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는 노래가 된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그음 모래빛.'
한 아이가 콧노래를 시작하면 또 하나의 음이 더해진다.
곧이어 네 아이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노래가 된다.
요즘 우리 교실의 모습이다.
로제가 부른 '아파트'노래가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큰 유행이라지만
지금 우리 반의 최고 인기 노래는 '엄마야, 누나야' 이다.
수학 문제를 풀다가, AI 로봇을 만들면서도,
그림을 그리면서도 흥얼흥얼 노래가 나온다.
누가 먼저 ‘엄마야~ 를 시작하면
자연스레 누나야-~‘가 나온다.
이 노래가 우리에게 다가온 것은 바로 지난주 있었던 체험학습에서 나태주 선생님과의 만남 덕분이다.
11월은 협력학습 주제로 '인물'에 대해 공부하며 우리 고장의 인물인 나태주 선생님과 유관순 열사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체험학습을 진행했다. 유관순 열사는 내 고향 천안 병천에서 태어났지만 공주 영명학당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들리는 공주 도서관이 영명학당 안에 위치해 있으니,
나는 유관순 열사의 발자취를 꽤 자주 걷는 셈이다. 정작 공주에서 자고 나란 우리 아이들은 이곳을 가본 적이 없다.
나태주 선생님 역시 공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오랜 시간 근무하며 공주 곳곳의 이야기를 시에 담으셨다.
서천이 고향이라고는 하시지만 공주가 선생님의 삶은 고향은 아닐까 생각된다.
이 두 분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거닐어 보는 시간이었다.
독립운동 기념관을 시작으로 중앙공원, 근대문화유산길, 공주 제일감리교회를 따라 걷고
나태주 시인님을 기념하는 '풀꽃 기념관'은 현재 공사 중이라서 들어갈 수가 없어 지나치려 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니 위치만 보러 가자 하며 아이들을 인솔해서 데리고 갔는데,
체험학습 전날 사전답사 때에도 굳게 닫혀있던 문이 활짝 열려있고 대청소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벽에 적혀있는 나태주 선생님의 여러 시 중에서 아이들은 '행복' 시를 따라 큰 목소리로 낭송한다.
사실 낭송이라기보다는 군기가 꽉 들어찬 웅변과도 같은 큰 목소리였지만
나는 그 목소리 또한 행복이 가득한 울림이었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큰 목소리 때문이었을까? 청소를 진행하시던 도우미 선생님께서 나오셔서는
살짝 귀띔을 해주신다.
"나태주 선생님 지금 이곳에서 함께 청소 중이세요."
"네에? 세상에 무슨 일이야~" 이 만남이 놀라운 나와 은미샘은 환호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청소를 하다 급히 손에 흙먼지를 터시고는 아이들을 문학관 안으로 모으신다.
문학관이 꽉 차게 빙 둘러앉은 우리들과 나태주 선생님이 마주했다.
시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전해주시며,
좋은 시는 어린이에게는 노래가 되고,
청년들에게는 철학이,
나 같은 노인에게는 인생이 된다.
너희가 아직은 인생이니, 철학이니 잘 몰라도 된단다.
노래가 된다는 것만 기억하렴.
그래서 나는 내 시가 너희에게 노래가 되길 바란단다.
선생님이 연주하시는 풍금 반주에 맞추어 '엄마야 누나야' 노래를 함께 불렀다.
시가 노래가 되어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아이돌 노래에만 익숙하던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 보고 들어보는 풍금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풍금의 울림에 맑고 투명한 아이들의 마음과
고요한 멜로디가 모두의 마음에 닿았을 것이다.
체험학습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은
더 씩씩한 목소리로 나태주 선생님의 '행복' 시를 낭송하고,
'엄마야 누나야' 노래를 부른다.
아이들의 삶에 좋은 시가 다가온 것일 거라 생각한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모습이 좋은 시가 된다.
좋은 시가 바로 내 옆에 있었다.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노래하고 있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의 삶이 이야기가 되고 시(詩)이다.
훗날 아이들은 따뜻했던 가을날 나태주 선생님과 우연히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시를 나누고 노래하던 시간을 기억할까?
서로의 기억에 남은 그 시간이
우리 삶에 철학이 되고 인생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