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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Lee Feb 27. 2024

만병통치약

동영상을 보고 웃다가 별안간 아랫입술에 찌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깜짝 놀라 더듬어본 손가락에 피도 조금 묻어났다. 얼른 욕실로 달려가 거울을 보았다. 아랫입술 가운데가 세로로 갈라져 피가 나고 있었다. "또야!" 이맘때면 반복되는 일이다. 춥고 건조한 날씨에 곧잘 입술이 트곤 한다. 방치하면 이렇듯 유혈사태도 생긴다.

남편을 처음 만난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단체 중국연수 때도 10박 11일 내내 입술이 째진 채 다녔다. 일행 중에 입담이 뛰어난 선배가 있어 가는 곳마다 어찌나 웃기는지 깔깔대다가 가까스로 붙은 입술이 또 터지곤 했다. 웃다가 울다가 하는 나를 보며 모두 안타까워하던 일이 꼭 어제 같다.


욕실 캐비닛을 열고 맨 위칸에 두었던 바셀린을 꺼내 입술에 발랐다. 립밤을 두고도 습관처럼 바셀린을 바르게 되는 건 왜일까.

내가 아주 어릴 땐 집에 두는 상비약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감기에 걸리거나 기침을 하면 늘 같은 약을 먹었고, 뛰어놀다 무르팍이 까질 때 바르는 약도 늘 한 가지였다. 흙바닥에 자주 엎어지던 내 무릎은 성할 날 없이 빨간색 약으로 물들어 있곤 했다. '빨간약'은 그 시절 '옥도정기'라고도 불렸는데, 감염을 막기 위한 소독약이었다. 집에서나 학교 보건실에서나 넘어지기만 하면 바르던 약이다. 나는 상처의 쓰라림보다도 이 약의 진한 빨강이 더 공포스러웠다.

조그맣고 동그란 빨간 뚜껑에 무시무시한 호랑이 그림이 있던 약도 생각난다. 뚜껑을 열면 신기한 냄새가 났다. 어른들은 이 약을 가리켜 "호랑이 기름 좀 가져와" 하기도 했다. 상처가 나거나 삐끗했을 때 바르던 이 약은 호랑이 뼈를 갈아 넣어 만병통치약이라고들 했는데,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다. 옛날부터 호랑이는 우리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져 온 탓에 이 약의 효능이 실제보다 부풀려진 것 같기도 하다.

뚜껑에 간호사의 얼굴이 그려진 안◦프라민도 있었다. 팔다리를 긁히거나 삔 채로 집에 가면 어른들이 발라주던 약이다. 하얀 통에 파란 뚜껑이 달린 물파스도 툭하면 바르곤 했다. 냄새가 하도 독해서 눈까지 따끔따끔했었다.


어린 시절 눈물이 쏙 빠지게 아팠던 기억이 하나 있다. 서너 살 무렵이었는데, 엄마 아빠가 나를 붙잡고는 머리통 한가운데를 한참을 눌렀다. 손발이 붙잡혀 꼼짝도 못 하고 소리소리치며 울었다. 그때 아팠던 기억이 너무 생생해 무슨 일이었는지 나중에 부모님께 물어보았다. 어릴 때 유난히 땀이 많던 나, 어느 날 머릿속에 난 땀띠가 점점 커지고 곪아서 짜낸 후 고약을 붙여준 거라 한다. 내 머리에 붙어있던 끈적한 초콜릿 비슷한 게 바로 고약이었나 보다. 어릴 때 주위에서 흔히 봤던 고약은 주로 종기에 붙인 후 종이나 천을 대어줬던 한약의 일종으로, 지금의 연고처럼 쓰이던 것이다.

밖에서 뛰어노는 게 최고로 재미있던 시절, 흔히 '대일밴드'라 불리는 반창고는 내 몸 여기저기 훈장처럼 붙어있곤 했다. '힐링'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단짝처럼 생각나는 게 반창고다. 넘어져 다치면 상처가 난 자리에 빨간약을 바르고 호호 몇 번 불어준 뒤 반창고를 붙여놓곤 했다. 그러면 어느새 반창고 밑에서 새 살이 간질간질 돋아나왔다. 어린 내게 반창고는 마법의 도우미 같았다.


데이케어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였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선 아이들은 굿모닝 인사와 함께, 이것 좀 보라며 자신의 손이나 다리에 난 상처를 보여주기 일쑤였다. 어쩌다 그랬냐 물으면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아는 단어를 총동원해 다칠 때의 상황과 기분을 열심히 설명해 준다. 꾹 참고 울지 않았음을 자랑하는 아이, 많이 아팠다고 하소연하는 아이, 엄마가 상처를 치료해 줬을 때의 감동을 전하는 아이 등, 각색의 무용담이 펼쳐진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이들은 어딘가를 다치고 치료받고 나아지는 과정을 몹시 흥미롭게 관찰하는구나 느꼈다.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인지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른도 마찬가지다. 아팠던 이야기, 병원 간 이야기, 치료받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병은 자랑해야 얼른 낫는다고 말한다.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자주 외가에 맡겨지던 나는 사랑받으며 재미있게 놀다가도 문득 엄마 품이 그립곤 했다. 배나 머리가 아플 때 엄마가 옆에 있어주던 밤이 생각나곤 했다.

아플 때 좋은 약보다 더 간절한 건 누군가의 손길, 관심일지도 모른다. 영혼의 만병통치약은 바로 사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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