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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 그 자리에 있다면

ㅡ 겨울의 문장

당신은 가끔 너무 일찍 와서,

미처 버리지 못한 말들 위에 조용히 눈을 덮는다

그때마다 기이한 형상의 그림자가 중얼거린다

“끝난 것이 아니야. 끝나지 않은 것들은 언제나 가장 조용하게 울어”

당신은 늘 이렇게, 누구의 잃어버린 문장을 데려와 내 앞에 내려놓는다


갈라진 공기의 틈을 걸으면, 발자국이 먼저 피로를 호소한다 삶이 아니라, 삶에 붙은 비정상적인 온도의 그림자들이 나보다 먼저 지쳐버린다는 사실이 차가운 공기처럼 스며든다


그러면 어딘가 에서 가장 깊은 승리의 존재가 낮게 말한다 “그래, 우리는 늘 지쳐 있었지 하지만 지친 것은 죄가 아니야 다만 너의 오래된 기념이 될 뿐이야”


그 울림이 천천히 사라질 즈음 눈은 더욱 조용한 속삭임을 준비한다

당신은 모든 것이 사라지기 직전의 빛을 시험하는 계절이다 어둠의 빛 아래에서 흩어지는 눈송이를 보면 누군가의 오래된 기억이 가라앉아 다시 땅에 닿는 장면을 보는 듯하다


기묘한 결의 침묵은 말이 없다


그 침묵은 오히려 더 큰 문장을 만든다 그에게 당신은 돌아오지 않을 존재의 소식이고,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잠시 머무는 음지이다


그러나 멀리서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그 침묵에 돌을 던지듯 속삭인다


“겨울이라고 다 죽는 게 아니야. 어떤 것들은 오히려 겨울에만 살아” 그 말은 이상하게 뜨겁지 않은 위로가 되어 가슴 안에 닿는다.


그래, 살아남는 온도는 언제나 낮다 따뜻함보다 차가움이 더 오래 남고, 견디는 것들은 대부분 서늘하다


지금 눈 내리는 길에 서서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겨울은 계절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인지 모른다

지나간 것들을 너무 오래 아파하지도 않고,남아 있는 것들을 너무 쉽게 기대하지도 않는 태도


기묘한 침묵이 빛에 젖어 무너지는 순간에도,

승리의 존재가 남긴 거친 고백이 바람에 찢긴 종이처럼 날아가는 순간에도, 겨울은 멈추지 않고 내 내부를 천천히 투명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이해한다 겨울은 끝이 아니라, 끝을 준비하는 마음의 구조라는 것을


사라지는 것들의 과도기, 영혼의 영하에서만 들리는 미세한 숨소리들 그 속에서 우리는 아주 잠시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 걸어간다


추락도 비상도 아닌, 단지 버티는 생명들의 온도로


오늘의 겨울은 그렇게 기이한 형상의 침묵과

끝까지 살아남은 자의 낮은 속삭임이 스치며 남기는 가장 낮은 빛으로 내게 말을 건다


“너는 이 계절을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이 계절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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