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그림을 그리는 그대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5

by 보로미의 김정훈

"그건 잘못된 거야"

아이와 함께 밥을 먹으러 온 부모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입니다. 저는 지금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요.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으러 온 손님들을 보고 있으면 아이가 소리를 지르거나 가만히 앉아있지 않을 때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가르칩니다.



'교육'이라는 어쩔 수 없는 명분으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무엇이 옳지 않은 행동인지 주입시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만 가도 열심히 손을 들던 아이들은 고학년으로 갈수록,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갈수록 손을 들지 않습니다. 나중엔 수학문제마저도 나를 가르칩니다. '너는 그렇게 풀면 안 돼. 그렇게 풀면 너는 원하는 성적을 얻을 수 없고, 좋은 인생을 살 수 없어. 넌 틀려서는 안 돼.' 우리는 틀리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20살이 되기 전까지 우리의 삶은 어쩌면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되는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이 '잘못'인가에 대해 배우는 삶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실수와 실패를 강박적으로 거부합니다. 잘못된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잘못된 선택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한 마라톤 선수가 있습니다. 모두가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는데, 선수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지금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선수는 길에서 이탈합니다. 그래서 옆으로도 가보고, 뒤로도 가봅니다. 그렇게 열심히 1시간 동안 길을 찾다가 말합니다.

"처음 달리던 길이 맞았구나."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사실, 어떤 길을 걸어도 좋습니다. 어떤 생각을 좇든, 어떤 행동을 하든. 그것이 책임감 없는 행동을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유는 책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유를 직접 마주해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리라 믿습니다. 자유라 믿은 것이 사실은 날 패닉 상태로 만드는 망망대해와 같다는 사실을요.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책임감입니다.



그렇다면 이 자유와 책임감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이 무엇이든 좋습니다. 아무것도 안 해도 좋습니다. 원래 하던 일을 해도 좋습니다. 안 해본 일을 해도 좋습니다. 그것이 어떤 길이든 책임감을 가지고 자유로이 선택하면 됩니다. 일을 안 해본 시기가 있어야, 언젠가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할 수 있고, 일에 미치는 시기가 있어야, 쉬어가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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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무리 처음부터 맞는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그 길이 맞는 길인 줄 모릅니다. 나다움이 뭔지를 찾는 사람은 처음부터 '나다움'을 찾을 수 없습니다. 나다움이 실은 바로 앞에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겁니다. 의심과 불안함, 두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위의 마라톤 선수처럼 말이죠. 이렇게 생각하면 먼 길을 돌고 돌아 항상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다움'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 아름다운 것 같지 않나요?



그러니 '이 길이 잘못된 길이면 어떡하지?', '내가 꿈꾸는 목표가 사실 남들에게 주입당한 목표면 어떡하지?', '시간낭비하면 어떡하지?' 하는 의심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들에게 주입당한 목표를 걸어도 결국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심하지 말고 자신의 자유와 책임감을 즐기다가,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갈아타면 됩니다. 내가 잘못된 고속도로를 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길에서 빠져나오면 됩니다. 진짜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타고 있는 도로가 올바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길은 너무 위험해 보입니다. 그래서 원래 타던 고속도로를 계속 탑니다. 이것이 '책임감'의 중요성이자, 길을 잘못 선택할까 봐 걱정하는 게 왜 쓸모없는지를 보여줍니다. 길을 잘못 선택하는 것보다 조심해야 하는 건 잘못된 길인 것을 알면서도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용기를 내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면 그 길은 투박하겠지만, 그전의 고속도로보다 더 크고 새로운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찾아옵니다. '처음부터 이 길을 걸었다면..' 물론 후회할 필요가 전혀 없겠죠. 처음부터 이 길을 걸었다면 우리는 이 길이 나에게 맞는 길인 줄 몰랐을 겁니다. 방금의 마라톤 선수처럼요. 여차저차 결국 삶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경험인 겁니다. 새로 선택한 길 역시 잘못된 길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역시 배울 게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 명상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명심하라. 나는 내면의 목소리가 그대를 항상 올바른 곳으로 이끌 거라고 약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러 번 그대를 그릇된 곳으로 이끌 것이다. 올바른 문에 도달하려면 사람은 우선 틀린 문을 여러 번 두드려봐야 하기 때문이다. 삶은 원래 그런 것이다. 갑자기 올바른 문에 도달해버리면, 그대는 그것이 올바른지조차 인식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합산해보면, 그 어떤 노력도 낭비되는 일은 없다. 모든 노력은 그대의 성장이 궁극적인 정점에 도달하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잘못될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주저하거나 걱정하지 말라.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된다고 배워왔기 때문에 잘못될지 모른다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이 주저하고 두려워하며 소스라치게 놀란다. 결국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정체되고 만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말로 잘못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은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 osho



