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또 이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어릴 때 '노동'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건 '막노동'이라는 단어뿐이었다. 어른들이 하도 막노동 막노동 하길래, 아 노동이라는 건 어떤 건지는 잘 모르지만 어쩐지 굉장히 힘든 것이구나, 하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전교조 명부가 학생들 사이에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전교조라는 단체를 처음 들었다. 하지만 같은 반 학생들은 해당 조직을 신랄하게 비난하며 소속 선생님들을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실 그 선생님들에게는 교육적으로 비판할 만한 게 딱히 없었다. 오히려 더 친근하게 수업하고, 우리에게 관심 많은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을 보자, 해당 선생님들과 거리를 두고 싶어졌다. 이 단체는 무서운 단체구나, 하며 말이다. 그렇게 노동에 대해 편견을 키워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가 교사가 되었다. 친한 동료 선생님과 반 내 갈등에 대해, 교권에 대해 자연스레 이야기가 나왔다. 이후 노조 이야기가 덧붙여졌고, 그는 이미 노조에 가입되어 있다고 했다. 마음속 어디선가 막연한 거부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가입을 권유한 것도 아닌데, 어떤 불편함이 생겼다.
집에 돌아와 검색해 본 '노동'이라는 단어에는 정말이지 별 게 없었다. '몸을 움직여 일한다는 것',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행위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노동에 대해 뭘 그렇게 오해하고 있었는지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노조에 가입하기까지의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스스로 노동자임을 받아들이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노동이라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수업을 준비하고 상담하고 교육하는 건 분명 '몸을 움직여 일하는 행위'였다.
여기서 내가 오해했던 건 '일하는 행위'를 인정하면 마치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들과 있을 때 그 순수함이 좋고, 따뜻함이 좋다. 수업 준비를 하며 성취감을 느끼고, 상담으로 변화된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함도 느낀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내 일을 노동으로 인정하는 것은 사실 별개의 일이었는데 말이다.
교권과 아이들의 인권을 동시에 향상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찾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는 내가 노동자로서 존중받고, 아이들도 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교육받는 걸 의미한다. 언젠가는 교사와 학생이 전부 존중받는 그런 교실이 만들어지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