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에 관하여 2
'나다움'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중요한 시기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어린 시절입니다. 아직 순수한 나 자신일 때. 내 고유한 성향이 빛을 발하던 시절. 그리고 지금의 성격과 습관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절. 아마도 어린 시절에 내가 살던 동네는 지금 나의 성격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저자 밀란 쿤데라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출생의 날짜와 장소에 절망적으로 못 박혀 있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 삶의 구체적이고 유일한 상황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만 그리고 그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 밀란 쿤데라
그런 의미에서 어린 시절의 내가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 생각해 보는 건 지금의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제가 태어난 마을은 보로미 마을입니다. 삼별초가 몽골에 맞서 최후까지 항쟁을 벌인 곳으로 알려진 항몽유적지 바로 아래에 위치한 보름달을 닮은 마을. 집 앞으로 애월 바다가 보이고 집 뒤로 한라산이 보이는 동네였죠. 빌라 같은 아파트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동네 이웃들이 서로가 서로를 잘 알고, 그저 평화로운 동네였어요. 물론 아파트가 들어서고 흉흉한 일들이 여럿 생기면서 보로미 마을만의 정이 많이 사라졌지만요.
보로미 마을은 언제나 적막함이 어려있었어요. 어릴 땐 '적막하다'는 단어를 몰라 말로 표현하진 못했지만, 저는 매일같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와 학원을 드나들며 그 '고요하고 쓸쓸함'을, '의지할 데 없이 외로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것이 마을의 분위기였죠.
물론 외롭기만 한 동네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이웃과 자주 골목에서 만나 놀았어요. 같이 컴퓨터 게임도 하고 자전거도 탔죠. 땅따먹기는 물론이요, 맛있는 과일도 나눠먹었습니다. 인라인 스케이트도 탔네요. 지금 생각하면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냄새가 나는 사랑스러운 동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마을 한 켠엔 적막함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적막한 마을의 외로움보다 군중 속 외로움이 더 외롭다는 걸요. 평생을 제주에서 살다가 서울이라는 섬에 처음 정착했을 때의 그 쓸쓸함이란. 처음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알게 된 친구들은 서울 사람이거나, 고등학교에서 같이 올라온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게 아니면 고등학생 때부터 이미 타지 생활을 해봐서 새로운 지역에서의 삶에 곧잘 적응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저는 아니었죠.
외로움에 몸살을 앓고 있는데, 인생이란 뭘까하는 실존적인 고민까지 덮치니 저는 인생을 붙잡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벼랑 끝을 잡고 있는 손가락을 하나둘씩 놓기 시작했어요. 그땐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실은 아니었죠. 저는 모든 걸 포기하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러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하루종일 쉬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누구보다 애쓰고 있었어요. 그땐 정말로 생존하기 위한 애씀이었어요. 너무 애쓰느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에너지가 바닥나고, 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해서 바닥난 에너지를 또 어떻게든 채워야 했죠.
그럴 때 우리는 마지막 남은,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려는 노력이죠. 저는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를 잃고,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포기합니다. 빅터 프랭클 박사는 말합니다. “의미를 성취하려는 본래의 관심이 좌절되었을 경우에만 인간은 권력에서 만족을 찾거나 쾌락에 집중하게 된다.”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20살의 저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습니다. 그저 권력의 맛을 보기 위해 학회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술이라는 쾌락에 나를 던져버리기 위해 매일 술자리에 나갔고, 그 덕에 선배들에게 이쁨을 받아 학회장에 뽑힐 수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친구들은 어떻게 매번 새벽 5시까지 남아서 술을 마실 수 있냐고 물었지만 저에겐 지쳐 쓰러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는 게 더 고통스러웠어요. 그땐 그런 하나하나가 '행복'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쾌락과 생존에 가까웠습니다.
습관 전문가, 웬디 우드는 <해빗>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일상의 스트레스는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가리지 않고 그 지속력을 강화시킨다." 저에게 좋은 습관은 없었어요. 오로지 나쁜 습관으로만 일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불안과 우울에 쩔어 있었기에, 저는 나쁜 습관의 힘과 지속력을 무한대로 강화시켰습니다. 처음엔 힘들어서 먹던 음식도 나중엔 습관적으로 입에 때려 박기 시작합니다. 도저히 나 스스로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이유도 없이 마시고, 먹고, 짜증 내고, 사람을 만났어요. 그것이 내 바닥난 에너지를 채워주니까. 아니 잠깐의 공허함을 잊게 해 주니까. 그리고 원래 이유 없이 하는 게 습관이니까. 다리를 떨고 있는 사람에게 '왜 다리를 떨고 있냐'고 묻는 건 바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자신이 다리를 떨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습관처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그러냐고 묻는 건 바보 같은 질문이에요. '왜 그러고 있냐'고 묻기보다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만 해도 자신이 몰랐던 것을 자각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나쁜 습관은 다 나열하기도 어렵습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때 제가 안 좋은 습관을 잔뜩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았지만, 나쁜 습관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삶을 바꾸기 위해서 습관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도 나중에서야 깨달았죠. 이전에도 말했듯, 저는 군대에 가서 강제적으로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인생이 확 트이기 시작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물론 아주 천천히 그랬지만요.
