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다정한 목격자 >
요즘 글을 올리지 않자, 브런치스토리에서 꾸준한 글쓰기를 하는 것을 독려하는 안내톡이 왔다.
반성중...(브런치 스토리 고마워요)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글 올리는 분들, 존경합니다.
1. 가족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
아침 8시, 나는 나의 집 거실로 출근한다.
그전에 모든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커피를 내려 그 시각엔 자리에 앉으려 한다.
매일은 아니어도 되도록 이러한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작업 전 오늘은 잠깐 기사를 보는데, 양부모가 고등학생 딸에게 칼을 쥐어주며 ‘죽어버리라’며
학대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좋은 양부모도 정말 많을 텐데, 이런 사람들이 편견을 만들게 한다.
약한 존재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너무 화가 난다.
어린시절, 비오는 날을 좋아했다. 우산을 쓰고 동네 곳곳을 혼자 걸어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집에 와서 TV를 보는데, 그때 봤던 애니메이션은 어린 시절 나에겐 충격적이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 애니메이션 <백조왕조> 였다.
거기에서도 최대 빌런은 새엄마다.
계모인 왕비는 사악한 마녀로 엘리제와 오빠들을 미워하고, 엘리제를 내쫓고 오빠들을 낮에는 백조로,
밤에만 인간으로 돌아오는 마법을 건다.
동생은 모든 고난을 헤쳐나가며 쐐기풀로 오빠들을 위한 옷을 짠다. 하지만 옷이 완성될 때까지
한 마디라도 하게 되면 그 말은 비수로 변해 오빠들과 엘리제의 가슴에 비수를 꽂게 된다.
어찌나 마음을 졸이며 봤는지, 두 번은 못 보겠던 영화였다.
아이에게 부모는 안전지대가 되어줘야 한다.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존재.
그만큼 절대적인 존재다.
그런 부모가 아이를 학대하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고 가슴 아픈 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가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중 좋아하는 영화로 많은 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엔 두 명의 아버지가 나온다. 한 명의 아버지는 성공한 비즈니스 맨 료타(나츠야기 이사오)로,
사랑스러운 아내와 자신을 닮은 똑똑한 아들과 평안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중 병원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데, 6년간 키운 자신의 아들이 친자가 아니고
병원에서 바뀌었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자신의 친자의 가족들을 만나는 료타. 자신의 친자를 키운 아버지 사이키
(릴리 프랭키, 너무 좋아하는 배우다)는 시골에서 전기상회를 하며 부유하지 않지만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다.
반면 료타는 일밖에 모르는 아빠였다.
이들은 주말에 아이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자주 만나며 집을 바꾸는 식의 노력을 한다.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거죠”
사실 료타는 아버지와 유대감이 없었다. 그럼에도 피가 중요하다고 하는 료타의 아버지.
결국 친자를 데려오지만, 아이들은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자신을 키워준 부모를 그리워한다.
영화는 6년이 지난 지금, 친자가 아닌 사실을 알았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
과연, 낳은 정이 먼저인지, 키운정이 먼저인지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는 한편,
아버지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가족은 되는 것이 아닌, 만들어가는 것,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한 영화였다.
아이는 시간과 추억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아이를 학대하는 뉴스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2. 쓸쓸함에 대하여.
비가 오니 세상이 온통 어둡다. 아침인데도 밤 같다.
얼마 전, 박완서 작가의 소설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읽었다.
소설은 아들의 대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그동안 따로 지내던 남편과 카페에서 만나며
시작된다. 남편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많은 그녀는 카페에 나타난 남편의 촌스러운
스타일과 에티튜드에서도 염증을 느낀다. 졸업식에서는 딸 부모이면서도 너무 당당한
사돈댁도 못 마땅하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에는 그 시대의 남아선호사상이 많이 반영된다)
안사돈이 센스 있게 마련해서 직접 주라고 건네준 여행티켓을 가지고 남편과
함께 그 자리를 황급히 뜨며, 티켓을 전해주지 않으며 소심한 복수를 해보겠다고
한다.
소설 말미, 그녀는 그토록 못마땅하던 남편에게서 진한 연민을 느낀다.
" 스스로 원해서 가부장의 고단한 의무에 마냥 얽매여 있으려는
남편에 대한 연민이 목구멍으로 뜨겁게 치받쳤다.
그녀는 세월의 때가 낀 고가구를 어루만지듯이
남편 정강이의 모기 물린 자국을 가만가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이 소설을 읽고, ‘쓸쓸하다’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언제 ‘쓸쓸하다’는 감정을 느낄까? 내가 쓸쓸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쓸쓸함’이라는 단어 탓이었을까. 그날의 흐린 날씨 때문이었을까.
이야기를 나누며 모두 울컥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나이들어감에 대한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고, 늙어가는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나의 J에게 들은 ‘나의 하루의 일과를 들어줄 누군가가 없다는 것에 대한
쓸쓸함’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말에 많은 분들이 울컥해했다.
누군가에겐 별말 아닌 말도, 나에겐 크게 와닿을 때가 있다.
한 분이 ‘제발 좀 쓸쓸해봤으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해서 진지하던 분위기가
전환되기도 했다. 육아와 일에 시달리느라 그럴 정신이 없다는 말에 모두 깊은 공감을 했다.
쓸쓸함은 외롭다는 말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쓸쓸하다는 말은 더 많은 감정을 품게 한다.
20대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오던 겨울밤의 거리가 나에겐 무척 쓸쓸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겨울밤은 왜 그렇게도 칠흑같은지.
그 어둠 속 저 멀리 누군가가 나를 기다렸다가 반겨주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도 외로웠던 모양이다.
'쓸쓸하다'
참 잊고 지낸 단어이기도 하다. 그만큼 요즘의 생활이 안정적인 것일까?
감정적으로 무뎌진 것일까?
비가 너무 많이 온다. 이 비로 인한 사건 사고가 없길 바란다.
그래도 비 덕분에 조금은 센티해져, 글을 써본다.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건강한 여름 되세요.^^
사진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