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고 삶 그 자체라면.

독서에 관하여 4

by 보로미의 김정훈

저는 대단한 사명을 찾고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화성에 인간을 보내기 위해 인생을 걸고 있다는데, 나도 인생을 걸 만한 무언가가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신조가 있다면, "무얼 하든 끝까지 가라"입니다. 무얼 하든 제대로 해서 끝까지 가봐야 그 일이 실패로 돌아가더라도 미련이 남지 않고, 다음 경험에도 좋은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공으로 이어진다면 그 이유는 끝까지 갔기 때문일 겁니다. 제 짧은 인생 경험에 무언가를 시도해 본 일은 많이 없지만, 가끔은 끝까지 가지 못했던 순간들도 있습니다. 코딩을 독학하겠다고 시작했지만 3개월 정도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유튜브를 하겠다고 맥북까지 사서 시작했지만 역시 3개월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독서 블로그를 해보겠다고 선언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경험들은 제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경험을 제외한 나머지는 끝까지 발악하며 갔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가는 경험이 쌓이면서 깨달은 사실은, 저에게 그 '끝'이란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으뜸이 되는 대학교를 가보겠다고 처음에는 소리쳤지만, 나중엔 그렇지 않은 대학교로 목표를 바꿨고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운동을 하더라도 1년 정도 열심히 노력해서 만든 몸에 '충분히' 만족했고, 어떤 음식을 먹거나 감정을 느낄 때도 이만 하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그것은 부정적인 감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들은 10년이 넘도록 분노의 감정을 쏟아붓다가 지쳐 쓰러진 후에, '나는 왜 이렇게 쓸모없는 감정 낭비를 해왔는가.'하고 말지만 저는 1년이면 충분했습니다. 남들에 의해 사람은 큰 뜻을 품어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받았지만, 사실 저에겐 작은 뜻으로도 충분한 내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감히 추측하자면 이 내면의 뿌리는 제가 태어나고 자란 보로미마을에 있다고 봅니다. 큰 뜻 없이 충분하면 좋은 마을. 충분한 것이 완벽한 마을. 저는 그곳에서 태어났기에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 수 있고, 충분하면 충분한대로 즐길 수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제가 끝까지 간 경험 중 '인생의 의미 추구'에 관하여, 그리고 독서에 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가끔은 책으로 도피했던 24살의 나.



저에게 대학 입학이란 "주인공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는 동화의 결말과도 같았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앞으로의 인생은 평생 행복하리라 믿었죠. 그러나 대학에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다시 4년을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 내가 또다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 위한 "준비" 단계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던져두었고, 누구보다 열심히 바보짓을 했습니다.



“다시 돌이켜 보면 그 시기에 나는 얼마나 굶주린 듯 열렬히 학교와 무관한 것을 경험하려고 들었던가. <삶을 위한 준비>가 아니고 삶 그 자체라면, 그것이 우정이든, 소위 첫사랑이라고 하는 것이든, 친구들과의 갈등이든, 독서나 신앙 문제 또는 바보짓이든 가리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어떤 것, 바로 현재의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며, 졸업 시험이 끝난 후이거나 학교에서 말하듯 <준비가 끝난 후>의 것이 아니었다. (...) 이 지속적인 임시 상태에 대항하여 우리는 가능한 한 충만하고 진실한 삶을 살려고 애를 쓴다.”

- <평범한 인생>, 카렐 차페크 中



저는 정말로 대학과 무관한 것을 경험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어떻게든 이 '지속적인 임시 상태'에 대항하기 위해 술을 마시고 사람을 만났습니다. 매일 카페에 가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군대에 가서도 지금 '현재의 자신'에게 속할 수 있도록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집요하게 추구했습니다. 끝없는 통로를 걷는 것 같았지만 확실한 의미를 찾을 때까지 물고 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어쩌면 인생의 의미에 대한 필요 이상의 지식 추구는 실천을 미루기 위해 더욱 알려고 발버둥 치는 도피적 태도일 수도 있다."

