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New York 17
며칠 비가 오락가락했다. 봄을 부르는 비라기엔 쌀쌀한 바람을 품고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그러다 해가 반짝한 주말, 얼른 집을 나섰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만 밖에 나가 놀기엔 역시 해 나는 날이 좋다. 점점 아이 같아지는 걸까.
맨해튼 W 32번가 코리아타운(요즘은 'K-Town'이라 불린다)에 있는 한국책방이다.
넓고 쾌적한 실내에는 K-pop 가수들의 앨범과 브로마이드, 굿즈 등을 파는 코너와 함께 다양한 장르의 우리 책들이 진열돼 있다. 문구와 장난감도 있어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도 보였다.
십여 년 전 처음 미국에 왔을 때만 해도 신간도서를 찾기가 쉽지 않았는데, 요즘은 새로 나온 우리 책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영어로 번역된 우리 작가들의 책도 이곳 서점에서 자주 볼 수 있으니 신기함을 넘어선 우리 책부심이 마구 일렁인다.
근처를 걷다가 조금은 특이한 장소를 발견하고 들어가 보았다.
1804 Books는 The People's Forum이라는 사회운동 단체가 운영하는 비영리 서점이자 북카페다. 이름의 '1804'는 아이티 공화국이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여 최초의 흑인 공화국으로 탄생한 1804년을 기리는 의미다. 1804 Books는 사회주의 문학과 혁명이론 서적을 다루는 서점이자, 압박과 착취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투쟁과 공론의 마당인 작은 언론기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보아온 독립서점들과는 다른 분야, 다른 방식으로 독립서점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뉴욕의 한복판에서 만난 인상 깊은 서점이었다.
히치콕 감독의 유명한 영화 <새(1963)>가 연상되는 광경이었다. 얘들도 봄볕을 즐기러 나왔을까 생각하니 영화처럼 무섭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역 바로 앞 브라이언트 파크에 들렀다.
겨우내 가슴을 설레게 만들던 스케이트장을 철거하는 중이었다. 겨울이 뒷모습을 보이는 옆으로, 발랄한 회전목마가 봄바람을 타고 도는 듯했다.
요새 사람들의 옷차림은 참 재미있다. 아직 두꺼운 겨울 옷으로 꽁꽁 싸매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얇디얇은 트렌치코트나 니트 차림도 보인다. 틴에이저들은 짧은 소매나 바지 차림으로 다니기도 한다. 같은 계절 아래 여러 가지 옷차림을 볼 수 있는 건 날씨를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이맘때의 거리 풍경은 그래서 멋지다.
우리 집 근처에서 만난 다람쥐 친구다. 처음엔 좀 놀란 듯하더니 도망도 안 치고 포즈를 취해준다.
"겨울나느라 수고했어. 봄엔 더 자주 만나자." 말해줬다.
몇 시간 후면 서머타임(일광 절약 시간제)이 시작된다. 봄은 어느새 이렇듯 가까이 와있었다.
날씨보다 앞선 봄의 기운은 어쩌면 우리 마음에서부터 오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