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지 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2

by 보로미의 김정훈

여러분은 가슴 뛰는 독서를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읽는 내내 설레고 흥분되는 경험이요. 저는 몇 번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어떤 책은 독서하는 중에도 계속 달리러 나갈 정도였습니다. 그 책은 바로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이었습니다. <슈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스물네 살 때 '미친 생각'을 했다. 그리고 20대 중반의 젊은이들이 흔히 갖는 실존적 고뇌, 미래에 대한 두려움, 자신에 대한 불신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미친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미친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은 미친 사람들의 생각과 함께 시작됐다. (...)


1962년 그날 새벽에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자.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자.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말자.'

이 선언은 갑자기 어른이 된 듯한 내가 앞날을 내다보면서 나 자신에게 주는 절박한 충고였다. 어쨌든 나는 이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나는 이것이 최선의-어쩌면 유일한-충고였음을 믿는다. 나는 누구에게든지 이런 충고를 해주고 싶다.



제가 이 책을 처음 읽을 때가 스물세 살이었는데요. '우와..'하고 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탄이 나왔던 문장은 '그리고 그곳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였습니다. 아, 이 문장을 일찍 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꼬! 저는 23살이 되기 전까지 그곳이 어디인지가 확실해야 달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건 비단 저만의 이야기는 아니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이 생겼을 때 비로소 발자국을 떼기 시작합니다. 그전까지는 다른 사람들 눈에 '게으르고 실행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비치겠지만, 사실 우린 게으르고 체력이 없는 게 아니라 아무런 불빛도 들어오지 않는 암실에 갇혀 더디게 걷고 있을 뿐입니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 조심스러울 뿐이죠. 그런데 필 나이트는 암실에서 달릴 줄 아는 사람이었던 모양입니다.


나이키의 테일윈드. 슈독을 읽으며 신고 달렸던 신발.


여러분은 나이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뭔가요? 아마도 대부분 이 슬로건을 떠올릴 것 같습니다. Just do it. 마법 같은 말. "생각만 하지 말고 그냥 해!"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못나 보일 때, 머릿속에 생각은 가득한데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무언가를 그냥 해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사실 그동안 '그냥 해'온 순간이 많다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으셨나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실행력이 부족하다고 믿지만, 진실은 정반대에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시작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시작'들이 모두 먼지가 되어 날아갔을 뿐이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허함과 불안을 1년 넘게 겪고(비록 남들에 비하면 짧은 기간이라 믿지만), 술과 유튜브와 같이 쾌락에만 의존해 온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살은 계속 찌고 있고 근육은 빠질 대로 다 빠졌습니다. 팔굽혀펴기가 5개도 되지 않아 답답함에 울기도 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런 시기에 아무런 시도와 노력을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저는 매일같이 카페에 가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기도 했고, 다이어트와 운동을 매일같이 다짐했죠. 어떻게 하면 이 시궁창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내 삶의 의미가 뭘지, 사람들은 왜 열심히 사는지, 내 인생은 왜 망가지고 있는지 고민했고 이것저것 시도했습니다. '그냥 했죠.' 하지만 모두 물거품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저는 '그냥 해'라고 말하고 다니는 일명 자본주의 세계의 승자들에게 '넌 실행력이 없어서 아직 그런 상태인 거야.'라고 가스라이팅을 당해왔습니다.



그렇게 무기력해 있는 상태에서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군대에 들어갔더니 과거의 나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놓인 것과 더불어 지금 이 시기가 진짜 인생이 아닌 잠시 거쳐가는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뿐만 아니라 군생활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라고 생각했기에, 무언가를 하기만 해도 '보너스'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인생에서 처음으로 나만을 챙기고 돌볼 수 있는 시기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공허함은 사라졌습니다. 물론 다른 우울감은 더욱 짙어져 갔지만, 공허한 느낌은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군대 체질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했습니다. 특히, 전역을 하자마자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하니 정말로 군대 체질인 줄만 알았죠. 하지만 그때의 불안함은 그저 사회에 다시 버려졌을 때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사실은 제가 군대에서 터닝포인트를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터닝포인트를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터닝포인트는 일어났죠. 물론 단 하루 만에 바뀌는 드라마틱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10개월이 넘게 천천히 진행된 터닝포인트였습니다. 휴가에 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제가 생각이 깊어졌다고 얘기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삶이, 내면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제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요? 만약 제가 이 비밀을 알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의 터닝포인트도 도와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터닝포인트의 나를 이해시켜 주는 구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터닝포인트는 끝에서 시작한다


