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에 관하여 3
여행 좋아하세요? 저는 참 좋아하지 않는데요. 남들 다 못 가서 안달이라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여행을 별로 다녀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실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서울과 제주를 오가면서 국내선은 많이 타봤지만, 국제선을 타본 적은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내 일상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꼭 여행이 아닌 다른 것으로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인데요. 여행에 가면 좋은 점이야 얼마든지 많겠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현생'에 과몰입하고 있던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일상 속 나'를 제삼자가 된 듯이 바라볼 수 있다는 말이죠. 예를 들면, 여행을 가기 전엔 내가 남들의 눈치를 보느라 내 소중한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여행에 가서야 그것이 명확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명확한 걸 왜 여행에 가기 전엔 몰랐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가 하면, 여행의 또 다른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은 일상의 루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서울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비슷한 시간에 운동을 가고, 비슷한 시간에 잠을 잡니다. 그런데 제주만 내려가면 그 모든 습관들이 사라지곤 합니다. 리셋이 된다고 해야 할까요? 이렇듯 환경이 바뀌면 매일 하던 습관도, 행동도 심지어는 감정도 모두 리셋됩니다.
그런데 여행을 끝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어떤 습관은 놀랍게도 그대로 살아납니다. 왜 그럴까요? 습관은 '상황'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매일 달리기를 할 때마다 같은 공원에서 했다면, 나중엔 공원을 지나가기만 해도 뛰고 싶어 집니다. 매일 밥을 먹을 때마다 제로콜라를 마셨다면, 밥을 먹는 상황만 생기면 제로콜라가 생각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습관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상황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전 글에서 말씀드렸듯이, 저는 군대에 들어가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인 습관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훈련소는 누워서 유튜브를 본다거나, 밤에 라면을 먹는 행동이 나올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왜 저는 제주만 가면 서울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습관이 사라질까요? 그 습관들이 모두 서울에서의 특정 조건과 상황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습관은 전적으로 어디서 하는지, 그 습관이 튀어나올 때 내 주변이나 조건이 어떤지에 아주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사를 가거나 새로운 환경에 갔을 때가 바로 지금껏 가지고 있던 나쁜 습관을 없애고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첫 번째 개념은 '습관은 상황에 좌우된다'입니다. 하지만 이 개념 하나만으론 일상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막막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렇다면 제가 가지고 있던 안 좋은 습관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보겠습니다.
습관도 결국 트리거가 필요합니다. 어떤 신호(자극)가 왔을 때 습관이 튀어나오죠. 하지만 이런 말을 처음 듣는 분들은 이런 의문을 품곤 합니다. 신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는 밤만 되면 아무런 신호도 없이 라면이 땡기는데요?' 사실 제가 했던 말인데요. 이 말속에서도 저는 트리거가 보입니다. 바로 '밤이 되었기' 때문이죠. 밤이라는 상황적 자극이 습관의 트리거입니다.'그럼 밤이 안 오게 할 수는 없잖아요!' 물론 밤이 유일한 자극은 아닙니다. 밤만 되면 어디에 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매일 '밤'에 '침대'에서 '누워 있다가' 라면이 땡긴다면, 밤과 집과 누워 있음이 하나의 상황적 트리거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밤에 약속을 나가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라면을 먹지 않았습니다. 즉, 밤 이외에도 여러 트리거가 있는 아주 복잡한 나쁜 습관이겠죠.
그럼 이제 '습관은 상황에 좌우된다'는 개념과 '습관은 트리거가 필요하다'는 개념을 써먹어볼까요? 여기서 가장 쉽게 습관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은, "라면을 사두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라면이 항상 놓여 있는 방에서 라면이 없는 방으로 환경(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밤만 되면 라면이 땡긴다는 사람은 사실 밤마다 집에 라면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어찌 그리도 준비가 철저한지. 담배를 도저히 끊을 수 없다는 사람은, 도처에 담배가 널려 있습니다.
라면을 미리 사두지 않는 것은 환경을 바꾸는 방법 중 하나입이다. 습관을 바꿀 땐 이렇게 환경을 바꾸는 것이 가장 첫 번째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 최고최선의 방법입니다. 상황 중에 가장 거대한 것이 바로 '환경'이기 때문이죠.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어요. 단 한 번만 처리해도 되는 일회성 방법이라서 어떤 것보다도 쉽고 간편하기도 하죠. 그래서 사실 환경을 바꿀 수 있다면 거의 모든 게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환경을 바꾸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습관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행동들이 그렇습니다. 운동하는 습관, 공부하는 습관 등이 있겠죠. 즉, 단 한 번만 처리한다고 습관이 바뀌지 않는 행동들입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습관을 다르게 정의하기만 하면 됩니다. 습관을 이렇게 정의해 볼게요. '뇌 속 기본값'. 말이 어렵죠?
