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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Feb 16. 2024

하루살이의 부활

하루살이류(mayfly, shadefly)는 하루살이목에 속하는 곤충의 총칭이다. 유충은 민물이나 습지에서 1년 동안 사는 종도 있고, 2년 넘게 사는 종도 있다. 성충은 짧으면 몇 시간, 길면 일주일이나 이주일 정도 산다. 따라서 애벌레 기간까지 포함하면 하루살이는 하루만 사는 게 아니라 1년가량 사는 것이다(Wikipedia, 2023).


타주로 이사하고 나서 맞닥뜨린 몇 가지 변화 중 하나가 의료보험이었다. 미국은 국가가 주재하는 공공 의료보험이 없다. 따라서 주정부가 운영하는 의료보험 마켓플레이스에서 수입과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새로 의료보험을 선택하고 가입해야 했다.

다음으로 중요한 일은 주치의를 만나는 일이다. 나는 이사 오면서부터 한국인 의사를 만나고 싶었다. 나이 먹어 가며 아무래도 여기저기 고장 나는 일이 늘어날 것이고, 이젠 편한 모국어로 아플 때 아프다고 하소연하며 살고 싶어졌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한국 병원을 찾는다 해도 내가 가진 의료보험이 그 병원에 적용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새 보험회사에서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병원 리스트를 제공해 주었는데 그중엔 걸어서 5분 거리 병원도 있었다. 우리가 가진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한국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아, 남편과 나는 우선 집 가까운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조그만 동네 병원인 줄 알았는데, 가보니 종합병원에 소속된 곳이었다. 등록부터 예약, 진료기록까지 모두 시스템 안에 들어가도록 돼있어 편리했다. 검사결과도 병원과 연결된 앱을 통해 집에서 볼 수 있었다.

의사는 자그마한 체구의 육십 대쯤 돼 보이는 여자분이었는데, 처음이라 그랬는지 우리 나이에 필요한 검사항목과 건강에 관련된 사항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혈압 측정과 피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앱에 들어가 바로 검사결과를 볼 수 있었다. 남편의 결과는 모든 게 완벽했지만, 내 결과표에는 간 관련 수치 하나가 마치 산봉우리처럼 불쑥 솟아있었다.

며칠 후 화상통화로 의사를 만났다. 그녀가 뭐라 말해줄지, 뜻밖의 검사들이 이어지진 않을지 신경이 곤두섰다.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범위가 검사마다 달라서 그것도 걱정이었다. 의사는 높아진 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한다며 간•소화기 전문의에게 리퍼럴 해주겠다고 했다. 이곳 병원들의 느려터진 일처리, 예약과 기다림의 어려움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나는 또 다른 의사에게 가야 하는 게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권유를 받은 이상 무턱대고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어쨌든 비정상의 수치로 나를 괴롭히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내 몸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주일 후 주치의가 리퍼럴 해준 의사를 만났다. 그녀는 내게 다른 증상은 없는지 상용하는 약이나 음식은 무엇인지 이것저것 주의 깊게 묻고는, 수치가 많이 높지는 않지만 원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복부 초음파검사를 해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전에 검사받은 적이 있다고 설명했지만, 그녀는 현재의 결과만이 유의미하다며 검사받기를 재차 권했다.

결국, 나는 그날 피검사를 한번 더 하고 초음파 검사를 예약하고 왔다. 끝없는 검사와 기다림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오고 말았구나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편으론 혹시 어딘가 심하게 고장 나 있는 거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며칠 후 받은 초음파검사에서는 다행히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한동안 건강문제에 골몰하다 든 생각 ⎯ 매일 아침 눈 뜨는 게 어쩌면 보통 일이 아닐지도 몰라.

어릴 때 나는 밤잠이 별로 없는 아이였다. 할 수 있는 한 늦게까지 깨어있고 싶었다. 잠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나도 모르게 스며드는 게 불안했다. 잠들어버리면 깨어있던 세상을 영영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사춘기를 넘기고 어른이 되면서 잠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삶을 위한 잠깐의 휴식임을 알게 됐지만, 나는 아직도 잠들기 싫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럴 땐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짧은 생을 가리켜 말할 때 우리는 흔히 하루살이를 언급한다.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란 말도 들어봤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랑 놀다 하루살이를 만나면 "쟤네 어차피 오늘 밤에 죽는대. 살려주자. 불쌍하잖아" 하고 손을 휘휘 저어 멀리 날아가도록 해주던 생각이 난다. 애벌레 기간까지 합하면 하루살이는 실제로 하루만 사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루살이의 삶을 하루로 생각해버리고 만다. 우리가 엄마 뱃속에 살고 있던 때를 기억 못 하는 것처럼 어쩌면 하루살이는 자신의 삶 중 가장 빛나는 하루만을 기억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우리 삶은 그저 순간일 것이다. 비록 짧고 유한한 삶을 살지만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나에게 오늘은 어제의 연장이 아닌 새로운 날이다.

매일 다른 날이 펼쳐지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 같아 신기하고 감사하다. 아침마다 다시 살아나는 기분으로 못 할 게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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