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느낌이 바로 그대가 된다

습관에 관하여 4

by 보로미의 김정훈

여기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기사도 소설에 푹 빠져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읽은 나머지, 소설을 실제 이야기라고 믿게 되는데, 오히려 현실보다 소설 속 이야기가 더 진실이라고 믿게 되죠. 결국 그는 편력기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세상으로 나갑니다. 비쩍 마른 말 로시난테를 타고 거인과 맞서 싸우지만, 그것은 사실 거인이 아닌 풍차였으며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여인 둘시네아를 찾으러 나섭니다.



그의 이름은 모두가 아는 돈키호테입니다. 돈키호테는 자신의 세계관에 미쳐있습니다. 자신이 보고 있는 세계가 맞다고 생각하죠. 모두가 돈키호테에게 미쳤다고 말할 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룩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내가 미친 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만 보는 사람이 미친 거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돈키호테는 세계관이 맞다고 생각하느라 애쓰고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세계관을 그저 진심으로 즐기고 인생을 항해합니다. 사람들은 미친다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제가 돈키호테를 읽자마자 든 생각은 이 세상에 미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어떤 이들은 축구에 미쳐 있고, 어떤 이들은 소설에 미쳐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공에 미쳐 있고, 어떤 이들은 평범함에 미쳐 있어요. 다른 사람을 미쳤다고 하는 사람마저 무언가에 미쳐 있죠. 물론 자신은 그것에 ‘미쳐 있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을 수 있지만요. 그렇기에 저는 어차피 미쳐 있을 거라면 한번 ‘올바른 것'에 미쳐보자는 생각입니다.



진정한 자유란 "구속의 부재가 아니라 올바른 구속을 찾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믿는 세계관에 구속당했습니다. 자신의 세계관에 먹혀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자유로워보입니다. 구속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올바른 구속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습관을 만들기 시작할 때 저는 돈키호테처럼 생각하려고 합니다. 이미 그렇게 됐다고 믿는 겁니다. 그럼 습관을 만들 때 참으로 편합니다.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이미 운동에 미친 사람이 됐다고 믿으면 됩니다. 그리고 내가 아주 잘 살고 있다고,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다고 믿는 겁니다. 우리의 정체성과 느낌은 습관에 가장 중요한 보상이 됩니다.


축복받았다고 느껴보라.

그것은 그대의 느낌의 문제이다.

그대의 느낌이 바로 그대가 된다.

그것은 그대의 책임이다.

- osho



습관이 생기는 원인 중 하나는, '보상’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 그에 따른 보상이 찾아오면 뇌는 '와 얘 좋네?'라고 생각합니다. 그 뒤로 뇌는 보상과 그 보상이 나올 수 있는 행동에 집중하기 시작하죠. 이때만 해도 행동은 그저 보상이 나오기 위한 부차적이고 귀찮은 과정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행동과 보상이 반복되다 보면 습관이 되는데요.


재밌는 사실은, 행동이 습관이 된 순간 행동 그 자체가 보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보상은 필요 없습니다.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어떤 대단한 목적이나 결과를 바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습관을 하나 떠올려보세요. 어떤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지 않나요? 그저 습관이 보상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대단한 결과를 기대하며 다리를 떨지 않습니다. 다리를 떨고 있는 그 자체에서 만족감을 느끼죠.



영국의 등반가 조지 밀러리에게 한 기자가 묻습니다. "왜 계속 산을 오르십니까?" 그는 답합니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습관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왜 책을 읽느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못합니다. 몇 초간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냥 읽는다고 하고 말 거예요. 그리고 그게 정답입니다. 습관이 원래 그런 친구기 때문이죠. 이런 특징에서 아주 재미난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라면을 먹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처음엔 아니었겠지만, 이제 그에겐 라면의 맛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저 라면을 먹는 행위 자체에서 보상받습니다. 한편, 의식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라면 먹으면 안 되는데!' 그러나 습관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의식이 감히 이기지 못합니다. 자책을 하면서도 라면을 먹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의식이 이길 수 있을까요?


의식은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먹는 행위 자체가 보상이 되었다면, 다른 걸 먹는다고 문제 될 건 없잖아. 라면 말고 다른 걸 먹어도 될까?' 답은? 완전히 괜찮죠! 예를 들어, 매 끼니마다 콜라를 먹는 습관이 마음에 걸린다면 제로콜라를 먹거나 다른 음료로 대체해도 좋습니다. 처음에 뇌는 새로움에 당황하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이미 습관이 되었다면 콜라가 너무 좋은 게 아니라 밥을 먹을 때마다 마시는 행위 자체가 좋았을 뿐입니다. 나쁜 습관에 보약을 떨어트려 보세요.


나쁜 습관에 보약을 떨어트리는 방법도 좋지만 마냥 쉬운 방법은 아닙니다. 복잡한 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이전의 예시만 보더라도 라면을 먹다가 갑자기 다른 걸 먹는다고 가정해 볼게요. 과연 라면만큼 간단한데, 라면만큼 맛있는 음식이 있을까요? 너무 맛이 없어도 뇌는 오히려 힘들어할 수 있어요. 충분히 맛은 좋지만 간단하고 건강에는 좋은. 컵라면 중에 그런 친구들이 있겠네요. 그러나 라면이 아닌 담배와 같은 경우는 '니코틴'처럼 중독을 유발하는 물질이 있기에 더, 더 복잡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담배에 사탕을 떨어트리는 경우는 많이 봤습니다만..!)



