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본질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까?

독서에 관하여 2

by 보로미의 김정훈

솔직히 말할게요. 저는 책을 얼마나 더 빠르게 읽을 수 있는가를 고민해 온 '다독야심가'였습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언제 마지막 페이지가 나오나..' 하고 책을 해치우는 데 급급했죠. 그래서 다 읽은 책이 쌓일 때마다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날도 책을 열심히 읽고 있었습니다. 꽤 두꺼운 책이었죠. 어떤 책인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넘겨도 넘겨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책이었죠. 지겨운 독서 끝에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자마자, 뿌듯함은 전혀 없고 마치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느낀 공허함을 마주했습니다. 책을 다 읽으면 생기는 어떤 뿌듯함을 기대한 걸까요? 아니면 책을 다 읽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 ‘다독가’라는 타이틀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인 걸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 비로소 이 책을 ‘읽었다’고 느낄 수 있었기에 그렇게 달려왔을까요.



두꺼운 책을 계속 읽노라면 어느새 책이 아니라 완독 자체가 목적이 될 때가 있습니다. 주객전도. 나를 읽기 위해 책을 읽었는데, 결국 저는 길고 긴 여정 중에 한심하게도 원래의 목적을 잊고 책을 읽고 해치우는 것이 나의 진정한 목표라 착각했습니다. 독서를 위한 독서를 했죠. 그런 독서는 끝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고 오히려 공허함만 남습니다. 이 거대한 공허함을 느낄 때마다 독서라는 행위가 인생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주객전도하니, 고등학생 시절에 제가 해온 실수가 생각납니다. 저는 공부를 할 때마다 스톱워치를 켰습니다. 오늘 하루는 얼마나 공부했는지 체크하기 위한 용도였죠. 공부를 시작하면 눌렀고, 쉴 때마다 멈췄습니다. 이렇게 하면 자투리 시간도 사용해서 공부를 하게 되고 매일 내가 얼마나 공부하는지 추적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다만 이걸 계속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건 바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기 위해 시간을 채운다는 것이죠. 집중은 하나도 안 하고 있는데 공부 시간은 계속 늘어갔습니다.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공부 시간은 분명 10시간으로 찍혀있지만, 남들 2시간 하는 것만도 못한 날들이 많았습니다. 본질을 잃은 거죠.



어떤 일을 하고 있다면 우리도 분명 그 일을 시작한 원래 이유가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길고 긴 여정 속에서 진짜 목적을 잃어버리곤 합니다. 나중에 일이 끝이 나서야 내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왔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어떤 목표를 좇으며 인생을 사는 이유는 목표를 더 빨리 해치워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인생을 맛보기 위해서임을 저는 책을 읽으며 다시금 상기하게 됩니다.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서 여행하려고 노력하는 것, 많이 보려고 하지 말고 자세히 보려고 하는 것이 중요해요. 책 읽는 것도 마찬가지 같아요. 제가 다독 콤플렉스를 버리자고 자주 말하는데요. 자랑하려고 많이 읽는 게 핵심이 아니죠. 얼마나 체화됐느냐, 얼마나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쳤느냐 이런 것들이 중요합니다. 살면서 얼마나 많이 본질을 놓쳐왔는가. 시간을 채우기 위한 공부, 권수를 높이기 위한 독서, 내 사심을 채우기 위한 연애, 목표만을 좇기 위한 인생. 삶은 본질을 항상 기억하고 그에 맞게 사는 것이 아닐까. 요즘 나는 본질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까?

- <다시 책은 도끼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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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친구들 중에 틈만 나면 애인과 싸우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사실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서로 사랑해서 만나는 건데 왜 저렇게 죽이지 못해 안달일까. 저는 본질을 잃었다고 봐요. 정말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자신이 왜 서운하고 미안한지를 잘 설명하고 대화를 해나가면 될 텐데 말이죠. 물론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잘 압니다. 원래 본질은 쉽게 흐려지니까요. 그리고 한 번 화내고 싸우는 게 어렵지, 한 두 번 하다 보면 그것도 습관이 돼서 계속 싸웁니다. 이런 맥락에서 조금은 포인트가 다르지만 제가 참으로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이 있는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조시는 활강 스키 선수로 명성을 날린 빌리 키드Billy Kidd의 조언 때문에 인생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조시가 빌리와 처음 스키를 타러 갔을 때의 일이다. 슬로프의 마지막까지 내려온 다음 다시 리프트를 타러 가던 도중 빌리가 문득 그에게 물었다. “조시, 활강 코스에서는 가장 중요한 세 번의 턴이 있는데, 뭔지 아니?” 조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미소를 지으며 빌리가 말했다. “마지막 세 번의 턴이지.”


사람들은 대부분 코스의 가장 가파른 부분이나, 폭발적인 가속도를 붙여야 할 시작 지점에서의 턴이 가장 중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빌리는 코스를 거의 다 내려올 무렵의 ‘마지막 세 번의 턴’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은 안다. 슬로프의 마지막 구간은 평평하기 때문에 가장 쉬운 구간이라는 것을. 빌리는 조시에게 마지막 턴이 중요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려운 구간을 모두 통과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마지막 세 번의 턴을 남겨두고는 방심한 나머지 자세가 나빠지지. 그러면 다시 올라가 새롭게 내려올 때도 무의식적으로 그 나쁜 자세를 내면화하고 말아. 그래서 스키에서는 마지막 턴이 가장 중요해. 마지막 자세가 좋아야 다음번에도 좋은 자세로 출발할 수 있게 돼.”


나는 빌리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루의 마무리가 좋으면, 그 좋음이 밤새 이어져 새로운 아침을 좋은 기운으로 시작하게 한다.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항상 좋은 자세에서 마무리를 한다.

- <타이탄의 도구들>, 팀페리스 中



처음에는 책을 집중해서 잘 읽다가 마지막에 집중력이 떨어질 때까지 읽으면 나중엔 책을 읽는 내내 페이지 넘기기 급급합니다. 누군가를 하루종일 아껴주다가도 집 가기 직전에 피곤하다고 대충 집에 데려다주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면 다음엔 대충대충 만나게 됩니다. 마지막의 나쁜 자세가 다음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이런 본질을 잃은 '나쁜 자세' 하나가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면 나중엔 나쁜 자세가 내면화되어 독서 자체가, 연애 자체가, 인생 자체가 본질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책이 너무 재밌다가 약간이라도 하향세를 타는 듯싶으면 바로 독서를 멈춥니다. 글 쓰는 게 너무 행복하다가 조금이라도 막히는 느낌이 들면 바로 글쓰기를 멈춰요. 공부를 할 때도 재미가 없다 싶으면 바로 그만둡니다. 물론 그러려면 아주 일찍 공부를 시작해야 하죠. 그래서 전 여유로운 과제도 2~3주 전부터 시작해 버립니다. 그게 마음이 편해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도 컨디션이 허락하는 한, 마지막을 특히 신경 씁니다. 나쁜 자세가 내면화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죠. 이 부분에 대해선 정말 본질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습관 과학'을 찬양하는 사람이지만 절대 습관처럼 상대방을 대하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독서라는 행위가 참 인생을 예행 연습하기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독서를 할 때 마지막 자세를 좋은 자세로 가져가려고 의식적으로 연습을 하면 일상의 다른 영역에도 이 자세가 영향을 미치거든요. 이것이 곧 본질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 본질을 살아가는 자세가 되리라 믿으면서요. 여러분의 마지막 턴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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