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동네 지하철 역이 한창 공사 중이다. 지하철이 운행되지 않은 게 벌써 며칠째인지 모른다. 그나마 지하철의 빈 구간을 무료 셔틀이 채워주고 있어 다행이다.
나는 오늘도 버스를 탔다. 마침 빈자리가 보여 무척 신났지만 짐짓 표정 관리를 하며 앉았다.
버스를 타면 목적지에 닿기까지 지하철보다 오래 걸리는 대신,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캄캄한 어둠을 달려 괴괴한 소리를 내면서 멈추는 지하철과 달리, 버스는 어딘가 낭만적이다. 시간을 지켜 가야 할 때가 아니면, 나는 버스를 타고 창 밖을 보는 걸 즐긴다. 내가 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사라져 가는 사물들, 내가 탄 버스와 나란히 달리는 차에 탄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좋은 기억으로 저장돼 있는 곳들을 지나갈 땐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쾌청한 날씨 속을 달리던 버스가 정류장에서 멈추고, 한 아기 엄마가 유아차를 밀며 버스에 올랐다. 그녀는 유아차가 지나갈 공간을 내주길 정중히 부탁하며 통로로 들어섰다.
할아버지 두 분이 통로에 보행기를 둔 채 노약자석에 앉아있었는데, 서 있는 승객들에다 보행기까지 나와있던 통로는 유아차가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비좁았다. 할아버지 한 분이 곧 보행기를 자신의 몸 쪽으로 붙여 틈을 내주자, 아기 엄마는 고맙다고 말하며 앞으로 나갔다. 그녀 뒤로 버스에 오르던 사람들도 잠자코 그녀가 움직이길 기다려 주었다. 그래도 충분한 공간이 나지 않자, 그녀는 꿈쩍도 안 하고 여전히 자신의 보행기를 통로에 내놓은 채로 앉아있는 다른 할아버지에게 "죄송하지만 좀 비켜주시겠어요? 저는 유아차 지정석으로 가야 해서요"라고 말했다.
모든 버스에는 유아차 전용 좌석이 있다. 유아차를 소지한 사람이 요청하면 이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은 비켜주어야 하고, 유아차에 아이를 태우고 승차한 사람은 유아차의 안전띠와 브레이크를 확인한 후 통로가 아닌, 자신의 좌석 옆 공간에 유아차를 두어야 한다.
할아버지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의 보행기를 끌고 뒤쪽으로 가버렸다. 아기 엄마는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향해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유아차 지정석으로 향했다.
그런데 겨우 도달한 그 자리에는 한 중년 남자가 떡하니 앉아 있었다. "좀 비켜주시겠어요? 여기는 유아차 지정석입니다"라고 그녀가 말하는데도 그 남자는 뭐래? 하는 듯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앉아있기만 했다. 그녀는 다시 좌석 뒤쪽의 안내문을 가리키며 "여기 유아차 지정석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비켜주시면 감사하겠어요" 했다. 그제야 그 남자는 일어나 다른 자리로 옮겨갔다.
아기 엄마는 아기가 타고 있는 유아차를 자신의 자리 옆에 두고는 마침내 앉을 수 있었다. 출입문에서 버스 중간쯤의 자리까지 정말 긴 여정이 아닐 수 없었다. "여러분, 미안합니다. 저는 아기를 안전하게 버스에 태우고 싶었을 뿐이에요" 하고 아기 엄마가 자신의 뒤에서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말하자, 그중 누군가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미안할 일이 아닙니다"라고 아기 엄마에게 말해주었다.
무심하고 몰지각한 사람들 때문에 원활한 승차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그녀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건 사과할 일도 눈치를 볼 일도 아니다.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라면 그녀처럼 용감했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한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일에 왜 용기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세상이라면 그런 용기는 내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아기 엄마는 할아버지의 욕설에 대응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아기와 함께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얼토당토않은 욕설에 대꾸할 가치를 못 느꼈을 수도 있다. 사회의 어른인 그 노인의 태도는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 결코 귀감이 되지 못했다. 설사 나이가 많고 몸이 불편하더라도, 모두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자신의 편의만 도모하려는 행동은 사려 깊지 못하다.
자신이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가야만 했던 그녀, 그런 그녀를 위로했던 사람들, 한편 타인의 권리에 대해 존중 대신 불평과 안일함으로 일관했던 사람들을 보며 인간의 품위란 무엇인지 깨닫게 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