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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문수 Jul 25. 2022

내 일은 설거지

22. 07. 25.


동트는 시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간다. 


몇 주 전부터 술집에서 설거지로 돈을 벌고 있다. 


언젠가 지인들 앞에서 집에서 하는 일이 설거지밖에 없노라고 농담을 했었는데, 


이제는 설거지가 정말로 일이 되어버렸다. 


손도 안 댄 거처럼 쏟아지는 안주들. 담배꽁초 무더기. 꼬다리가 배배 꼬인 소주 병뚜껑. 


그것들을 전부 맨손으로 슥 쓸어내거나 골라내어 버린다. 


멋들어진 이성과 어울려 노는 손님들을 보며 부러워하는가 하면, 


접시 따위에서 지워지는 얼룩처럼 근심과 걱정도 한순간에 지워버릴 순 없을까 하는 상념에 빠지곤 한다. 


내게 일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이제 설거지뿐이 없다. 작가지망생이라는 자칭도 이제는 버렸다. 


한동안 취미의 영역에 있던 것을 노동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려 아등바등했지만, 


다시 취미의 영역으로 글쓰기를 돌려놓았다. 


그 사이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이를 본 몇몇은 아깝지 않냐, 


책도 냈었는데 더 해보지 그러냐며 나를 타이르기도 했다. 


하긴, 아는 사람 중에 작가가 있다는 말은 꽤 매력적이다. 


내가 느껴왔던 패배감과 무력감보다는 본인의 허영심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는데,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 중에 내가 책을 낸다고 했을 때 ‘한번 읽어보겠다’고 말했던 사람은 없었다. 


관심은 없으면서 간섭은 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거다. 


어쨌든 글쓰기에 있어서 나는 ‘대체 가능한 소질’을 가지고 말았고, 


그걸 받아들이는 일은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다. 


나 역시도 이미 오래전부터 예감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내 마음속 응어리는 다른 일에서 비롯한다.




지난 1월부터 나는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한동안 유튜버로 살았다. 


물론 수입은 0에 가까웠지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것을 나는 일로 여겼다. 


투자하는 열정으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직장 생활의 배는 되었으니까. 


그러나 일은 하지만 돈은 못 번다는 이야기를 하자, 몇몇은 그걸 일이라고 할 수 있느냐 물었다. 


속상한 말이지만, 지인들로부터의 인정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아 견딜 만했다. 


다만 가족의 경우에는 달랐다. 역시나 아버지는 나의 노력과 간절함보다도 돈이 먼저였고, 


나의 일을 못마땅히 여기며 나를 ‘노는 사람’으로 전락시켰다. 


사람이 바깥에서 얼마나 인정받든 얼마나 믿음직스럽든, 


집에서 못마땅히 여기는 가족이 있으면 사무치게 외롭다. 


나는 이런 종류의 슬픔을 털어놓을 이가 없음을 알고서야 내가 외롭다는 걸 깨달았다. 


나보다 더한 슬픔을 가진 사람들, 타인의 슬픔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 삶이 기쁨으로 가득해 


도저히 슬픔이 끼일 틈이 없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이따금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글을 써왔나 싶으면서도, 매번 조용히 이겨내 온 것이 다행스럽다.




아마도 올해가 지나면 다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야 할 거 같다. 


내년에도 내 일은 여전히 설거지뿐일 테니까. 


그런데도 나는 커다란 영화연기학원에 수강신청을 보내는 유쾌한 반란을 저질렀다. 


내년에는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모른다. 그저 뭐라도 하나 건져봤으면 좋겠다. 올해는 접시나 잘 닦자.     


22.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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