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妥協)
어떤 일을 서로 양보하여 협의함.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타협해야 하는 것이 많다.
회사생활뿐만 아니라 나이를 먹다 보니 타협해야 하는 것들이 는다.
타협이 항상 성장하는 길은 아니다.
꺾이기도 하고, 깎이기도 한다.
쉬운 길은 없고, 정답도 없다.
20대는 세상에 반항하는 시기라고 생각했다.
꺾이지 않는 미련한 우직함이 20대의 특권이라 생각했다.
그것은 미련한 생각일 뿐이었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오만과
단신으로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패기는
밀려오는 지식의 파도와 태산보다 거대한 세상 앞에 산산이 부서졌다.
부서진 것이 아니다.
겁이 나서 그런 것이 아니다.
절대로 물러난 것이 아니다.
다음을 위해 잠시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힘을 줘야 할 때와
조금 여유로워야 할 때를 구불할 수 있게 된 듯했다.
절대로 꺾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 소신과 생각이
모두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소신도 있었지만,
고집과 아집이 뭉쳐 말도 안 되는 생각도 많았다.
조금씩 세상과 타협하며 균형을 이루게 된 줄 알았다.
조금 말랑해진 상태로 회사원이 되었다.
대립되는 것들은 끝도 없이 나타난다.
나의 신념과 반대되는 상황이 가장 괴롭다.
망설임 없이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은 거의 없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된다.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중간쯤에서 멈추면 좋겠지만,
보통은 한쪽이 완벽히 포기하고 반대쪽으로 맞추는 경우가 많다.
타협이라고 하지만 결국 양보 혹은 포기의 상태가 된다.
보통, 관례적으로, 의례..
이런 말들이 세상에서 가장 만들기 어렵다.
어디에도 보통에 맞출 수 있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으며,
관례적인 것은 관례적으로 구전동화처럼 전해 내려 오기 때문에,
처음 겪는 사람은 그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일단 문을 두들기고 조각을 넣어봐야 문이 열리는지 안 열리는 알 수 있게 된다.
모난 돌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사회의 통념이 늘 괴롭다.
언제까지 이 지루하고 답답한 씨름이 계속되는 것일까.
모두가 똑같은 모양으로 변해갈 때까지 이 과정은 계속되는 것일까.
울퉁불퉁한 돌들이 모여 더 단단한 성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회사를 구성하는 인력들의 연령이 바뀌었다.
기성세대와 신입사원 간의 대립과 갈등이 극에 달한다.
남녀노소가 갈라져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관례적으로, 의례적이라는 말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생긴다.
이때 필요한 것이 타협의 장이 아닐까.
기존의 방식에 무조건 맞추라고 할 것이 아니라.
그 방식에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조각들이 방향을 돌리고 맞춰가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