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하고, 괴로워하고..
인생 최초로 승진이란 걸 하게 되었다.
똑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주임이라는 직함을 달았고 팀에 변화도 생겼다. 적응하는 중이고 적응은 역시 긴장된 어깨로 인한 승모근의 뻐근함을 동반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정신적 긴장도도 꽤나 높아서 요즘 더욱이 드는 생각이 있다.
"일만 하고 싶다!"
예전부터 나라는 사람 자체가 학교에서는 공부만 하고 싶어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학교만큼 본질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건덕지가 많은 회사에서도 동일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 일만 할 순 없을까?
내가 그렇다고 미디어에서 그려내는 mz세대처럼 6시 땡 치면 저는 할 일 다 했으니 들어가보겠습니다 하는 식의 사람은 또 아니다. 자유로운 사담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들도 좋아하고, 초과근무에서 질질 끌며 진행되는 과정도 쉽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들은 결국 본질적인 '일'로 다시 귀결이 되는 경우들이다.
반면에 '이슈'라는 이름으로 어른스럽게 포장되지만 들춰보면 청소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은 일진놀이, 뒷담화, 말전하기 (오히려 더 고도화된)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도 재미있지가 않고 과도한 피로감으로 돌아오곤 한다. 사적인 감정으로 누구에겐 주어지는 중요한 일들과 누구에겐 몰아지는 허드렛일 등등..낭비되는 인력을 보며 생기는 무력감까지, 어쩔 때는 아직 선생님 혹은 감독관이 필요한 수준의 사람들이 성인과 고학력자라는 이름 하에 회사에 집합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일의 성과만큼이나 뭐든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관계라던가, 인맥이라던가 하는 게 업무의 완성도보다 중요하게 느껴지고 실제로 더 중요한 경우도 많이 보았다. 특히 나는 사람 대 사람으로 진행되는 커뮤니케이션의 비중이 큰 직무에서 일하다 보니 더욱 그랬다.
그럼에도 나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실제로 누가 일을 하는가 였다. 그래서 실제로 1인분 혹은 그 이상을 하는 사람들의 바쁨에서 오는 담백함(본질에만 딱 집중하는)이 더욱 좋아지는 요즘이다.
다른 경우로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지금 하는 행위, 삶 전반에 대한 완전한 신뢰가 없을 때 찾아오는 불안은 참 곤란하다. 마인드셋을 완벽하게 가져가도 툭 치면 무너지거나 의외의 포인트에서 큰 사단이 나기도 한다. 나는 내가 불안을 워낙 쉽게 느끼고 나는 이것이 내 고질병이란 걸 빠르게 인정해버렸다. (한마디로 항복했다) 그리고 불안하지 않게 마인드셋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 불안한 상태에서도 잘할 수 있게 불안을 나의 디폴트로 가져갔다. 반대로 불안하면서도 마음이 편해졌다. 익숙한 불안이다.
아 나 또 땀나네, 또 다리 떨고 생각 정리 안되네 생각이 들면서도 나를 소중한 학생처럼 대하며 5분 안에 이것만 하자, 그리고 30분까지는 저것만 끝내자 하면 정신산만한 와중에도 1인분의 몫은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건 불안을 타파하는 정공법이 아니어서 초반에는 불안의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 안타까운 결과들도 많이 받았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이것이 더 적합한 플랜B이기에 지금까지 이 방법을 꾸준히 개발해왔다. 불안이야말로 그것이 외부에 의해 태어났든 나 자신에게서 태어났든 치료는 자가치료만 가능한 영역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작년 한 해를 나는 항상 '사람 스트레스'라고 정리한다. 사주, 타로 등을 전부 안 보는 사람이지만 만약 사주 풀이하는 사람이 나의 작년을 예측했다면 올해는 정말 아니다 아주 힘들거다 라고 했을 것 같다.
몇몇 인간관계를 새롭게 겪고 누구는 떠나보내며 내가 새롭게 노력하게 된 것은 사람에 급이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일이다. 나같이 허영심 많은 사람이 사람을 계급으로 안 나눈다는 것은 (그것이 경제적이든, 문화예술의 영역이든) 정말 불가능한 일이고, 한편으로는 나를 내 본체보다 더 예의있게 만들었던 강력한 생각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생각을 고쳐먹게 만든 건 또 어떤 사람을 나만의 체계 속에서 급을 나누며 나는 그렇게 한심한 사람이 아니고 같은 급이 아니라고 합리화하고 있을 때였다.
'내가 뭐라고?' 이 사람보다 내가 나은 점이 있다한들 정말 내가 뭐라고 타인을 계급에 넣어 무시할 수 있을까라는 자아성찰적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사람과의 관계가 너무 힘들어서 새롭게 돌파구를 찾은 걸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를 노력하게 만들었다.
내가 아무리 잘났어도 남의 등급을 매길 순 없고, 반대로 나보다 잘난 사람이 (애초에 그 잘났다는 기준 또한 계속 변한다) 나를 어떤 등급으로 매긴다고 내가 그에 들어갈 수 없는 것처럼, 내가 가진 화나는 감정이나 원망은 남겨두되 그것을 논리적으로 합리화하려는 게 상당히 추한 것 같다. 그것이 인간의 혹은 INTJ의 습성이라 한들 추한 건 여전하다.
그 생각은 생각보다 내가 감춘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눈에 솔직하게 비춰진다. 아무리 예의를 차려도 행동에서 느껴지고 말투에 배어있다. 나는 더 감추고 행동을 가장하기 보다는 생각을 조금씩이라도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나는 최화정 님처럼 나만 알고 있는 후진점을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퉁칠 정도로 대인배를 되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지하철에서 민폐 끼치며 밀어 타려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진짜 저렇게 되진 말아야지 생각은 든다.
그럼에도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낮은 급으로 밀어넣고 합리화하는 것 보다야 노력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는 더 수준이 높은 사람이니까 ~해야 한다는 논리는 분명 한계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