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에 관하여 1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제가 꼭 소개해주고픈 구절이 있습니다. 구절을 읽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우린 왜 변하지 못할까요? 분명히 열심히 고민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데 말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공허한 삶에서 충만한 삶으로 변할 수 있는 걸까요? 분명 노력했는데요.
우린 삶이 너무 고통스럽고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을 ‘읽어야 한다’거나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으른 탓에 시작하지 못했던 것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일상에 강박과 고통을 꾸역꾸역 집어넣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항상 뭐라도 하라고 말하지만 정말 우리가 그걸 몰라서 안 할까요? 우리에겐 용기가 아닌 확신이 필요할 뿐입니다. 우린 체력이 부족하고 실행력이 부족한 게 아닙니다. 한 발을 더 디디면 낭떠러지가 있을지도 모르는 길에서 우리는 다음에 딛는 땅이 안전한 땅이라는 사실을 알고 싶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계속 해야만 한다는 부추김에 부담만 늘어갑니다.
물론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옹호하고 응원하는 건 아닙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접근하지는 말자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도움이 전혀 안 되는 짐을 내려 놓고 여유 공간을 먼저 만들어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타 무르자니라는 영성인은 말합니다.
“우리 삶의 어떤 측면을 바꾸려고 할 때 우리는 대체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책을 사거나, 어떤 수업에 등록하거나, 그동안 두려워했던 것들을 매일 다섯 가지씩 하거나 등등. 그러나 먼저 우리는 여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분주하게 뭔가를 하신 대신, 더 이상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놓아버리는 작업을 해볼 수 있다.”
- <두려움 없이, 당신 자신이 되세요> 中
그럼 또 다시 의심과 불안이 치고 옵니다.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거죠. 지금 당장 가진 것을 다 내려놓으면 언제 내 할 일을 찾느냐.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가진 것을 내려 놓지 않으면 어차피 내가 뭘 할지는 찾을 수 없다는 겁니다. 왤까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 야마구치 슈는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전환기를 무사히 극복하지 못한 경우를 꼽아 살펴보면 거기에는 일정한 패턴이나 반복해서 보이는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던 것이다. 또한 브리지스는 전환기를 현명하게 뛰어넘기 위한 단계를 종결 → 중립 지대 → 새로운 시작이라는 세 가지 단계로 설명했다. 전환기는 단순히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가 끝나는 시기라는 의미다. 거꾸로 말하면 무언가가 끝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후자의 시작에만 주목하고 대체 무엇이 끝났는지, 무엇을 끝내야 하는지, 종결에 대한 물음에는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다.”
-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 中
윌리엄 브리지스는 미국의 ‘전환 관리’ 전문가입니다. 그가 분석해보니 터닝포인트를 극복한 사람들은 무언가를 시작한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를 끝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무언가를 제대로 ‘끝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고만 배웠지, 뭘 끝내야 한다는 건 전혀 몰랐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가 그동안 변하지 못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읽어 온 자기계발서는 항상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진정 방황에 관한 책, 인생의 낭떠러지에 대한 책을 읽어보면 대부분 시작보다 ‘끝’을 강조합니다. 끝이 진정한 출발점이라는 거죠. 그럼 무엇을 끝내야 할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해답은 간단합니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제가 전하고 싶었던 말을 깊고 지혜롭게 풀어준 구절이 있는데 소개해드릴게요.
“우리는 내면의 욕망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그저 욕망을 하죠. 우리의 욕망을 구성하는 재료가 얼마나 허망한 것들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욕망의 구성 재료들이 무엇인지 알고 나면 우리는 덜 불행해집니다. (…) 그런데 이 욕망은 사유의 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어요. 사유라는 게 사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스마트폰 끄고, 접속을 멈추고 그저 가만히 있는 겁니다. 인풋도 아니고, 아웃풋도 아니고 노풋 상태로 있는 거죠. 이런 노풋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너 노풋하면 지는 거야, 뒤처지는 거야 하면서 아우성이죠.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지식은 밖에서 들어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우러나온다고요. 사유하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내 안에서 자생적으로 우러나오는 것들을 못 건져냅니다. 그냥 잠깐이라도 가만히 앉아 있어 보세요. 복잡한 생각들이 한결 정리가 돼요. 사유하는 거죠. 사유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 <다시, 책은 도끼다>, 박웅현 中
무엇을 끝내고 시작할지는 안에서 우러나옵니다. 그것을 건져내기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해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인풋을 하고 아웃풋을 하기 바쁩니다. 그리고 항상 핸드폰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노풋 상태로 있지 못하는 겁니다.