버튼을 누르면 사탕이 나오는 기계를 설계한다고 해볼게요. 그 기계는 버튼을 눌렀을 때 기본값이 뭘까요? 사탕이 되어야 합니다. 버튼 = 사탕. 그럼 이번엔 매일 밤마다 라면을 먹는 습관이 있다고 해볼게요. 어떻게 하면 그 습관을 없앨 수 있을까요? 아까도 말했듯이 라면을 집에 안 사놓으면 됩니다. 그것도 하나의 기본값입니다. 집 = 라면이 없는 곳. 기본값의 특징은 단 한 번만 처리해 두면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버튼을 눌렀는데 언제는 사탕이 나오고, 언제는 녹물이 나오면 그건 기본값이 아니겠죠. 항상 방에 라면이 없는 것도 기본값이죠. 환경을 바꾸는 것은 다른 말로 환경의 '기본값'을 바꾸는 방법입니다.
조금 더 예를 들어볼까요?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자마자 눕는 습관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습관을 없앨 수 있을까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누울 수 있는 자리를 없애는 것입니다. 침대를 없애면 되죠. 저는 자취방에서 요매트를 쓰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매트를 접어둡니다. 그럼 일상 중에 누울 일이 없죠. 하지만 침대 프레임이 무거워 그럴 수 없는 집도 많습니다. 이렇게 '기본값'을 바꾸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분석해 보는 겁니다. 이 습관을 부모님들의 잔소리 문장으로 표현하면 '얘는 밥만 먹으면 눕더라'입니다. 여기서 기본값을 분석해볼 수 있습니다. "'얘'에게 '밥 다 먹음'을 입력하면 항상(!) '눕는다'가 출력된다." 이 밥만 먹으면 눕는 사람의 메커니즘은 뇌 안에 있는 메커니즘입니다. 그럼 반대로 이것도 될 수 있을까요? '얘는 밥만 먹으면 나가서 산책한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뇌 안에 있는 기본값을 바꾸면 됩니다. "얘에게 밥을 입력하면 나가서 산책한다는 출력값이 나온다. 얘는 밥만 먹으면 항상 나가서 산책하는 게 기본값이다!"
환경이라는 습관의 기본값을 바꾸는 것은 일회적인 방법이고 너무 좋은 방법이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내 뇌 안에 있는 기본값을 바꾸면 됩니다. 즉, 신경 회로를 바꿔 버리는 겁니다. 이것은 바꾸는 과정 자체가 일회적이지 않을 뿐, 바꾸기만 하면 그것 역시 일회적인 방법이요, 더욱 좋은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그땐 환경을 거스르는 인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 다시 처음의 여행 이야기로 돌아가볼까요? 어떤 사람은 여행에 갔는데도 습관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령 예를 들면, 저는 제주에 내려가면 비슷한 시간에 운동을 하진 않지만 매일 운동을 하긴 합니다. 서울에선 매번 특정 상황적 조건이 있기에 비슷한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운동하지만, 제주에선 그런 조건이 사라지고 뇌 속에 있는 운동하는 기본값만이 남은 셈이죠.
이렇게 환경을 거스르는 인간은, 뇌 속 기본값의 개념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존경받곤 합니다. '아니, 침대가 있는데 안 누워?' '아니 어떻게 먹을 게 눈앞에 있는데 꿈쩍도 안 해?' '아니 어떻게 지하철에서 책을 읽어?' 사실 그건 존경받고 대단하게 칭찬받을 일은 아닙니다. 그저 사람마다 뇌 속 기본값이 다를 뿐이죠.
삶을 바꾸고 싶을 때 가장 먼저 바꾸어야 할 것은 '상황'입니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뇌 속 기본값을 바꿔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뇌 속 기본값'을 바꾸는 노력을 참으로 많이 해왔습니다. '내일부터 진짜 열심히 할 거야!'라는 말이 신호탄이죠. 하지만 작심삼일로 그치고 맙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손쉽게 뇌 속 기본값을 바꿀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