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관하여 1
책 이야기를 하려니 벌써부터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네요. 여러분은 어떨지 몰라도 저는 책을 읽다 보면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고 삶의 모든 근심걱정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듭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제가 독서를 많이 좋아하나 봅니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짝사랑하는 사람의 연락을 받은 듯 숨길 수 없는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고, 현실감각을 잊고 책 속에 빠져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가끔 제 친구들도 저처럼 책을 읽고 싶다며 조언을 들으려 합니다. 제 주변에는 '독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보다 응원하고 싶은 친구들이 없지만, 한편으론 조심스러운 마음도 큽니다. 독서가 너무 신성시되고, 책이 반드시 도움이 될 거라는 잘못된 믿음이 우리 사회에 진득하게 깔린 듯한 느낌 때문입니다. 책이 분명 도움을 주긴 하지만, 사실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의 경우엔 책이 오히려 그 사람을 망치고 인생을 낭비하곤 합니다.
믿기 어려운 말이겠죠. 그런 믿을 수 없는 일이 제게 찾아왔습니다. 2020년 10월, 저는 그 해 1월부터 한 달에 적어도 7권, 많게는 15권씩 책을 읽었습니다. 나름 바쁘고 정신없는 부대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1분 1초를 아끼면서 책을 읽어야 했죠. 자투리 시간을 쥐어짜서 독서하는 습관은 어쩌면 이때 다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독서의 질은 좋지 않았습니다. 음식으로 치면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켜서 체한다는 표현이 적절하겠네요. 그치만 '다독가'라는 생각에 취해 나름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잖아요. 책을 읽으면 뭔가 열심히 사는 것 같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듯한 느낌. 군대에서 책을 읽는다니 그보다 생산적이고 멋진 일이 어딨겠습니까.
이런 믿음이 한순간에 박살 난 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요일 오후였습니다. 일요일은 아침부터 핸드폰을 받을 수 있는 날입니다. 생활관을 함께 쓰는 분대원들은 주말에 불을 켜지 않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저는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자연광에 의존해서 책을 읽어야 했죠. 그럼 집중이 참 잘 됩니다. 오후 2시쯤 되었을까요? PX에서 군것질거리를 사 와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Ardhito Pramono의 'Bitterlove'를 들으며 말이죠. 3시간 정도 읽다 보니 지치더군요. 휴게실로 가서 쉬려 하는데, 주말마다 같이 대화를 나누던 후임이 거기 있었습니다. 기분 좋게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후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에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읽었던 책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요. 그래서 새 책을 사서 읽기보다 지금까지 읽은 책을 다시 읽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듣자마자 시간낭비라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책을 읽기도 바쁜데, 읽은 책을 또 읽는다니. 세상에 읽어보지 않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고 저는 후임과 달리 10개월 동안 읽은 책을 까먹지 않았다고 단언했죠. 하지만 마음속 한편에 작은 의심과 불안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부리나케 책장으로 달려가 지금껏 읽은 책을 돌이켜봤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분명 열심히 읽었는데, 분명 읽는 그 순간엔 누구보다 충만했는데, 아무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책장에는 지난 10개월 간 읽은 수십 권의 책이 꽂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의 제목만 봤을 때 그 책의 내용이 뭐였는지, 내가 그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무슨 내용이 인상 깊었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순간 10개월이 눈앞에서 녹아내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커다란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마치 10개월간 키워온 근육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독서는 언제나 생산적인 일이고,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책을 읽는 건 마치 운동과 같이 시간이 밑 빠진 독처럼 흘러버리는 군생활에서 유일하게 밑을 지킬 수 있는 고귀한 행위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믿음은 박살 났고 그제야 “독서는 길고 인생은 짧다”는 밀란 쿤데라의 말에 뼈저리게 공감하고 이해했습니다. 길고 긴 독서로 짧은 인생을 낭비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뒤로 무작정 읽기만 하는 독서를 멈췄습니다. 읽은 내용을 소화할 줄 아는 독서법을 정립했고, 독후감을 써 내려갔으며, 무조건 양으로만 승부를 보는 독서를 끊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더 읽으니 나중엔 다행히도 사람들이 '당신은 어떻게 그리 책을 잘 기억하고, 제목만 툭 던지면 내용과 느낀 점을 다 기억하시오?'라고 물어보더군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참으로 뿌듯하고 기쁘지만서도 그때의 절망감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친구들에겐 독서법을 말해주기보다 "잃어버린 10개월"에 관하여 이야기를 해줍니다.
10개월간의 시행착오는 가슴이 저리지만 반드시 필요한 경험이라 생각했고, 더 이상 독서라는 영역에서 그런 일은 없으리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악마는 또다시 찾아왔습니다. 2023년 5월, 저는 나름대로 독서에 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었어요. 아주 편안하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했죠. 하지만 한편에 항상 무언가 버겁다는 생각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버거움을 표현하자면, 정말 가벼워 보이는 옷을 입었는데 알고 보니 통풍은 하나도 안 되고 무거운 옷인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요. 또 약간의 허함도 있었습니다. 정말 멋진 선물 상자가 있는데 상자를 까보면 아무것도 안 들어있을 거 같은 기분이었죠. 하지만 이런 표현도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것이지, 그 당시엔 그저 물음표뿐이었습니다. 평안함 속에 물음표 한 점과 같은.
