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7 Train
우리 동네 지하철은 7호선이다. 7호선 지하철을 타면 맨해튼에도 갈 수 있고, 한국식당들이 즐비한 동네에도 갈 수 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7호선 지하철을 사랑한다. 카페나 거리의 벽에서 7호선 기차를 그린 그림이 꽤 보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월 주말 내내 우리 동네의 발이자 상징인 7호선 지하철이 운행을 하지 않았다. 살짝 들뜬 분위기의 주말 지하철이 그리웠던 나는 2월 어느 토요일 7호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기차 안은 붐비지는 않았지만 앉을자리는 없었다. 조금 있으니 하나 둘 자리가 나기 시작했다. 막내가 그중 한 자리를 차지했고 그 옆에 남편을 먼저 앉혔다. 3초쯤 후 뒤쪽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니, 내 또래 남자가 방금 일어난 자기 자리에 나보고 앉으라고 한다. 사양할까 하다가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마치 남편 때문에 못 앉았던 것처럼) 고맙다 말하고 얼른 그 자리에 앉았다. 내게 자리를 양보한 남자는 바로 옆에 앉아있던 친구 앞에 선 채로 그와 이야기를 이어갔다.
건너편을 슬쩍 쳐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남편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막내는 그 옆에서 입을 막고 웃느라 거의 숨 넘어가기 일보직전이었다. 졸지에 무매너 남자가 돼버린 남편의 의문의 일패, 왠지 고소했다. 서양 남자들의 핏속엔 기사도 정신이 마구 흐른다더니 오늘날 이런 상황에서 실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내게 다가온 남편이 "뭐지, 이 당한 기분은?" 했다. "그러게 내가 앉으랬다고 냉큼 앉냐? 언제 양보 좀 해볼래?" 사이다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켠 기분으로 마무리 훅을 날렸다.
누군가 아까부터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한 남자가 출입문 가까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공사 구간에서 기차가 느려지거나 잠깐씩 설 때마다 그는 마구잡이로 욕을 해댔다. 지하철 요금이 얼만데 서비스가 이 따위냐는 둥 공무원들이 일을 제대로 안 한다는 둥,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그 정도였고 나머지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욕설이었다.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급기야 사람들을 향한 연설조에 이르렀다. 객실 안 사람들은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일행과 이야기를 하며 그 남자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분노에 찬 그의 목소리가 열기를 띨수록 분위기는 점점 얼어붙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며칠 전 뉴스에서 본 총기사고가 생각났다. 그의 높은 목소리보다 바지 주머니에 찌른 그의 손이 더 공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저러다 총이라도 꺼내 쏜다면 난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폭력의 희생양이 되기는 싫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누군가의 폭력에 의한 죽음이 더 이상은 생기지 않기를, 억울한 죽음에 대한 애도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랐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어느새 그의 목소리가 사라진 걸 깨달았다. 둘러보니 그가 보이지 않았다.
그날 알았다. 어느 나라 말이든 욕은 똑같이 듣는 사람의 기분을 더럽힌다는 걸.
날씨가 궂은날이었다. 오래된 지하철은 우중충했고 공기도 무겁게 느껴졌다.
기차에 올라탄 한 여인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웅얼대는가 싶더니 다짜고짜 "기브미 원달러"라고 말하며 객실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은 게슴츠레 흐렸고 입가엔 침을 흘린 듯한 자국도 보였다. 자신의 외침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자, 그녀는 고래고래 "기브미 원달러"를 외치며 사람들에게 다가가 마치 싸울 듯이 팔을 휘둘렀다. 잠시 후 그녀는 아무도 자신에게 돈을 주지 않은 객실을 향해 저주의 욕설을 내뱉더니 기차에서 내려 사라졌다. 그녀의 외침이 귓가에 남아 몹시 씁쓸했다.
그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7호선 열차 안. 하루종일 한 번도 햇빛을 쏘여보지 못한 탓인지 객실 조명이 더 어둑하게 느껴졌다.
등에 아기를 업고 사탕이며 초콜릿이 가득한 바구니를 손에 든 여인이 기차에 올랐다. 휴대폰이나 옆 사람과의 수다에 정신이 팔린 사람들은 그녀가 안중에도 없었다. 그녀는 몹시 지쳐 보였고 등에 매달린 아기는 잠들어 있었다. 그녀가 객실 중간쯤 왔을 때, 옆구리에 농구공을 낀 초등학교 삼사 학년쯤 돼 보이는 소년이 달려와 그녀에게 1달러를 내밀며 아무거나 달라고 했다. 그녀가 2달러짜리 물건 밖에 없다며 돌아서려 하자, 소년은 미소와 함께 1달러를 그녀의 바구니 안에 넣어주고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먼젓번 여인이 사람들에게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던 1달러와 소년이 아기엄마에게 수줍게 쥐어주던 1달러가 전혀 다른 돈처럼 느껴졌다. 돈에도 사람의 마음이 담길 수 있나 보다. 어떤 마음이 담기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질 수도 있나 보다.
지하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가면 왠지 밝은 햇살이 비치고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