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관하여 3
책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입이 근질근질한 주제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걸 이야기해보려 해요. 그전에 먼저 제 과거를 잠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20살의 제 눈엔 분명 남들은 취업을 준비하든 고시 공부를 하든 다음 스텝에 대해 준비하는 거 같은데, 저만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취업 준비를 해볼까도 했지만, 도저히 어떤 직무에 어떤 회사를 들어가야 할지를 모르겠으니 시작을 못하겠달까요.
지금이야 답답할 때마다 서점을 가지만, 그땐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뭐라도 해답을 찾고 싶은 마음에 중고서점 알라딘을 찾았습니다. 둘러보니 취업을 잘하는 법은 있었습니다. 면접을 잘 보고, 자기소개서를 잘 쓰는 법, 일을 잘하는 법도 있었습니다. 이런 책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나요? 이미 취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대충 어느 정도의 계획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겁니다. 어떤 직무로 커리어를 시작할지, 어떤 분야로 나아갈지 조금이라도 정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거예요. 다른 말로 이미 무인도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보물을 찾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섬에 정박도 하지 못한 어리숙한 대학생이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 난 어떤 일이 잘 맞을까? 무슨 일을 해야 재밌을까?라는 질문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정한 친구들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정했을까?' 하는 의문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다음 해에도 같은 질문을 수백 번 던졌지만,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했죠. 결국 저는 소득도 없이 입대를 했고, 이곳을 나가기 전까지만 답을 찾자는 생각으로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그것이 2019년이었습니다.
훈련소 시절 어느 날, 조교들이 호명하는 사람들은 모두 복도로 나오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면접을 보러 가기 위한 소집이었습니다. "151번." 저였습니다. 부리나케 복도로 달려 나갔죠.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제가 면접을 본 곳은 작전부대였습니다. 작전 부대, 말 그대로 군생활 내내 작전이 있다는 겁니다. 저는 항상 기왕 하는 거 열심히 하자는 생각입니다. 군생활도 다르지 않았죠. 그래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면접에 임했습니다. 약간의 거짓말도 섞었죠. 예를 들면, 저는 그때 당시 렌즈를 끼는데 1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하지만 옆 친구가 5초 만에 낀다고 거짓말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3초 만에 낄 수 있다고 호기롭게 소리쳤습니다. 나중에 면접을 회상할 때 그 친구가 제가 먼저 거짓말을 해서 과장을 했다고 착각하더군요. 아주 어이가 없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냐는 면접관 분들께, '저는 살면서 제가 하고 싶은 건 다 해냈고 이뤄냈습니다. 이 일도 분명합니다.'라며 21살의 패기를 보여주었어요.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는 애가 말이죠. 저는 합격했습니다.
첫 작전, 첫 책을 고를 때였습니다. 하필 첫 작전이 저녁에 일어나 아침에 자는 야간 작전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외롭고 생각이 많은 시기였는데, 새벽의 고독함은 저를 더 괴롭혔죠. 첫 작전이라 작전에 대해 공부할 것도 많았습니다. 3시간이 넘게 공부했을까요? 밤 12시, 분대장님이 이제 그만하고 좀 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엔 공부를 더 하는 척하다가 정말 안 그래도 된다는 말씀에 공부를 멈추고 책장을 쳐다봤어요. 100권이 좀 안 되는 책이 꽂혀 있었습니다. 할 게 독서밖에 없는 환경 탓에 책을 읽는 결심 따위는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여기서 시간을 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독서다, 이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하고 제목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인생이 쓸 때, 모스크바'를 골랐습니다. 책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죠. 인생이 썼습니다.
책을 처음 읽을 땐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읽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읽게 되었고, 점점 궁금한 게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책장에서 골라 읽는 독서를 멈추고,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턴 궁금한 게 먼저고, 책은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단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어보려는 친구들은 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어떤 책부터 읽어야 돼?' 저는 그 친구가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알려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질문이 잘못됐다고 짚어줄 수는 있습니다.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가 아니라, 무엇이 궁금한지를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어떤 책'보다는 최근의 관심사나 고민을 생각해 보면 좋아요. 만약 최근 요즘 고민이 인간관계라면 그것을 다루는 책을 읽어보는 것이죠. 그럼 거의 대부분 만족합니다. 왜냐하면 내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더 정확히는, 저자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와 공명합니다.
이와 똑같은 맥락의 구절이 있습니다. 또 야마구치 슈인데요. 그는 '독학'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논점을 제대로 잡으라고 조언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막무가내로 독학에 뛰어들어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분산투자하는 것보다는 이처럼 ‘배움의 목표’를 정하는 편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장르를 배울까?’라는 논점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사실 독학의 목표는 장르가 아니라 테마여야 한다. 달리 말하면, ‘테마가 주가 되고, 장르가 이를 따르는 형태’가 이상적이다. 이것은 독학을 하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핵심인데도 이를 인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독학을 하려고 할 때 ‘철학을 공부할까? 아니면 역사를 공부할까?’라는 식으로 장르를 설정하면서 시작하기 쉽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테마’에 맞는 방향성을 찾는 것이다. 테마는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논점이다. 예를 들어 “혁신이 일어나는 조직은 어떤 조직일까?” “기독교는 고뇌하는 직장인을 구원할 수 있을까?”와 같은 것들이다. 이런 테마들에 대해 나름의 답을 추구해 가면서 독학을 해야 하며, ‘무엇을 인풋할 것인가’는 이들 테마에 대해 어떤 힌트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가 판단의 포인트가 된다.