물음표가 느낌표가 된 순간에 저는 '나다움'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책에선 이렇게 말하고 있었어요. 네가 직접 경험하고 배운 게 아니라면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최소한 당신에게 진실이 아니다. 그건 진짜 '나'가 아니라, 추악한 지식에 불과하다. 남에게 배워온 지식으로 나 자신을 무장하면 오히려 진짜 '나'를 알 수 없다.
아무도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이 그대 자신의 지식인지 묻지 않는다. 그대 자신의 지식이 아니라면, 그것을 옆으로 치워두어라. 그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그대가 하고 있는 일은 그대 자신의 열망에서 나온 것인가? 그대는 진정으로 자기 가슴속에 종소리를 느끼는가? 그렇지 않다면 단 한순간도 더 이상 그 일에 자신을 낭비하지 말라.
(...)
따라서 그대는 자신이 아는 것이 가설이며 삶에서 실용적으로 쓸모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대가 느끼고 경험한 것,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이 진리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그것이 가설에 불과하다면, 옆으로 치워두어라. 그러면 부담감은 없을 것이다. 그대는 가설로 긁어모으고 남에게서 빌려온 지식을 무거운 짐처럼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에 깔려서 옴짝달싹 못 한다. 그냥 그것을 옆으로 치워두어라.
- osho
제가 좇던 삶은, 제가 알고 있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상당 부분 직접 배운 시행착오의 부산물이 아니라 책에서 배운 지식의 조립품이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라 지금껏 읽어온 '책'이었습니다. 문제는 책을 단 1권만 읽었다면, 무엇이 책으로 배운 가짜 지혜이고, 무엇이 내가 직접 배운 진짜 지혜인지 알 터인데, 읽은 책이 많아서 어디까지가 내 것이고 남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대혼란이었습니다. 진리는 결국 가르칠 수 없고, 직접 경험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남의 진리를 그저 가져다 쓰면 나를 잃는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습니다. 그제야 쇼펜하우어가 말한 '다독'의 위험성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허망하게 주저앉았습니다.
다독은 인간의 정신에서 탄력을 빼앗는 일종의 자해다. 압력이 너무 높아도 용수철은 탄력을 잃는다.
- 쇼펜하우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게 뭐 어때서 그러느냐. 남에게 빌려온 지식으로 살아가면 안 되느냐. 하지만 그런 인생은 참으로 버겁습니다. '나다움'을 신화처럼 받드는 게 아니라, 남에게 빌려온 지식으로 살아가면 불필요하게 무거운 짐을 들며 살아가기에 삶이 버거워집니다. 그리고 분명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말로 대답은 할 수 있지만, 정작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게 됩니다. 살고자 하는 삶과 실제 삶과의 간극이 느껴진달까요. 이게 정말 사람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진정 나다운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남에게 빌려온 지식을 모두 옆으로 치우고 내가 직접 경험하고 얻은 진리로 살아가야 진정한 성장과 나다움을 이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제가 느끼고 있던 부족함은 결국 남에게 빌려온 가짜 지식으로 내 인생을 지어보려는 불가능한 노력에 대한 느낌이었죠.
명심하라. 그대가 경험한 것만이 그대 자신의 것이다. 그대가 진정으로 아는 것, 그대가 아는 것만이 그대의 것이다. 그것은 아주 작다. 걱정하지 말라. 씨앗은 매우 작다. 그러나 씨앗은 잠재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사물이 아니라,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는 존재이다. 다만 기회가 필요할 뿐이다. 기회를 만드는 것, 나에게 있어서 그것이 바로 스승의 역할이다. 그대에게 지식이나 원칙을 알려주는 게 아니고, 그대에게 교리나 신조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이 아주 서서히 사라지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것들이 그대에게 매달려 있지 않고, 그대가 그것들을 강하게 집착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 osho
이 구절을 읽으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왜 뭘 하려고 하면 안 되는지를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뭔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바깥에서 주입된 원칙과 습관, 가짜 지식을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노풋을 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내 안에서 나 자신이 우러나옵니다.
그대는 지금 당장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숨고 있는 주체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사들은 계속해서 때려대는 것이다. 붓다가 나에게 와서 붓다가 되는 방법을 물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그의 머리를 내려칠 것이다. “지금 누구를 속이려 드느냐? 네가 바로 붓다이다.”
- osho
독서는 항상 생산적이고 의미가 있을 거라는 믿음. 저는 이 믿음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책에 의존하면 오히려 짧은 인생을 낭비하고 심지어는 나를 잃는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독서는 절대 책을 읽는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를 읽는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네가 보던 책들을 집어치워라. 그런 것들로 더 이상 너의 정신을 산만하게 하지 말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그런 의미에서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이 조금 어렵나요.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사실 책이 아닌 나 자신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죠. 책을 읽으려 하면 책에서 배운 가짜 지식으로 진짜 나를 덮어버릴 겁니다. 책은 언제나 책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모든 독자는 자기 자신의 독자다. 책이란, 그것이 없었다면 독자가 결코 자신에게서 경험하지 못했을 무언가를 분별해 낼 수 있도록, 작가가 제공하는 일종의 광학 기구일 뿐이다. 따라서 책이 말하는 바를 독자가 자기 자신 속에서 깨달을 때, 그 책은 진실하다고 입증된다.
-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면 저는 이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책이 아닌 나를 읽으려고 하라." 이것이 제가 4년간의 치열한 독서로 배운 지혜이자, 책을 읽기 전에 알아야 할, 제1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