“우리 삶의 어떤 측면을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대체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책을 사거나, 어떤 수업에 등록하거나, 그동안 두려워했던 것들을 매일 다섯 가지씩 하거나 등등. 그러나 먼저 우리는 여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분주하게 뭔가를 하신 대신, 더 이상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놓아버리는 작업을 해볼 수 있다.” -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中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내일부터 다이어트할 거야'라거나 '내일부터 진짜 열심히 살아야지'라고 했을 때, 무언가를 '해'왔나요? 아니면 무언가를 놓아버렸나요? 저는 지금까지 무언가를 시작하려고만 했지, 끝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터닝포인트는 무언가를 '그냥 해'할 때만 일어나는 마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뭔가를 더 해야만, 내가 모르는 어떤 마법 같은 일을 해야만 이 지옥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에 있습니다.



'Just do it' 할 게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시작이 모두 먼지가 된 이유는, 무언가를 끝내지 않은 상태로 새로운 시작에 질질 끌고 왔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여행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새로운 여행을 가는데, 몇 개월 전에 다녀와서 아직 정리하지 못한 짐을 빼지도 않고 그대로 새로운 여행을 위한 짐을 넣는다면 여행은 벅찰 수밖에 없습니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도, 집 안에 음식이 가득한데 운동을 시작한다고만 해봤자 음식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전환관리', 즉 터닝포인트의 전문가라 불리는 윌리엄 브리지스는 터닝포인트의 단계를 '종결 - 중립 지대 - 시작'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에 대해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로 유명한 작가 야마구치 슈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환기를 무사히 극복하지 못한 경우를 꼽아 살펴보면 거기에는 일정한 패턴이나 반복해서 보이는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또한 브리지스는 전환기를 현명하게 뛰어넘기 위한 단계를 종결 → 중립 지대 → 새로운 시작이라는 세 가지 단계로 설명했다. 전환기는 단순히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가 끝나는 시기라는 의미다. 거꾸로 말하면 무언가가 끝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의 시작에만 주목하고 대체 무엇이 끝났는지, 무엇을 끝내야 하는지, 종결에 대한 물음에는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다.”



그래요, 우리는 시작에만 주목합니다. 생각해 보면 뭘 끝내야 할지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만 고민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는 묻지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말하길 자신이 던지는 질문의 수준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참으로 맞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에 삶의 전환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인간관계로 예를 들어볼까요? 애인이 나를 파괴적으로 몰아가고 있을 때 해야 할 일은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쌓인 감정이나 오해, 기대 등을 끊어내는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그 관계를 끊어내야겠죠. 그러면 솔로가 됩니다. 중립 지대입니다. 솔로 시기는 해방감도 들고, 드디어 나를 챙길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 막막하기도 합니다. 아직 연애할 때 남아있던 습관과 생각들이 다 사라지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죠. 다음에 또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지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고요. 그래서 중립 지대가 가장 불안하고 힘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결을 했기에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만약 애인과 헤어지지 않는다면, 애인과 헤어지고 트라우마와 고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새로운 관계가 찾아올 공간이 없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우리는 지금 중간지대에 있으며, 새로운 상황에 자신이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새로 취해야 하는지 모르기에 방황을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누가 알려줄 수 있는 게 아니고 자신이 스스로 알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용기가 필요한 시기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항상 시작할 용기를 내려고 하지만,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용기는 그전의 것을 '완전히 끝낼 용기'입니다.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그저 과거의 그것을 다시 선택하고 살아갑니다.



