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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Apr 27. 2024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다정한 목격자>



어젯밤, 오랜만에 A의 꿈을 꾸었다.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창생 A의 꿈이었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하는데, 의아하다. 

최근 A를 떠올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A와의 고등학교 시절 1년 동안 같은 기숙사 생활을 했다.

하지만 말이 없고 나와는 결이 다른 친구여서 친하게 지내진

못했었다.

다만, A는 어느 날부턴가 잠결에 자주 가위를 눌렸다. 

괴로워하는 A를 흔들어 깨우면 A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걸까 신경이 쓰이곤 했지만,

그때 난 A에게 '괜찮냐고'묻지 못했다.

(그게, 많이 후회된다.)


그리고 졸업 후 학교 친구들과도 저절로 소원해졌다. 

다들 어디선가 각자의 몫을 해내며, 각자의 삶을 살아가겠지 했다.

나 또한 그 시절은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전쟁이었기 때문에 주위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그리고 20대의 어느 날, A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 소식을 듣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곤 집에 돌아오는 길, 어렴풋이 A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큰 키, 단정한 태도, 찰랑이던 머릿결, 유난히 마디가 두꺼웠던 손가락,

큰 소리로 웃지 않고 조용히 미소 짓던 모습, 늘 어디선가 조용히

공부하던 모습..

그런 모습들이 단편적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후 잊힐 만하면 한 번씩 A가 꿈에 나왔다.

아주 잠깐 모습을 비춰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꿈이었다.     

그런데 이번 꿈은 좀 달랐다.

매우 디테일하고 꿈의 내용이 정확히 기억이 났다.


꿈속에서 나는 거리를 걷다 우연히 A를 만났다.

A는 아주 멋진 어른이 되어 있었고,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나는 A와 대화를 나눴는데, 질문은 주로 내가 했다.

“공부 잘하고 씩씩하던 네 동생은 잘 있고?”

“응. 잘 있어”

“결혼은 안 했구나? 좋아 보인다! ”

“어, 너무 좋아”

“그래, 부럽다야~ 나도 이제 비혼을 꿈꿔 ”

이러면서 웃기도 했다.

A가 운전도 기가 막히게 잘해서 내가 칭찬도 해주었다.

그렇게 함께 드라이브를 하다 갑자기 TV 전원을 끈 듯,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깨고  처음엔 ‘어? A 꿈꿨네..’ 했는데. 조금 지나니 꿈인 게 

슬퍼졌다.

꿈처럼 정말로 A가 어디선가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다 우연히 만났더라면 얼마나 반가울까?

아마도 A는 꿈보다 더 멋진 여자가 되어있겠지?

K장녀 다운 모습으로 집안을 고루 살필 거 같고, 책임감이 강해 일도 멋지게 

해내고 있지 않을까? 살아 있다면.... 그런 생각이 들어 슬퍼졌다.  

   

최근 몇 년, 청년들의 자살률이 높다는 기사를 자주 보게 된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5.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6명)의 2배 이상을 웃돌고 있다 한다.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오랜 시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린 더 힘든 세대를 지났는데, 그까짓 게 뭐가 힘들다고..”

“약해 빠졌어..”

혹은

“결핍이 없이 자라서 그래.”

청년들의 자살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반응들을 보면 안타깝다.


그 누가 개인의 슬픔의 무게를 함부로 재단할 수 있을까?

자살을 하기까지, 그가 느낀 고통에 대해 우린 누구도 함부로 판단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적 안전망도 미흡한 상태에서, 미래를 기대하기

힘든 청년들의 자살을 부정적으로만 얘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럼에도 감히,

조금만 버텨주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버틸 힘조차 없을 때까지 자신을 내버려 두지 말길.

누군가에게 꼭 도움을 청해보길.

간절히 바란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의 결과도 달라진다.

넷플릭스 시리즈로 한참 인기를 끌었던 ‘더 글로리’에서 

부동산 할머니(손숙)는 어린 동은(정지소)에게 ‘봄에 죽자’고 말한다.

‘지금은 너무 추우니 봄에 죽자’고..

그렇게 겨울 한 철 견뎌내고, 또 봄 한 철 견뎌내고, 하루하루를 견뎌내다 보면 

조금은 숨이 쉬어지고, '이런 날도 오는구나' 하는 순간이 분명 있지 않을까?     


A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조금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A와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더라도, 

A가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을 거 같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해 듣고, 인연이 닿는다면 

꿈에서처럼 우연히 만나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     

그곳에선 부디 평안하길.

뒤늦은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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