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 Jan 14. 2021

못난 기억

나는 그 유명한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은 센 가시 돋친 사람이었다.

핑계를 대자면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서 야무지긴 해도 지혜롭지 못하고,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시달렸지만 진짜 착한 사람은 아닌, 밝은 것 같지만 모난 성격.

번듯하게 내세울만한 그 어느 것도 내겐 없었다.

나의 이런 부족함을 남에게 들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20대 초반이 떠오르면 아주 죽을 맛이다.


모든 사람들과 경쟁하듯 살았고,

선의를 베푸는 동료에게도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나와 친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눠 표 나게 행동했었고,

연차가 쌓이면서는 알량한 거드름도 피웠다.

참 못났고, 세상 낯부끄럽다.


결혼을 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면서 가시 돋친 게 좀 없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아이를 낳고나서부터, 그러니까 3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20대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쌈닭처럼 살았을까?

지금처럼 웃으면서 얘기하고 부탁했어도 잘 해결됐을 문젠데... 하는 후회.

이런 후회가 들 때면 이불 킥을 하게 된다.


요즘처럼 밤낮이 바뀌어서 불면의 새벽을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을 때는

첫 직장의 선. 후배. 동료들이 한 명씩 생각난다.

날 선 감정을 주고받았던 상황은 생각나는데, 정작 무엇 때문에 그리 뾰족하게 행동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 난다.

별것도 아니었을 일에 날을 세우고 고개를 치켜들었을게 뻔하다.




성경책을 자진해서 읽는 편도 아니고 그저 성당에서 성경 공부할 때 진도에 맞춰 읽거나,

읽더라도 순서대로 읽는 편이라 신약 정도나 읽었을까 시편까지는 손도 못 댔는데,

어쩌다 이 구절을 읽게 된 것인지 알 수 없고 그저 신기하다.


- 시편 75장 6절 -

고개를 치켜들고 무례하게 말하지 마라.

이 구절을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진작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자세가 아닌 싸움의 자세로 준비되어있었다.

무례한지도 모르고 필터링 없이 말하고 행동했었다.

나의 말과 행동에 상처까지는 아니였어도, 감정이 상했을 과거의 동료들에게 정중하게 말하고 싶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용서 바랍니다.


같은 후회를 하지 않기 위해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한번 더 미소 짓는 연습을 한다.

한껏 욕심을 부리자면 25년 전 그때, 희미하게나마 나 때문에 기분 나쁜 기억을 갖고 계신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불쾌함을 없애달라고 화살기도를 올려본다.

그리고 내 두 딸들에게 이 부끄러운 경험을 공유하고, 딸들은 같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교육해본다.


작가의 이전글 엄마의 언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