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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자 빅토르 Aug 06. 2022

나의 첫 유럽여행

34일 차

잘츠부르크에서 체스키 크롬루프로 이동하는 날. 호스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잘츠부르크 중앙역으로 향했다. 호스텔 앞 공사장에 시멘트 때문인지 기내용 캐리어 바퀴 하나가 말을 듣지 않게 되어서 짜증이 났다. 그래도 이번 여행 마지막 나라인데 이런 일이 생겨도 기분 좋게 가자는 마음을 먹고 잘츠부르크 중앙역에 가는 버스에 몸과 짐을 실었다.


잘츠부르크 중앙역에 가니 여느 중앙역 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플랫폼이 있었고, 난 항상 그랬듯이 플랫폼을 잘 찾아서 경유지인 오스트리아 린츠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한 백인 여성에게 이 플랫폼이 린츠행 기차행 플랫폼이 맞냐고 물으니 맞다 그래서 안심이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줄리아. 일을 하러 프라하로 간다고 했다. 같은 기차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계속 나누었다. 그러다 기차가 왔는데 내 티켓에 좌석이 없어서 줄리아에게 내 티켓 이상하게 좌석이 없다고 하니 내가 좌석 예약을 하지 않았던 것. 


너무 당황스러웠다. 3시간을 서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막막했는데 줄리아가 "나랑 퍼스트 클래스 같이 타자! 걱정하지 마 내가 내줄게!" 15분 전에 만난 사람에게 퍼스트 클래스 티켓 값을 내준다는 줄리아.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호의를 베푸는 줄리아가 너무 멋있었고, 나도 바라지 않고도 호의를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린츠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퍼스트 클래스, 좌석도 넓고 사람도 없어서 조용하니 너무 좋았다. 승무원이 티켓 검사를 하는데 추가 지불하지 말고 그냥 타라고 한다. 퍼스트 클래스 공짜 탑승. 나랑 줄리아는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계속 웃었다.


린츠에 도착해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나와 줄리아는 빵집에서 빵과 커피를 사서 굶주린 배를 채우고 다음 기차에 올라탔다. 또 같은 기차를 타니 너무 좋았다. 여기서도 표 검사를 했는데 또 돈을 낼 필요가 없다고 하는 승무원. 이 기차 시스템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고 1시간이 지나니 다른 승무원이 돈을 받으러 우리 칸에 왔다. 줄리아가 30인가 300 코루나를 내주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내가 줄리아 보다 먼저 내려야 해서 너무 고맙다고 포옹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주고받고 다음에 줄리아가 잘츠부르크에 식당을 차리면 꼭 가겠다고 그리고 줄리아가 한국에 오면 내가 정말 맛있는 한식을 대접하겠다고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안녕 줄리아.


체스키 부데요비체 역에 내렸다. 여기서 플릭스 버스를 타고 체스키 크롬루프로 간다. 처음에 버스 정류장을 찾아 헤매었다. 아무리 봐도 버스 정류장은 있는데 플릭스 버스 정류장은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플릭스 버스를 타야 하는데 정류장이 안 보인다. 근데 구글맵에는 여기라고 뜬다고 하니 쇼핑몰 3층이 플릭스 버스 정류장이라고 알려준다. 왜 정류장이 3층에 있어... 쇼핑몰로 들어가 3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보이는 플릭스 버스 정류장. 1번 플랫폼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일본인처럼 보이는 한 남자가 같은 플랫폼으로 왔다.


나랑 같은 버스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나랑 같은 버스가 맞는지 물어보니 같은 버스가 맞았다. 심심했는데 이야기하면서 가면 되겠다 싶어서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니 한국인. 한국인??? 난 그의 외모가 일본인 같아서 당연히 일본이라 생각했는데 한국인이라니. 더 웃긴 거 그도 날 외국인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 그의 이름은 한민. 한민이형은 여행하는 동안 머리와 수염을 길러서 일본인처럼 보였던 것. 면도하고 머리를 자르면 누가 봐도 한국인처럼 보일 외모였다. 하지만, 난 어디서든 한국인이냐는 질문을 받는 외모. 같은 한국인끼리 서로를 외국인으로 생각했다는 그 사실이 너무 웃겼다.


한민이형과 같이 플릭스 버스를 타고 체스키 크롬루프로 향하면서 서로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가 오늘 저녁 같이 먹겠냐고 물으니 오늘 토끼 다리 먹으러 갈 건데 괜찮겠냐고 묻는 한민이형에 질문에 안 먹어 본 음식 다 먹어보고 싶다고 말하고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형이 먼저 버스에서 내렸다. 난 숙소 체크인하고 짐을 풀었다. 내가 예약한 에어비엔비는 넓었다. 침대도 2인용 침대. 푹 쉬다가 저녁에 한민이형을 보러 시내로 나갔다.

숙소에서 시내까지 도보 2분. 시내라고 부를만한 도시가 아니었다. 

꽃보다 할배 영향이었을까. 한국인이 정말 많았다. 이 조그만 도시에 한국인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역시 미디어에 영향력은 대단하다. 한민이형 보러 가기 전에 체스키 크롬루프 성에 갔다. 성 입구에는 곰 두 마리가 살고 있다. 옛날에 그 곰들이 성을 지켰다고 한다. 곰들이 살기에 위생적으로 좋아 보이지는 않아서 아쉬웠다. 성에서 내려다보는 체스키 크롬루프는 정말 동화 그 자체였다. 이 도시로 여행 오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만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성에서 내려가는데 마주친 한민이형. 볼거리가 워낙에 없어서 마주치기 쉬운 도시 체스키 크롬루프. 형과 다시 성 뷰 포인트에 가서 풍경을 한 번 더 보고 이야기를 하다가 토끼 다리를 먹으러 향했다. 조그만 골목에 위치한 예쁜 식당에서 내가 좋아하는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 맥주에 토끼 다리 그리고 소시지와 맛있는 디저트까지. 조그만 테이블이 가득 차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 보였다.

토끼 다리는 닭고기 같았다. 토끼 다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먹었으면 닭고기를 먹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맛있는 음식에 맛있는 토크가 더해지니 너무 행복했다. 한민이형과는 이야기가 정말 잘 통했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대화가 너무 편했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한민이형의 태도가 참 좋았다. 10년 후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궁금하다고 하는 한민이형. 나도 형의 10년 후가 너무 궁금했다. 얼마나 더 좋은 사람이 되어있을지 말이다. 여행에서 이렇게 좋은 형이자 친구를 만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행복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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