군대에 가기 전에 저는 어떻게 하면 매일같이 우울하고 공허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처절하리만치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제가 만약 습관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면 달라졌을 것이란 확신을 합니다.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던 수많은 질문을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그때 제가 궁금했던 질문의 일부는 이렇습니다.
‘사람은 왜 쉽게 변하지 않는가?’
‘목표가 없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에 의존하여 하루를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목표가 없을 때 나는 당장 내일부터 뭘 해야 하는가?’
‘변화하는 사람과 나의 차이는 뭘까?’
‘인생의 의미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일상은 뭘까?’
‘자유란 무엇인가? 난 어떻게 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저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단 한 마디로 하라면, '습관을 이해하고 습관을 이용하라'라고 말하고 싶어요. 습관은 막상 공부해보면 정말 간단합니다. 심지어 실천해 보는 것도 너무 간단하죠. 물론 습관을 만드는 건 어렵다는 '사회적 편견'이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뭔가 아주 열심히 노력하고 각 잡고 애써야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고정관념이 우리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그러나 당장 생각해 봐도, 우리는 애써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생긴 습관들로 하루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습관은 사실 굉장히 만들기 쉬울 때 생겨납니다.
제가 20살부터 궁금해했던 그 질문들에 하나씩 답을 해볼까요?
‘사람은 왜 쉽게 변하지 않는가?’
습관에 조종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변하려 하면 할수록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습관의 힘은 더 강해질 뿐입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도대체 무엇에 의존하여 하루를 살아야 하는가?'
습관과 루틴에 의존해야 합니다. 아니, 이용해야 합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지금 내가 끌리는 것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지만 끌리는 것이 금방 사그라들 수 있습니다. 한두 번이면 상관없지만, 항상 그런 식이면 매년 새로운 일을 시도하다가 아무것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끌리는 것을 따라갈 때 금방 포기하고 싶을 때 그것을 막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습관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목표가 없을 때 나는 당장 내일부터 뭘 해야 하는가?’
내일부터 무엇을 하지 않고 '노풋'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무언가를 행동하지 않는 것이 그러나 무언가를 '행한다'는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당장 내일부터 해야 할 일은 '끝'입니다. 끝내야 합니다. 내가 뭘 끝내야 할지 아직 모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관이나 성격, 감정들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습관은 내 일상을 구성하는 생각, 감정, 행동이기 때문에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가치관을 끝내고 싶어도 끝낼 수 없습니다. 빅터 프랭클은 말했습니다. “의미를 성취하려는 본래의 관심이 좌절되었을 경우에만 인간은 권력에서 만족을 찾거나 쾌락에 집중하게 된다.” 처음엔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중엔 쾌락에 집중하느라 해왔던 행동이 모두 습관이 되어버리고, 집중하지 않아도 그런 행동을 하게 됩니다. 우린 이때 생긴 나답지 못한 습관을 끊어내야 합니다.
‘변화하는 사람과 나의 차이는 뭘까?’
저는 세 가지 대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 가지는 '끝의 단계'에서 차이입니다. 윌리엄 브리지스의 말대로, 변화하는 사람은 끝을 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무작정 시작하려고 합니다. 다른 한 가지는 '시작의 단계'에서 차이인데요. 시작이 금방 물거품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습관입니다. 매번 '동기부여'나 '의지'에 의존해서는 금방 지치기 마련입니다. 습관은 자동대로 흘러가게 합니다.
물론 마지막 하나는, 노풋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의미를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일상은 뭘까?’
웬디 우드는 말합니다. "습관적으로 행동하기만 해도 불안감이 줄어든다. 거의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한다고 답했던 사람들은 매 순간 인생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느꼈다." 대학생이 특히 불안하고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매일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반복적으로 하는 일이 없어요. 매일 다른 시간에 자고 일어나기도 하죠. 물론 습관적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매 순간 인생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느낀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 차이 역시 저는 습관 혹은 관성에 조종당하느냐, 관성을 이용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자유란 무엇인가? 난 어떻게 하면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신학자 팀 켈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자유란 “구속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올바른 구속을 찾는 것”이다. 저는 이 구속이 습관이라고 말해도 좋다고 생각해요. 우린 어차피 습관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올바른 습관에 구속당하는 겁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진정한 자유죠.
이제 다시 베리 슈워츠의 어항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팀 켈러가 말한 '구속의 부재'와 베리 슈워츠가 말한 어항은 일맥상통합니다. 따라서 저는 그가 말한 '자신만의 수조'를 최대한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면, 좋은 습관을 만들어 그 안에 구속당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어항'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지만 '습관'은 그보다 더 와닿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습관에 구속당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만 하면, 좋은 습관에 구속당할지 나쁜 습관에 구속당할지를 선택하기만 하면 됩니다.
지난 시간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제가 도움을 받았던 책을 소개드렸다면, 이번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습관의 과학에 관하여 말씀드릴까 합니다. 물론 역시나 책 이야기는 빠질 수 없겠죠. 아주 약간의 습관 과학만 이해하더라도 우리는 습관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