많은 대학생들이 3학년이 되면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내가 정말 이렇게 취업하는 게 맞을까?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정말로 행복할까? 그들은 1년 정도의 얄팍한 고민을 거치다가 답이 나오지 않자, 과거의 자아를 다시 선택하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했을 때 터닝포인트는 없을 것이며, 언젠가 다른 상황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똑같은 시기를 겪게 될 것입니다.




나이키의 슬로건 'Just do it'에 충격적인 반전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Just Do it은 사실 꾸물거리지 말고 그냥 실행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슈독>을 정말 사랑하고 천천히 두 번, 세 번 곱씹다 보면 필 나이트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나이키의 가치와 믿음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데요. 몇 가지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포틀랜드로 차를 몰면서 림버 업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백과사전을 제대로 팔지 못했다. 게다가 그 일을 싫어했다. 그나마 뮤추얼펀드는 좀 더 많이 팔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일도 싫었다. 그런데 신발을 파는 일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 그 일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킬로미터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파는 신발이 달리기에 더없이 좋은 신발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나의 믿음에 공감했다.

믿음,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했다.


바우어만 코치는 올림픽에 참가하는 엘리트선수만 스포츠맨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늘 가슴에 품고 있었다. "우리 모두가 스포츠맨이지. 우리에게 신체가 있는 한, 우리는 스포츠맨이야."


스포츠란 바로 이런 것이다. 스포츠가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책과 마찬가지로 스포츠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의 삶을 산 것처럼, 다른 사람의 승리 혹은 패배에 함께한 것처럼 느끼게 해 준다.


나이키와 함께했던 운동선수들과 나 사이는 항상 이랬다. 이심전심, 동지애, 연대의 감정이었다. 비록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이지만, 내가 그들을 만날 때마다 늘 찾아오는 감정이었다. 이것이 바로 내가 1962년 세계 여행을 떠났을 때 찾고자 했던 것이다.

자아를 연구하는 것은 자아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미 카사 수 카사. 어떤 식으로든 하나가 되는 것은 내가 만났던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었다.



필 나이트와 공동 창업자 빌 바우어만은 우리 모두가 스포츠맨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스포츠맨이 매일 밖에 나가 달리기를 하면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될 거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 바우어만은 조깅에 대한 책을 쓰며 스포츠와 조깅의 대중화에 기여했죠.


그런 의미에서 Just는 보편성을 의미하며, Do는 달리기를 비롯한 신체 활동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즉, "Just Do it"은 단순히 실행하라는 '그냥 해'의 의미를 넘어, 모두가 스포츠맨으로서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럴 때 생기는 스포츠맨의 '하나됨'을 담은 슬로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무언가를 그냥 시작하려는 강박을 버리고, 내가 자아를 잊어버리는 순간이 언제인지 천천히 느껴보는 건 어떨까요? 누군가는 그림을 그릴 때 마치 시간이 사라진듯한 경험을 한다고 해요. 저는 글을 쓸 때 그렇답니다. 아마도 필 나이트는 신발을 파는 순간만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잊고 그저 삶의 의미를 성취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백과사전을 파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여행에 가서 현실에 안주한 친구를 끊어내지 않았다면 나이키는 없었을 겁니다. 우리도 무언가를 끊어내고, 새로운 일이 나에게 찾아오는 것을 허용하는 상태에 머무르는 건 어떨까요? 물론 그건 오래 걸리고 끈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진짜 필요한 용기는 '시작'을 위한 용기가 아닌, 기다릴 줄 아는 용기와 끝을 내는 용기입니다.



젊은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돕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나는 그들에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앞으로 40년 동안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 쓰고 싶은지 깊이 고민해 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20대 중반의 젊은이들에게 직업에 안주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천직을 찾으라.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더라도, 계속 찾도록 하라. 천직을 찾으면 힘든 일도 참을 수 있고, 낙심하더라도 금방 떨쳐 버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성공에 이르면 지금까지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슈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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