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의 겨울바다에서
재환
찬바람 부는 동해의 겨울바다에 서 본적이 있는가
그 많은 여름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수만 번의 바람을 일으켜 덧칠하는 수고스러움을 아는가
흔히들
겨울바다는 쓸쓸하다고 하지
겨울바다는 황량하다고 하지
겨울바다는 삭막하다고 하지
하지만 그들은
바다의 화장한 얼굴만 본 때문이야
겨울바다에는
배우의 연기에 익숙해진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
지난여름 잘못 그린 사랑과
지난가을 잘못 쌓은 추억을
후회하며 서성이는 사내의 발자국만이 있을 뿐
하얀 도화지는 바다가 준비하고
거친 붓은 바람이 준비하고
참회와 변화의 스케치를 내가 준비하면
그 후회스러운 지난날의 그림을
다시 그릴 준비는 끝난거야
영일만의 겨울바다는 누구에게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너그러움이 있는거야
흰 도화지 깔아놓은 그곳에서
다음 그림은 제대로 그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