'노풋'에 관해서는 생소할테니 조금만 더 이야기해볼까요? 아웃풋은 내가 넣은 것을 빼내는 과정입니다. 노풋은 내 안에 있던 원래의 ‘진짜 나’가 우러나오는 일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우린 넣은 게 없습니다. 그러니 아웃풋이 아니라 노풋을 해야죠. 이게 어떤 말이냐면요,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들어봅시다.
개인이든 가족이든,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관련된 일들에서만이 아니라 오직 자신과만 관련된 일들에서조차도, 내가 무엇을 더 선호하고, 나의 개성과 성향에 맞는 것이 무엇이며, 나의 능력을 최고로 발전시키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무엇인지를 자기 자신에게 묻지 않는다. 그런 것들 대신에, 그들은 나의 위치에 어울리는 것이 무엇이고, 나와 같은 지위와 경제적 수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것이 무엇이며,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심하게도) 나보다 더 나은 지위와 경제적 수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무엇을 하는지를 묻는다.
나는 그들이 그들 자신의 성향에 맞는 것이 아니라 관습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을 선택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관습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외에,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성향이라는 것 자체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의 정신 자체가 노예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
그들 각자가 타고난 본성을 따르지 않는 것이 습관화되고, 그 결과 그들에게는 이제 그들이 따를 본성조차 사라지게 된다. 인간으로서 타고난 자질과 능력들은 시들시들해지고 결국은 굶어죽는다. 어떤 것을 강력하게 원하는 마음도 없어지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힘도 없어진다. 그들 자신 속에서 생겨난 어떤 의견이나 감정, 즉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의견이나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다.
완전히 사라진답니다. 전 이 구절을 보자마자 정말 대단한 통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각자는 타고난 본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노예의 정신 상태를 갖게 되면서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감정과 재능을 억압합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노풋의 시간이죠.
그리고 이 문장. ' 나는 그들이 그들 자신의 성향에 맞는 것이 아니라 관습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을 선택한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관습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는 것 외에, 그들 자신만의 고유한 성향이라는 것 자체를 갖고 있지 않다.' 우린 사실 고유한 성향 자체가 없습니다. 지금까진 그저 정해져 있는 걸 따르기만 하면 되는 싸움이었습니다.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말이죠. 우린 그걸 '선택'한 게 아닙니다. 그냥 당연하게 따라온 거죠. 그게 정답이라 믿으면서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노풋'해야 합니다. 노풋을 하면 내가 항상 가지고 있었지만 미처 보지 못했던 '고유한 성향'이 자연스럽게 안에서 우러나오게 됩니다. 타고난 본성을 따르게 됩니다. 그동안 몇년에 걸쳐 억압해온 습관 때문에 우린 나다움을 잃었습니다. 그러니 우린 먼저 그동안 하대해온 나 자신의 고유한 성향을 찾아야 합니다.
예전에는 나 자신만의 고유한 성향을 마치 농사하듯 하나씩 일궈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나다움'이라는 씨를 뿌리고 열심히 관리하고 수확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열심히 인풋하고 아웃풋해야 되는 건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다움은 바깥에서 가져온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나타나는 겁니다. 일궈내는 게 아니라 내려놓는 겁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나다움이 발화하도록 기다리고 허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노력'은 나라는 사람을 키우고 가꾸는 게 아니라 타고난 것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식을 버리는 데 있다.
- 윌리엄 브리지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가 다음으로 가고 싶은 길은 ‘나다움’으로 가는 길입니다. 나다움이란 남이 어떻게 하라고 말할 수 없는 영역이예요. 절대 그런 방법론따위는 없습니다. 하고 싶은 일 10가지를 적어봐라, 너의 열정이 이끄는 곳으로 가라? 그런 건 모두에게 통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만 정답인 말이예요. 대산 유일한 것은 남들에게 주입당한 가짜 자아, 나 스스로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하는 것을 버리는 것. 그것만큼은 모두가 공통되게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노풋’을 하면서 하나둘 내려놓다보면 내 안에서 무언가가 우러나오기 시작하고 그때부터 각자의 방식으로 시작하면 됩니다.
가장 쉽게 버릴 수 있는 건 가치관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가장 명확한 건 내 가짜 자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껏 정답이라 믿어온 어떤 가치, 목표, 일이 사실은 나답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만 버린다고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습관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습관이 날 잡아먹고 있기 때문에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나답지 못한 '습관'입니다. 나다움과 습관에 관하여 다음 글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