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한 사람은 불안한 상황에서 남탓을 한다
직장생활 만 3년을 끝내고 4년차를 맞이하며!
나약한 사람은 불리한 상황이 오거나 본인이 불안한 상황이 오면 남탓할 구석을 찾는다.
성인이 되고 몇년이 지나 많은 의문점에 해답이 되었던 나의 결론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미래의 잘못됨이 두려울 때 본인에게서 답을 찾지 않는다.
자신 만에서 답을 찾는 것은 꽤나 고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나약하고 그 안에 살짝의 못됨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감지하면 본능적으로 탓할 건덕지를 외부에서 찾는다. 그렇게 주변의 만만한 사람, 혹은 내가 처한 환경과 때로는 변명할 수 있는 운명(타고남)까지 남탓의 소재가 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그 속마음을 숨긴 채 혹은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채로 탓하고 괴롭히고 저주한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겉으로만 그 상황들을 봤을 때는 그저 그 사람의 못남만 눈에 보였다.
저 사람은 왜 이렇게 못됐지? 정말 인성이 저정도인가? 정말 저 나이 먹고 뭐하는 걸까?
사람의 인성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다각에서 다른 %로 보이기 때문에 나는 사람이 저런 못된 인성을 가진 것에 대해서 의문스럽다가도, 그렇게 못된 사람은 아닌데 왜 저럴까 싶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아 저사람은 불안한 상황에서 침착하지 못할 정도로 무언가를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이 못되고 나약한 거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나약함이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것이 나만의 결론일 수 있지만, 이제 더 이상 쓸데없는 의문을 가지진 않는다.
그런 의문을 가지는 것조차 정신적 칼로리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냥 나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이해하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고 그저 바라보며 나의 감정상태을 다스릴 뿐이다. 한결 회사생활을 나의 정신건강과 직결되지 않게 떼어놓을 수 있다.
반대로 이렇게 대입해보니 나의 나약함도 참 투명했다.
나의 나약함은 내가 무능력해보이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아, 저 이거 잘 못해요. 모르겠어요. 제가 실수했습니다 하고 덤덤하게 넘기면 될 것을, 기를 쓰고 내가 실수하지 않은 것처럼 수습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너무 수치스러워서 심장도 덜덜 떨린다.
저번주는 회의가 늦어져서 네일샵 예약시간 1분 전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그 날도 늦지 않기 위해 거의 첩보작전 마냥 선릉역에서 뛰어다녔던 내 모습이 수치스럽다. 네일샵에 한소리 듣기도 싫고 그렇다고 회의를 빨리 끝내버리는 사람이 되긴 싫은 이 마음을 어찌하리..
이런 기질이 많이 개선되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건 내 주변 환경이나 상황이 조금 안정화되었을 때 잠시 호전되었던 것이었던 것 같다. 요즘들어 불안한 나날과 사람이 반복되니 내 나약함 자체가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느낀다. 이 사회는 방해하면 방해했지 절대 나의 정신건강에 협의와 협조를 해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지하고 그것이 인성 되바라진 행동으로 발생되기 전에 머리와 정신의 단계에서 자신을 그르치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의 차이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
이런 나약함이란 만성 질환 같은 것이고 디스크같은 것이어서 완치는 어렵지만 운동으로 근육으로 휘어버린 척추뼈를 지탱하듯이 옆에서 무너지지 않도록 서포트해줄 순 있다.
어쩌면 이 또한 평생관리의 일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