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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안한 제이드 Jan 19. 2024

직업이 나를 설명하진 않았으면 하지만

하지만 나는야 커리어분야 크리에이터


  몇 달 전쯤, 20년 경력의 (도서) 편집자가 작가인 북토크에 갔다가 생각이 많아졌단 내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분의 여러 이야기 중에 내가 가장 부러웠던 것은 20년에 걸친 편집자 커리어에 대한 애정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그 어떤 것. 경력에 대한 자부심이나 사랑 같은 것. 브런치에서도 자기 프로필에 자신의 직업을 제일 먼저 써 놓는 사람들을 보면(수의사로서의 삶을 기록합니다 등) 늘 그렇게 질투가 났다. 왜냐하면, 나는 내 직업으로 나를 설명하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100%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전공이 아니었고, 100%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직업이 아니었다. 수능 점수에 맞추어 취업이 잘될 것 같은 학부에 들어갔고 그중에 그나마 마음이 가는 전공을 선택했으며, 취업할 때에는 말 그대로 '나를 붙여준' 곳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직장에서 10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자기소개를 해야만 하는 자리에 나가 내 직업을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냥 회사원이에요' 정도로 스스로를 설명했지만 그러면서도 늘 스스로를 약간은 경멸했다. 몇 년에 한 번씩 업무 성격이 바뀌는 공공기관에 다녔기에 나에게 그간 '경력'이라 할 만한 것은 전혀 쌓이지 않았다 생각해 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런치에서 내가 '스토리 크리에이터'로 선정되었다는 알림이 왔다. 오 나도 드디어 브런치로부터 꾸준히 글을 쓴다는 인정을 받았구나 싶어(크리에이터로 선정되는 기준에 꾸준함이 꽤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고 맘대로 생각함), 살짝 들뜬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마음에 아주 크게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내가 '커리어 분야' 크리에이터가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크리에이터가 되면서 생긴 나를 설명하는 칸에는 브런치에서 정한 단 세 글자가 들어가 있었다. '회사원'.


  마치 세상이 나를 비웃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네가 아무리 브런치에서 온갖 글을 쓰며 회사원에서 벗어나려 아등바등해 봤자, 세상은 너를 회사원으로 본단다'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크리에이터로 선정된 것은 어쨌든 나쁘지 않은 일이었지만, 내가 커리어 분야로 분류된 것은 꽤나 충격이었다. 분명 나는 내 삶에 대한 에세이를 위주로 써왔던 것 같은데 어째서? 의문이 사라지지를 않았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브런치에서 그렇게 선정할 만했다.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자마자 열심히 연재해서 제일 먼저 완성한 브런치북은 <판타스틱 공공기관 유니버스>. 공공기관에 다니며 경험했던 일을 토대로 느낀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 브런치에서 조회수가 높은(인기 있는) 글들도 대부분 이 브런치북 시리즈에서 나왔다. 그만큼 공공기관 다니는 회사원으로서의 내 이야기에 사람들이 많은 공감을 보냈다는 뜻이 되겠다. 프로필의 작가소개란은 또 어떠한가? 비록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제일 먼저 써놓긴 했지만, 어쨌든 '직장인의 하루하루 살아냄을 기록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이력 란에는 제일 먼저 공공기관에 10년 넘게 다녔다고 첫 줄에 써놓기까지 했다. 브런치 팀에서 내 브런치를 살펴보고 커리어 분야에 넣기로 결정한 게 전혀 무리가 아닌 것이다ㅎ


사진: UnsplashMarissa Grootes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공공기관에 다닌 지난 10여 년의 시간은 내가 부정한다고 해서 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름 그 시간 동안 얻은 것도 많다는 것을. 내가 그 시간을 사랑했든 증오했든 간에, 10여 년이라는 세월을 견딘 것은 사실이고 그 시간 동안 열심히 매일의 하루하루를 살아간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시간 동안 소위 밖에서 말하는 '커리어'나 '경력' 같은 것은 못 쌓았을지 몰라도, 생활의 깨달음이나 공공기관에서만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경험들을 하며 나름의 삶을 살아왔다. 그 시간과 경험들이 브런치의 글들로 표출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심지어 그렇게 탄생한 글들이 꽤 사랑받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회사원'으로서의 나도 너무 싫어하지만은 않기로 마음먹었다. 


  여전히 나는 어딘가에서 나를 '회사원'으로 소개하는 것이 썩 내키진 않는다. 나도 '편집자', '의사', '마케터'처럼 내 전문성을 나타낼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물론 궁극적으로는 '작가'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싶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더 근사한 단어가 있길 바란다. 그렇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10년 넘게 달아온 이름표인 '회사원'으로서의 나도 너무 미워하지만은 않으려 한다. 앞으로도 당분간 함께해야 하는 타이틀이기도 하고, 지난 10여 년간 나를 살아가게 해 준 '업'이기도 하니까. 회사원 제이드는 오늘도 그렇게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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