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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윤식 Feb 19. 2024

이강인과 덴젤 워싱턴

크림슨 타이드 : 2인자의 품격

잠수함 영화는 하나의 장르라고 불릴 만큼 매력이 있는 소재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사불란한 계통체계상 발생하는 두 인물 간의 갈등이 그려지고, 상대방이 발사한 어뢰를 음파로 탐지하고, 긴박하게 반격을 하고 어뢰를 회피하는 긴박한 순간을 그려내어 많은 영화팬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도 한다. 나는 잠수함 영화 중에서 붉은 10월, 크림스 타이드 2편을 최고로 친다.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는 적분홍 물결이라는 뜻이며 피로 물든 바다라는 의미로 미해군의 1급 위기상황로 쓰인다. 이 영화에는 매우 권위적이고 엄격한 함장(진 해크먼)의 결정에 반대하는 냉철하고 원칙적인 부함장(덴젤 워싱턴)에 대한 영화이다. 잠수함에 탐재된 핵마사일을 발사하는 의사결정에 대한 의견차이로 함장과 부함장은 서로 격돌한다. 덴젤 워싱턴은 자신이 존경하는 함장임에도 불구하고, 함장과 부함장이 모두 동의해야 핵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는 규정을 근거로 함장의 명령을 거부하고 함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감금한다.


 통신이 불통되는 상황에서 두 사람의 판단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고, 상황인식에 대한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2인자였던 덴젤 워싱턴은 절차상의 문제를 근거로 함장의 명령을 거부했다. 함장은 절차의 문제보다는 사안의 중요성을 더 크게 생각하고, 직권으로 핵미사일을 발사시키고자 했다. 그러던 차에 러시아 잠수함으로부터 다시 공격을 받게 되자, 모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함장을 따르던 사람들이 함장을 풀어주고 다시 부함장을 감금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통신이 재개되고, 최종적으로 핵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은 것이 세계 3차 대전을 막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2인자가 1인자에게 도전하는 일이 생겼다. 국가대표 내에서도 위계질서가 있어야 하고, 나이가 9살(손흥민 1992년생, 이강인 2001년생)이나 차이나는데 버릇없는 동생이 반듯한 형한테 싸움을 건 게 문제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문제의 핵심은 나이의 많고 적음에 따른 하극상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손흥민은 국가대표 주장이었고, 이강인은 팀원이었다는 사실에 있다. 만약 이강인이 주장이고, 손흥민이 팀원이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나이, 성별, 인종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역할을 수행한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나의 보스가 될 수 도 있고,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의 고객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나이가 많고 전직 대법관이라도 재판장에 나서면 20대 여성 판사에게도 머리를 숙여야 한다. 나이가 많고 적고는 가족이나 친구나 선후배 등 사적인 관계에서는 통한다. 하지만 공적인 관계에서는 부여된 역할에 의해서 행동하고, 2인자가 1인자에게 반대행위를 할 경우에는 덴젤 워싱턴처럼 주어진 규정이나 근거에 의해서 행동해야 한다. 그게 2인자의 품격이다.


그리고 2인자가 품격을 갖추면, 1인자는 그 사태가 종료된 이후에 2인자에게 1인자 자리를 믿음직스럽게 물려줄 있게 된다. 나이가 9살이나 어린 동생이 형한테 덤벼든 게 문제가 아니라 주장에 덤벼든 팀원이 문제소지가 있는 것이다. 2인자가 1인자에게 덤벼들 때는 규정과 프로세스에 따라서 이뤄져야 한다. 함장이나 주장이 불합리한 명령을 지시했거나, 정해진 규정을 위반했을 때 가능하다. 탁구를 치는 것이 규정에 벗어나는 행위 인지, 탁구를 치는 것이 팀 분위기를 해치는 일이라고 판단하는 건지, 그걸 따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2인자가 1인자와 격돌했을 때 나이에 집착하고, 싸가지 없는 어린 동생이란 프레임이 먼저 나온다. 싸가지 없는 나이 많은 형이라도 어린 동생 주장에게 덤벼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2인자가 1인자의 의견에 반해 격돌할 때는 프로세스, 규정에 따라서 행동해야 한다. 잠수함에서는 모두가 평등할 수 없는 환경이다. 누군가가 지휘권을 가져야 모두의 생사여탈권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이강인이 크림슨 타이드를 보았다면, 덴젤 워싱턴의 행동을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여론이나 언론이 “싸가지 없는 동생이 능력 있고 착한 형한테 덤벼든 일”에 포커스를 맞추는 일보다는 품격 있는 2인자의 행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으면 한다. 1인자와 2인자는 공적인 공간에서는 나이가 아니라 역할에 따라 나눈다는 평범한 사실도 함께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오늘따라 덴젤 워싱턴의 크림슨 타이드 영화가 유독 더 생각나고 한번 더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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