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구석 이야기꾼 Aug 09. 2023

배고파서 배아프다

영화 질투는 나의 힘 리뷰

질투는, 뭔가 묘하고 이상한 감정이다. 애써 쿨한척 속으로는 자책하며 내가 저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안되고 더 잘 되었을 텐데 라며 아쉬워한다. 질투는 그래서 우선 배가 고파야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다. 원상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청춘이 질투를 하듯이 질투의 전제 조건은 배가 고픈 상태인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배아픔이라는 현상이다. 누군가 이런 배아픔을 원동력으로 살아가고 누군가는 그 배아픔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채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즉 질투는 긍정적인 감정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한윤식과 박성연

윤식과 성연은 과연 어떤 사랑을 한 것일까?


하지만 과연 윤식은 정말로 그런 사람 일까? 윤식은 많은 시간이 흘러 노력을 통해 업계에서 나름 인정 받은 전형적인 40대 남성이다. 원상과 같은 사회 초년생이라면 응당 당황해야할 문제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과 연륜을 가진 인물이다. 하지만 빽도 없고 돈도도 없었기에 더 높은 자리 올라가지 못했고 자신을 대신해서 그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들에 대해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젊은 날의 실패를 영혼의 상처가 없어서라는 핑계로 회피하며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올라온 현재의 위치에 대해서 계속해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그가 처해 있는 불편한 상황들을 합리화 하는데 사용된다 그렇기에 윤식은 원상을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한다. 지난날의 자신과 너무 닮았기에 그는 자신의 청춘을 대변하는 싸구려 양주를 안주 삼아 현재에 향수의 감정으로써 동조하고 있다. 그렇게 윤식은 과거를 합리화하며 오늘을 자신있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성연은 조금 다른 결의 인물이다. 굉장히 충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유부남이 와서 자러가자는 말에 술 때문에 섹스를 하고 싶은거지. 다른 이유는 없다라는 말을 보면)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말하며 남들이 요구하는 사회의 모습(결혼 등)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하는 주도적인 인물이다. 다양한 합리화를 통해 불륜을 정당화하려는 윤식과는 다르게 자신의 감정에 있어서 솔직하고 꾸밈없다. 세상과 반대로 살고자하는 욕망을 자기 자신이 인지하고 있으며 그것을 표현하는데 있어 거침 없다.

원상은 과연 앞으로 어떤 길을 갈까

이런 두 어른(?) 사이에서 원상은 자신의 길을 윤식과 걸어 가게 된다. 아무래도 윤식이 가지고 있는 유연함과 명쾌함이라는 어른 가장 기본적인 소양(?)에 끌렸던게 아닐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흔히 남성이 부친을 증오하고 모친에 대해서 품는 무의식적인 성적 애착을 의미한다. 이 영화의 드러나지 않는 관계를 보면 윤식은 아버지, 성연은 어머니, 원상을 아들이라고 구분할 때 원상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일종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처럼 느껴졌다. 신화에서는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테베의 왕이 되어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지만 원상은 어미니를 대변하는 성연을 따라가지 않고 아버지의 모습을 가진 윤식을 택하게 된다.(사실 신화에서는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가 자신의 아버지인지 모른채 그저 분노와 증오의 감정으로 죽인 것이기에 조금은 다른 경우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원상의 선택이 앞서 말한 어른의 기본 소양의 끌리는 그 시대의 청춘들이 바라는 어른의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결국에는 질투에는 힘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질투를 통해 성공을 이룬 윤식이나 그 윤식을 질투심으로 따라가는 원상이나 그저 자신을 잃고 타인에게 자신을 맞추는 행위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성연이 원상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대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걔를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그래서 생각안하고 싶은데 자꾸 생각이 난다."


어쩌면 질투의 힘으로 윤식을 따라가는 원상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에 윤식의 딸이 나오는 장면이 영화의 메시지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현재 세대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다음 세대가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과연 모든 것을 합리화하여 자신의 행위 정당화하던 이전 세대를 따라갈지 성연처럼 주도적인 삶과 솔직함을 따라갈지 윤식의 딸의 시선을 통해 영화의 감독은 이야기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의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