반면 장르란 심리학이나 역사, 문학 등 콘텐츠의 분류 항목을 말한다. 독학의 전략을 세운다는 것을 ‘어떤 장르를 공부할까’를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렇게 정해버리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지적 전투력은 향상되지 않는다. 장르를 따르는 공부는 이미 누군가가 체계화해 놓은 지식의 구조를 따라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통찰이 생겨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 <독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中
어떤가요? 제가 방금 말한 질문이 잘못됐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셨나요? 한 발 더 나아가 저는 "독학의 전략을 세운다는 것을 ‘어떤 장르를 공부할까’를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렇게 정해버리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지적 전투력은 향상되지 않는다."라는 문장을 읽자마자 이렇게 읽혔습니다. 우리는 진로 전략을 세운다는 것을 '무엇을 해야 할까'를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렇게 정해버리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터닝포인트는 일어나지 않는다.
고등학생들은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통상적으로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까?'를 묻습니다. 어른들도 이렇게 묻고, 자기 자신에게도 이렇게 묻죠. 그러나 제 생각엔 이 질문은 정답이 아닌 듯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좇는 '궁금증'을 찾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인간이 화성에 갈 수 있을까?"라고 묻는 학생이 있다면, 지구과학에 관련해서도 배워야겠지만 물리에 대해서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뿐일까요? 로켓과 관련한 기술도 배워야 하고, 인간에 대해서도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배워야 할 게 끝도 없죠. 하지만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뭘 공부해야 할지 막막할 뿐입니다.
전공 역시 누군가의 궁금증에서 시작됩니다. 제 전공은 '소비자학'입니다. 소비자학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분명 어떤 학자들이 1900년대 중반으로 갈수록 소비가 점점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면서 여러 궁금증을 가지고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질문을 던졌고 각자의 대답을 내렸습니다. 그 대답을 한데 모아놓으면 '소비자학'이 됩니다. 따라서 전공은 다른 누군가가 호기심을 가지고 내린 답의 나열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전공을 달달 외우기만 하면 지적 전투력은 향상되지 않겠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땐 '무엇'에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나' 혹은 문제, 사명에 대해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야마구치 슈가 말하는 '장르', 즉 직업이라는 수단이 먼저가 아니라 내가 삶에서 이뤄내고자 하는 '테마', 소명이 주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 천직을 발견하여 사는 사람은 소명이 주가 되고, 직업이 이를 따르는 형태입니다. 나는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나는 어떤 일과 하나가 되고 싶은가? 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하는가? 나는 어떤 일에 특히나 화가 나고, 특히나 애정을 갖는가? 나는 어떤 소명에 부름을 받고 있는가? 저는 이 순서의 전환이 진로 고민에 대한 거의 모든 고민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많은 이들이 모르는 거 같아 꼭 알려주고 싶어요.
이제 우리가 던져온 질문의 본질에 대해 말씀드린 거 같으니, 이 질문에 관하여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아직 나 자신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자신을 더 이해할 수 있도록 세상을 경험하거나 꽁꽁 숨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도록 노풋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부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말씀드린 '소명'이라는 테마는 내가 직접 부여하는 게 아니라 발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소명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Calling,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억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릅니다. 문제는 대답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조급해하고, 남들과의 비교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질문에 대한 답보다 그 답을 기다릴 줄 아는 끈기와 내적인 믿음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제가 처음부터 강조한 이유죠.
그렇기에 무작정 질문만 던지고 있으면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린 그 시간 동안 조급해하고 결국은 억지로 뭐라도 시작하려 듭니다. 그런 걸 '애쓴다'고 하죠. 애써서 하면 어떻게 될까요? 영성가 아니타 무르자니는 임사체험을 겪고 난 후 깨달은 점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졌던 믿음과 중요시한 가치를 저쪽 세상에서 한 꺼풀씩 벗겨낸 후 진정한 나 자신과 대면했을 때 나는 내 모든 행동의 배후에 근본적으로 두 가지 원동력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바로 사랑과 두려움이었다. 내가 한 모든 행동의 배후에는 이 두 힘 중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사랑보다는 두려움에 떠밀려 대부분의 인생을 소비했음을 분명히 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놀랍도록 명확히 이해했다.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 순간부터 무조건 두려움이 아닌 사랑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이다.
