 무릎 위로 올라타서 가만히 앉아서 만져주는 손길을 즐기기도 하고 귀와 꼬리를 팔랑이며 쫓아오기도 하였다. 가끔은 예상한 것보다 따라오는 속도가 빨라 밟을 뻔한 적도 있을 정도로 애교 넘치는 발랄한 아가들로 매일매일이 복닥복닥 되었던 것 같다.

우리, 두리, 곰이, 그리고 5마리의 아가들

그런 아가들이 하나 둘, 서울, 김해, 전주, 보령 순으로 떠났다. 목줄을 해서 묶어서 키우지 않고, 끝까지 아가들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들로 수소문하였고, 김해는 동생이 직접 새 가족이 되실 분의 집에 찾아뵈어 황삽살개를 품에 안겨드렸지만, 나머지 분들은 직접 부모님 댁에 찾아와 주셔서 새 가족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도 공유하고 차도 함께 마시며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백삽살개 두 마리와 황삽살개 한 마리를 안겨드렸다. 이번 주 수요일에 마지막으로 평택으로 가게 된 청삽살개만이 집에 남은 지금, 독일에 떨어져 있는 나도 휑한 마음이 드는데 아빠는 더한가 보다. 전주로 간 백삽살개인 아가가 이상하게도 새 가족이 오기로 약속한 날이 되기 3일 전쯤부터 유독 아빠를 많이 따랐다고 한다.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밥 먹기 전 마당에 풀어주는 시간에도 아빠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다리에 매달리고 안겨서도 가만히 있었다며, 그래서 그런지 그 모습이 많이 밟힌다고, 아가가 전주로 떠난 날 밤, 나와의 영상통화 속의 아빠의 얼굴에 허전함이 가득 보였다.

오늘 황삽살개 아가가 떠나기 전 마당 모습

나는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첫째로 태어난 덩치도 가장 크고 장난감을 좋아하고 나를 엄청 좋아하는 게 어릴 때 우리를 가장 많이 닮은 황삽살개가 눈이 많이 들어왔다. 독일에 데리고 오고 싶을 만큼, 내가 직장을 다니고 이사를 할 일이 곧 없고 조금이라도 삶이 안정적이었다면 고민 한 번 하지 않고 내가 키우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사실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 이리저리 정보를 찾아봤을 정도로 마음이 많이 간 아가였다. 그런 아가가 오늘 보령으로 떠났다. 떠나기 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어 한국의 아침시간까지 깨어 있다가 아빠가 아침 산책을 시키시는 모습을 cctv로 확인하고 바로 전화를 걸어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떠나기 전 샤워를 하고 완전히 마를 때까지 거실에 있던 나의 최애 아가

이번에도 다들 좋은 분들 품에 안겨 간 것을 잘 안다. 아빠, 엄마, 동생이 좋은 분들, 강아지를 잘 키우실 것 같은 분들이라는 확신이 드는 분들에게 아가들을 안겨드렸을 것에 의심은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 아가들은 떠나가는 모습에 마음이 왠지 모르게 더 휑해지는 건 왜일까. 부정적인 내가 아빠에게, 그 집은 이렇게 저렇게 하면 어떡해, 이러면 어떡해, 등의 우려를 표할 때마다, 다들 눈에서 꿀이 떨어지고, 이런 것도 준비해 오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시고, 강아지도 이미 키워 보셨고, 가족 구성원도 이러이러해서 아가를 돌보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많고, 등등의 이야기들로 우리보다 더 잘 키워주실 것 같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이야기를 해주는 아빠조차, 이제는 아가들을 떠나보내는 것도 힘드네,라고 말을 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또 눈물이 났다. 아가들이 떠난 집 마당에 우리와 두리, 곰이가 열심히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휑해 보이는 건 그만큼 아가들이 잘 있다가 간 것일 텐데 괜히 그런 마당을 보고 있자니 울적해진다.

매번 난리법석이었던 자유시간

무슨 말만 해도 눈물이 글썽글썽해지고 눈 와 코가 빨개지는 나의 모습을 보던 아빠는, 다음에 한국에 왔을 때 보령에 보낸 황삽살개 집은 유리온실을 하시는 분이니 농장 구경 겸 아가가 잘 크고 있는지 보러 놀러 가자고, 그리고 우리와 두리, 곰이와는 집 근처 칠곡보에 산책 겸 바람 쐬러 함께 가자고 말해주었다. 다음 한국행은 박사논문 통과 후에 가기로 나 자신과 약속하였기에, 위 아빠의 말이 하루빨리 실행이 되려면 뼈를 깎는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얼른 논문 수정을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 지난번 아가 중 서울 성북구에 있는 “리틀빈스” 라는 커피가 아주 맛있는 카페로 간 ‘보리’를 만나러 잠시 방문을 했었다. 1년만에 훌쩍 자란 보리 모습에, 그리고 나와는 첫 만남이었음이도 내 몸에서 우리와 두리, 곰이의 냄새가 났는지 머뭇거리지도 않고 다가와 꼬리를 흔들며 냄새를 맡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고 감격스러웠다. 가끔씩 카페에 출몰하는 보리 모습을 엄청 좋아해주시는 분들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행복해 보이는 보리 얼굴과 사랑 가득 받으며 지내는 모습에 내 마음은 정말 감사함만이 가득했다. 이렇게 다른 가족들도 계속 연결해서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사진도 공유하며 소식을 전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도 없을 것 같다. (이미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걸까..)

보리와 헤어지기 마지막에 급히 함께 찍은 사진 두 컷

매번 어렴풋이 두려움으로 마음 한편에 있었지만 외면했던 우리, 두리, 곰이와의 언젠가 일어날 이별이 이번 아가들과의 헤어짐으로 더 큰 무서움이 되었다. 두 달 반 정도를 함께한 아가들과의 헤어짐도 이렇게 힘든데, 우리, 두리, 곰이를 보내야 할 때는 얼마나 힘들지 가늠이 되지도 않는다. 가능하다면 내가 살아 숨 쉬는 동안은 우리, 두리, 곰이도 함께 같이 살아 있으면 좋겠다. 정말 그럴 수만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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