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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의 마루 Sep 28. 2022

집마다 각자의 주인은 있다

내 그릇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저 등기 한 부만 열람해 주시겠어요?” 어느 토요일 오전이었습니다. 중년의 여자분이 등기부 등본 열람을 부탁해서 열람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사무실에서 나가실 줄 알았던 손님이 저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계속했습니다. 이야기 끝에 저의 사주를 묻고 무료로 사주를 풀이해 주었습니다.


직업상 자연스레 명리학과 풍수에도 관심 있었던 저는 흥미롭게 사주풀이를 들었습니다. 그 후로 손님과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기초적인 명리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배우면서 풍수와 명리학은 우리 생활과 많은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명리학을 미신 취급하기도 하죠. 일종의 통계학인데도 말입니다.

여하간 개인적으로 명리학을 배우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평소 중개하다 보면 사람들의 진짜 속마음이 궁금할 때가 많았습니다. 무엇을 원하는 건지, 정말 집을 사려는 건지, 그냥 시세가 궁금한 건인지, 왜 결정을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공인중개사에게 사기 치러 온 건지…. 이런 궁금증을 알아서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유였습니다.

그렇게 우연히 시작된 명리학이 낯설었지만 재밌었고 조금씩 이치를 깨닫자, 사무실에 오는 손님 중 관심 있어 하는 분에게 생년, 월, 일, 시를 물어보며, 혼자 공부도 하고 조금 더 공부가 되었을 때, 원하는 손님에게는 재미 삼아 사주풀이도 해 드렸습니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사주를 들여다보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 명리학을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와, 사람에게는 저마다 가진 그릇의 크기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말입니다. 작은 그릇에 많은 것을 담으려 하면 도리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반대로 큰 그릇에 작은 물건을 담으려 하면 성에 차지 않아 하는 모습도 보곤 합니다.


문득 이 사주이야기에 어울리는 한 분이 생각납니다. 어느 토요일 저녁 퇴근 후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을 때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진동했습니다. 손님의 전화였습니다. 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OOO 부동산입니다.”, 손님은 “늦은 시간에 죄송해요. 오늘 보여 준 집을 계약하고 싶은데요. 조금만 조정해 봐 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처음 만나 임장 할 때는 계약 의사가 없는 줄 알았는데, 의외의 전화를 받자, 마음이 두근두근했습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매도인에게 전화했고 다행히 조정이 잘 되어 며칠 후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첫 매매 계약이라 진땀은 났지만, 제가 가지고 있던 재건축물건 중 가장 좋은 물건을 브리핑했기에 손님에게도 실보다는 득이 많은 계약이었습니다.

그 후로도 저와의 인연이 각별했던 그 손님은 저와 여러 건의 계약을 더 했고, 그때마다 제가 투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찾아 놓았던 좋은 물건을 잡는 행운을 가졌습니다. 처음 저와 계약할 때 얼마 안 되었던 손님의 자산은 현재 꽤 많이 불어났습니다. 사실 첫 계약 때 손님의 상황이 썩 좋은 것 같지 않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손님은 용기 있는 선택을 했고, 그 결과를 위해 노력했던 손님에게 감탄할 때가 많았습니다.


손님이 부를 키워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공인중개사로서 부의 형성에 보탬이 된 것 같아 기분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본래 그릇의 크기가 있는 분들은 당장은 힘들어도 스스로 본래의 기질대로 자리를 찾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답니다. 수익률 좋은 건물을 찾는 손님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연세가 있는 노부부였습니다. 그분들의 자금이면 수익률이 좋은 규모 있는 건물을 매매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소개했지만 결국은 전체 금액이 부담스럽다며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진 투자금에 비해 소극적인 노부부에게서 느낀 점은 수익률이 아무리 높다 해도 매수를 고려하기엔 살아야 할 날들이 더 적은 분에게는 어려운 결정일 수 있다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동산은 타고난 기질과 나이와 직업적인 것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한 가지 더 보탠다면 손님 본인이 물건을 선택할 때 진심으로 맘에 들어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몇 년 전 공기 좋은 곳에 예쁜 신축건물이 매물로 나와서 임장을 갔던 일이 있습니다. 집이 좋은데 왜 살아보지도 않은 집을 매도하려는지 궁금해서 질문했습니다. 저는 의외의 대답을 들었습니다. 본인이 아무래도 못 살겠다고 했습니다. 남이 좋다고 해서 매수까지는 했지만, 막상 들어가 살려고 하니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전부터 회장님들이 많이 사는 부촌인데 말입니다.


집을 거주하려는 목적으로 집을 매수할 때는 남이 아닌 내 마음이 움직이는 곳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공인중개사로서 손님이 몰라서 선택을 주저할 때 조언자로서 추천할 수는 있어도 손님에게 살 집을 강권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그래서일까요? 집마다 각자 주인이 있다는 말이 일리가 있는 말인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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