가끔은 보약을 떨어트리기 막막한 습관도 있습니다. 따라서 위의 방법은 거의 중독 수준에 가까워서 도저히 못 말리는 짱구가 됐을 경우에 시도만 해보는 정도가 좋습니다. 혹은 부정적인 습관을 ‘고치고 싶을 때’ 활용해 보는 게 좋습니다.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따로 있어요. 그러려면 두 가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1. 습관에 공백은 없다.

2. 긍정적인 부분에 집중하면 부정적인 부분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긍정적인 것만 남는다.


저는 친구들에게 종종 지난 주말에 뭐 했냐고 물어봐요. 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래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한번 더 묻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뭐 해?'



그럼 당연하게도, 그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데 뭘 하냐고 반론하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었어요. 일을 안 한다거나, 평소보다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의미에 가까웠죠. 잠깐 멍을 때리다가, TV를 보다가, 누워서 하루종일 핸드폰만 할 때 친구들은 '아무것도 안 한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결국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은 명상의 경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명상의 상태에 있을 만큼 초연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단순히 10분 앉아서 명상하는 의미에서의 명상이 아닌, 모든 생각이 멎어버리는 ‘명상의 경지’라는 의미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 빈 틈이 없습니다. 일상의 97%가 습관이라는 말도 있어요. 즉, 우리의 모든 일상은 습관이고 그게 아닌 3%의 경우만 의식적으로 행동합니다. 그럼 이제 선택할 것은 단 하나, 일상을 좋은 습관으로 채울 것이냐, 나쁜 습관으로 채울 것이냐입니다.


그럼 이제 빈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성이 왜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린 보통 나쁜 습관을 '없앤다'라고 표현하지만 없앤다는 건 사실... 불가능합니다. 빈 공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없애면 남는 건 ‘무’입니다. 하지만 '진공'의 상태에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차라리 나쁜 습관에 보약이나 설탕을 떨어트리면 또 다른 습관으로 '변형'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빈 공간을 만들 순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까지 나쁜 습관을 '없애려는 노력'이 거의 무조건 헛노력이 되었던 이유입니다. 접근법이 잘못된 거죠.


따라서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습관을 만들어서 나쁜 습관과 옥신각신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니 정말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노력이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대신 의식해서 이렇게 접근하면 많이 다를 뿐이죠.) 이때 필요한 이해가 바로 '긍정적인 부분에 집중하면 부정적인 부분은 자연스레 사라지고 긍정적인 것만 남는다’입니다.



이런 경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운전을 하고 있는데 눈앞에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장애물을 피하려고 하고, 그 장애물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장애물에 부딪힐 확률이 높아집니다. 차가 자연스레 그 장애물 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정말로 장애물을 피하려면 장애물이 없는 부분에 집중하고 운전해야 합니다.



예시로 보면 쉬워 보여도 실제 상황에선 쉽지 않습니다. 습관으로 예시를 들어볼까요? 만약 하루종일 누워서 유튜브 보는 습관을 끊고 싶다고 할게요. (한 가지 더 가정하자면, 유튜브 보는 습관이 나쁘다고 자기 스스로 판단한 경우입니다. 유튜브를 보는 그 자체가 나쁘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린 이제 알 수 있습니다. 유튜브 보는 습관을 '끊겠다'거나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유튜브를 끊겠다'라는 접근 자체가 유튜브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우린 더욱더 유튜브 쪽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루종일 유튜브 말고 할 일이 있으면 됩니다. 유튜브를 볼 시간에 다른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부정적인 습관이 사라집니다. 매일 유튜브를 보는 습관이 있다면 하루 날을 정해서 '영화를 보자!'라고 다짐해 보세요. 그럼 하루에 2~3편씩 영화를 보게 됩니다. 이걸 3일만 해보면 유튜브 생각이 안 납니다. 정말 신기하죠? 심지어 영화를 보는 시간도 점점 줄어듭니다. 그 시간에 다른 걸 할 수 있게 돼요.



우리는 ‘부정적인 습관’, '약점', '하기 싫은 일', '자기 의심' 등에만 집중하다 보니 오히려 그 장애물에 더 부딪히게 됩니다. "그대의 느낌이 바로 그대가 된다." 두려움에 집중하면 나는 두려움에 빠질 뿐입니다. 따라서 가장 좋은 것은 긍정적인 느낌에 집중하고 축복받았다고 믿으며 사는 겁니다. 나쁜 습관을 없애는 데 집중하지 말고 좋은 습관을 만드는 데 집중하라! 꼭 써먹어보세요. 이제 남은 건 좋은 습관을 만드는 방법뿐입니다.


나는 확실히 안다. 우리 모두에게는 숨을 들이마신 후 신발을 벗어던지고 무대로 걸어 나와 춤출 기회가 매일 주어진다. 한 점 후회 없이 지칠 때까지 즐거움을 누리고 까르르 웃으며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살 기회가 매일 온다. 그때 우리는 삶이라는 무대 위로 담대하게 춤추며 올라, 직관에 따라 자신의 영혼이 살며시 이끄는 방향을 따르면 된다. 물론 벽 앞에 앉아 자기 의심과 두려움의 그늘에 머무를 수도 있겠다.

바로 지금이 선택해야 할 순간이다. 지금 이 순간만이 우리가 그 존재를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당신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비본질적인 것에 파묻혀 정말로 즐겁게 사는 것을 잊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은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신이 훗날 인생을 되돌아보았을 때, 당신이 매 순간을 소중히 보내기로 마음먹고 마치 지금이 내게 허락된 시간의 전부인 양 온 힘을 다해 즐기기로 결심한 날이 바로 오늘이라면 좋겠다. 그대로 자리에 머물 것인가, 무어대에 나가서 춤출 것인가의 갈림길에 섰을 때, 당신이 춤을 춘다면 정말 좋겠다.

- 오프라 윈프리,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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