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둘째 딸은 중학교 3학년입니다.
어릴 적 말을 너무 빨리 습득했고 의사표현도 정확해서 슬쩍 기대를 했었더랬어요.
20개월쯤부터 정확한 긴 문장으로 말할 수 있었고, 세상 무섭게 생긴 외할아버지와 말싸움도 가능했기 때문에
명석한 두뇌와 강한 심장과 통 큰 간을 가졌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but,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6살이 되도록 글도 모르고 책에 관심도 없이 그냥 말 만 잘하는 아이로 자라고 있었어요.
법과 규범을 중시하고 봉사정신이 강한 정신이 건강한 아이죠.
아이가 왜 그런지 이해를 못 했는데, 애니어그램을 통해 검사를 해보니 1번 성향을 가진 아이더라고요.
중학생이 되면서 공부를 꽤나 열심히 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건 아니지만 욕심이 많아서 남들이 다니는 학원은 다 보내달라고 하더라고요.
국어도 과학도 먼저 시작한다고 조르는데, 사실 저는 큰애가 고등학생이라서 학원비가 너무 버거운 상태입니다.
더는 학원에 보내줄 수 없으니 너도 다른 길을 찾아보는 노력을 해보라고 했죠.
동영상 강의 또는 스터디그룹이나 독학 등 여러 방법을 생각해보고 상의하자고 하고 대화를 끝냈는데,
30분 후 남자 둘 / 여자 둘 총 4명이 통합과학 스터디그룹을 결성해왔더라고요.
게다가 과학고등학교를 준비했을 정도로 수학. 과학을 잘하는 친구들로 말이죠.
제 딸이지만 추진력 하나는 인정하게 된 사건입니다.
함께 공부하기는 너무 차이가 심하게 나는 아이들이다 싶어서
엄마 : 굳이 그렇게까지 잘하는 애들하고 스터디할 필요가 있니?
딸 : 내가 배우는 게 거의 대부분일 텐데 걔네들이 설명을 잘하는 애들이야.
그리고 소문나도 잘하는 애들한테 배운다고 하면 덜 창피해.
그렇게 두 달 정도 일요일에 우리 집 거실 식탁에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말고사 끝난 주말에는 넷이 모여서 탁구도 치고 코노도 가고 하더라고요.
내심 함께 공부하는 부모들이 싫어하는 건 아닌지... 저러다 싸우거나 무시당하면 어쩌나, 남자애들과 여자애들이 다른 맘을 가지면 어쩌나, 이런저런 쓸데없는 걱정들을 안 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같이 공부하는 남자아이가
"야! 우리 평생 이렇게 공부하자!"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실현 불가능한 얘기지만 참 기특하고 이뻐요.
원래 고등학교 통합과학을 미리 준비할 목적으로 만든 스터디그룹인데, 기말고사 준비하느라 선행은 못한 상태이고 이번 주부터 고1 통합과학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지들끼리 상의해서 공부할 교재를 정하고, 친구들과 가르쳐주고 배우면서 예쁘게 공부하고 있어요.
사실 학원을 보내는 게 진도도 빠르고 신경도 덜 쓰이겠죠.
그래도 지들끼리 서로 뭔가를 해보겠다고 논의하고, 물어보고, 가르쳐주려고 먼저 공부해보고 하는 게 대견합니다.
공부 이외에도 남사친이 없어서 우리 아이들은 좋은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거든요.
몇 달 하다가 겨울방학 때쯤에는 학원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죠.
생각보다 완성도가 떨어져 괜히 허성 세월 보냈다고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뭔가를 계획하고 시도했고, 실패한 경험치가 남을 테니 그걸로도 좋습니다.
매주 일요일 3시간 동안 거실을 비워줘야 해서 남편과의 강제 데이트가 계속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