- <굿바이 카뮈> 中



저는 스무 살부터 정말로 "인생의 의미에 대한 필요 이상의 지식 추구"를 해왔습니다.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왜 사는가. 열심히 공허한 삶에서 도피했죠. 정말 다행스럽게도 제 끝은 낮은 편이라, 금방 제가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면서 실천을 미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3년이었죠. 정확히 말하면 3년 하고도 4개월입니다. 저는 어쩌면 인생의 의미를 묻는 길에 있어 끝까지 갔고, 그래서 저는 처음에 인생의 의미를 계속해서 물으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제가 <굿바이 카뮈>를 읽고 쓴 독후감에도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는 최근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멈추기로 했다. 그런데 이 책을 만났다. 내가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멈추기로 한 시기에 이 질문을 멈추는 것에 관한 논리적 과정, 그리고 삶의 의미를 얻는 것, 그리고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

내가 이 책을 20살에 읽었다면 3년간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 책을 읽었더라도 고민했을 것이다. 나는 그저 운 좋게 고민을 멈추려는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것이다. 철학을 멈추지는 않겠지만 막연하게 인생의 의미에 대한 필요 이상의 지식 추구는 멈추지 않을까."



그리고 스물세 살에 제가 예상한 대로, 저는 그 뒤로 의미에 대한 필요 이상의 지식 추구를 멈췄습니다. 충분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 뒤로 새로운 도피처가 생겼습니다. 바로 책입니다. 책은 종종 도피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인생에서 잠시 도망치기 위한 수단이었죠. 그래서 독서하는 순간만큼은 마치 여행을 떠난 듯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했을까요? 저는 점점 "도피적 독서"를 습관처럼 하게 됐습니다. 스물세 살 이후로 저는 틈만 나면 인생을 살지 않고 독서를 하며 삶을 미뤄뒀습니다. 분명히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두려움에 질려 책으로 도망쳤습니다. 오늘 하루 더 충만한 하루를 살 수 있는데, 무대 위로 올라가 담대하게 춤추며 오를 수 있었는데, 저는 도망쳤습니다. 이와 관련해 저를 참 아프게 만든 문장이 있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책을 이리도 좋아하는 사람이 독서가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 말하기만 하는 거 같습니다. 애증인 걸까요. 물론 모든 독서가 도피성 독서는 아니었습니다. 가끔 충분히 실천해야 하는 순간에 책을 찾았다는 말입니다. 책을 제대로 삶에 적용해보지도 않고, 책을 통해 나를 읽지도 않고 그저 책을 읽는데 급급했습니다.



물론 이것이 마냥 그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일상에 지친 사람이 여행을 가듯 저는 책을 읽었고, 직장 상사에게 혼나고 집에 돌아와 멍 때리듯 TV를 보는 것처럼 책을 읽었습니다. 머리가 복잡할 때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했고, 심지어 그 책의 내용이 내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하더라도, 할 게 없어서 붕 뜨는 시간에 마치 ‘킬링타임용 영화'를 보듯 책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인생이 두려워 삶을 미루기 위해 인생의 의미를 좇고 책을 읽었습니다.



도피적 독서도 어쩌면 하나의 독서법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필요 이상'이면 좋지 않겠죠. 제 독서 인생은 그야말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습니다. 파우스트가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말했던가요? 그 말이 꼭 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누구보다 독서에 있어서 방황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책의 장점을 다 다르게 말하기에, 독서라는 것은 도대체 얼마나 완벽한 행위인가 하고 감탄하기도 했다가, 책이 사람을 오히려 바보로 만든다고 했을 때는 또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그리고 그것을 실제로 경험으로 깨달았을 땐 또 얼마나 좌절했는지.



세상엔 참 여러 가지 독서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읽는 게 정답이고, 저렇게 읽는 게 정답이라고 말하죠. 책의 분야에 따라 독서법도 다 다릅니다. 전공 서적을 읽는 것처럼 소설을 읽은 순 없으니까요. 반대로 인문학 독서를 하듯이 전공 서적을 읽어서도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전공 서적은 깊디깊게 들어가야 하지만 인문학 독서는 그 속에서 본질과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이니까요.



책은 며칠 안에 읽어야 한다거나, 독후감을 써야 한다는 등 정말 많은 조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사실입니다. 요즘 사회가 '자기계발'과 '독서'를 하나의 트렌드, 혹은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만큼 독서를 시도하려는 분들이 여러모로 알아야 할 게 참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관통하는 본질은 없습니다.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게 불가능하듯, 책마다의 의미는 모두 다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 역시 상황에 따라 성취해야 할 의미가 있습니다. 책 역시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읽을 때마다 다가오는 의미가 다르고, 그 책을 통해 내가 인생에서 무엇을 가져가게 될지가 다릅니다.



그러니 책을 읽으며 얻는 모든 시행착오가 아름답습니다. 그 어떤 방법도 잘못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생각은 잠시 미뤄두고, 맛있게 책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독서를 그렇게 즐길 수 있을 때, 인생도 그렇게 즐길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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