- <나로 살아가는 기쁨> 中
여러분은 어떻게 읽히시나요? 저는 너무 공감이 됩니다. 저는 중간 지대에 있을 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한 행동을 했는가.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기에 공부를 해왔고, 친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를 숨겼습니다. 두려움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 우리가 억지로 무언가를 행하는 건 모두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아니타 무르자니는 사랑을 원동력으로 행하여, 나답게 살라고 조언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존재한다'고 표현하는데요.
내 행동이 ‘행위함’에서 나오는지 ‘존재함’에서 나오는지 보려면 매일매일 결정을 내릴 때 어떤 감정이 뒤따르는지 보기만 하면 된다. 결정의 동기가 두려움인가, 아니면 열정인가? 내가 날마다 하는 모든 행동들이 삶에 대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나는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 행동이 두려움의 결과라면 나는 ‘행위하는’ 상태에 있다.
(...)
그저 존재하기보다 계속해서 뭔가를 ‘하는’ 상태에 있을 때 이런 일이 발생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영혼의 목소리에 따라사는 것, 허용의 상태에 있는 것을 뜻한다. 이는 아무런 판단 없이 자기 자신이 되도록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존재함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 순간에 머물면서 감정과 느낌을 따라 행동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 반면 ‘행위함’은 미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마움은 특정 결과를 얻기 위해 우리를 여기저기로 데려가며 무슨 일인가를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지금 내 감정이 어떤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中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우리는 뭔가를 '하는' 상태가 아닌, 자기 자신이 되도록 허용하는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말한 "뭘 해야 할지 모를 땐 뭘 하면 안 된다"는 말의 참의미입니다. 그녀가 말하듯,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억지로 애쓰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내 감정과 느낌을 따라야 한다는 겁니다. 다만, 내 감정과 느낌을 그동안 너무 억눌러왔기 때문에 그것의 목소리가 다시금 나오기 위해 '노풋'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죠. 천천히 가야 합니다. 기왕 말이 나온 거 '천천히'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구절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에 있는 "여유 있게 사는 법" 챕터에 있는 구절입니다.
아주 근사한 사건이었다. 프루스트는 면도를 하지 않았고, 지저분했으며, 하얗고 갸름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위원회가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 얘기했다. 나는 "흠, 우리는 보통은 10시 정각에 모입니다. 뒤에는 비서들이 있고요......"라고 말했다. "아뇨, 아뇨! 말씀을 너무 빨리 하시네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주세요. 대표단의 차를 탔고, 오르세이 선착장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 방에 들어가셨다. 그러고는요? 정확히 설명해 주십시오, 정확히요." 그래서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얘기했다. 모든 사소한 것들에 대해. 악수, 지도들, 종이가 스치는 소리, 옆방의 홍차, 마카롱 쿠키. 그는 아주 열중해 들으면서 가끔씩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선생님,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라고 끼어들었다.
"너무 빨리 하지 마세요N' allez pas trop vite"는 아마 프루스트주의적 슬로건일 것이다. 그리고 너무 빨리 하지 않으면 생기는 이점은, 그러는 도중에 세상이 더 재미있어진다는 것이다.
-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中
우린 아직 찾아오지도 않은 미래에 초점을 맞추며 삽니다. 머릿속에 이상향을 그려놓고 지금의 나와 비교합니다. 목표에 갇혀 살면서 과정과 현재를 무시합니다. 그러니 애쓰게 됩니다. 애쓰면 애쓸수록 내가 뭘 해야 할지, 나는 누구인지 찾을 가능성은 없어집니다. 저는 어느 순간 애쓰지 않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게 딱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책이 찾아왔습니다. 허용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죠. 무언가가 두려워서 읽은 게 아니라, 미래에 초점이 맞추어져 읽은 게 아니라 그 순간의 열정을 좇았죠. 물론 나중엔 완전히 미래에 초점을 맞춰 책을 읽은 시기도 있음을 고백합니다.(이전 글 내용이 그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애쓰지 않을 때 분명 충만하게 존재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사랑과 열정을 원동력으로 행동하고 살고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도 좋다는 겁니다. 왜 알아야 하겠습니까?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는 것,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 사랑과 행복으로 가득 찬 삶을 살기 위해서 아닌가요? 그럼 지금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될까요? 그리고 삶의 본질은 확실함이 아닌 불확실함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땐 뭘 해야 할지 찾아서 인생에 확실함을 불어넣는 게 진짜 본질이 아니라, 두려움에 의해 사는 삶을 끊어내고 사랑과 열정에 따라 살면 그만입니다. 물론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압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표는 누구나 세울 수 있습니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표 없이 충만한 하루를 살아가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대단한 책임감과 자격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처음에 말씀드린 말의 의미입니다.
"꿈과 목표는 오히려 나를 방해하는 족쇄가 되었으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진리를 배웠습니다. 목표가 없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책임감을 요한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공허함과 불안은 사라지고 충만함과 공감이 생겼습니다."
- 이번 시리즈의 첫 글, <"앞으로 뭘 할 생각이야?">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