제가 바로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갈립니다. 하던 일을 기계적으로 하거나,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아 버립니다. 괜히 일을 벌여서 잘못을 할 거면 집에서 유튜브나 보는 게 낫겠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하늘에서 정답이 툭하고 떨어지겠지 하며 기대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저는 이것이 정말로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럼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용기를 내서 한 발자국 내디뎌야 했을까요? 전 그래야 한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전 그러지 못했거든요. 대신 아주 천천히 저를 설득했습니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도 아무런 문제없을 거라고 말이죠. 전혀 낭비가 아니라고요. 이와 관련한 이야기로,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자는 나비 꿈을 꾸고 나서 제자에게 꿈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들은 제자는 말했다. “스승님의 이야기를 그럴듯하지만 너무 황당해서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자 장자는 “너는 쓸모 있음과 없음을 구분한다. 그럼 네가 서 있는 땅을 한 번 보아라. 네게 쓸모 있는 땅은 지금 네가 딛고 있는 땅이다. 그것을 제외한 땅은 쓸모가 없다. 그러나 만약 네가 딛고 있는 그 부분을 뺀 나머지 땅을 없애버린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그 땅 위에 서 있을 수 있겠느냐?”

장자는 이어서 말했다.

“너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땅은 네가 딛고 있는 땅이 아니라, 네가 쓸모없다고 여기는 나머지 부분이다.”



저에게 필요한 땅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낭비라고 생각해 왔던 바로 그 시간들인 겁니다. 그러니 아무리 그다음에 걷는 길이 또다시 잘못된 선택이라 할지라도 그 길은 저에게 '필요한' 길이기 때문에 제게 참으로 소중한 길입니다.



여전히 겁이 나시나요? 그렇다면 제가 저 스스로를 설득하도록 도와준 구절을 하나씩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삶의 아름다움은 미래를 위해 무엇이 좋을지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 레프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우리가 확실한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무엇이 좋을지 알지 못하는 것, 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 줄지 모르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이라는 점을 일깨워줍니다. 인생은 정답은 찾는 게임이 아니라 그저 불확실한 세상에서 방황하는 여행과 같을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목표와 꿈, 결국 우리가 찾는 바로 그 '무엇'에 대한 구절도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에서 반 고흐가 동생에게 쓴 편지 내용의 일부인데요.



나의 최종 목표가 뭐냐고 너는 묻고 싶겠지. 초벌 그림이 스케치가 되고 스케치가 유화가 되듯 최초의 모호한 생각을 다듬어감에 따라 그리고 덧없이 지나가는 최초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감에 따라 그 목표는 더 명확해질 것이고,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취되는 것은 아닐까.



저는 항상 목표가 명확한 상태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꿈이 있는 상태에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만 배웠지, 과정 중에 목표가 더욱 또렷해지고 다듬어진다는 것은 생각 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특정 자기계발서에나 있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얘기드리자면 목표를 이루게 해주는 자기계발서는 '탑다운 형식'의 인간을 위한 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상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는데요. '탑다운 형식'과 '바텀업 형식'입니다. 탑다운 형식의 인간은 먼저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1년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 달 동안은 뭘 준비하고, 결국 오늘 하루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해서 살아갑니다. 반면 저는 '바텀업 형식'의 인간입니다. 지금 당장은 어떤 꿈과 목표가 찾아올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 끌리는 일을 좇아가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유형의 인간입니다.



바텀업 형식의 인간이 탑다운 형식의 삶처럼 살아가라고 하면 정말 그보다 고통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는 대체로 탑다운 형식을 '진리'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게 교육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목표를 먼저 세우고 달려 나가야 하죠. 제 생각이지만, 자본주의 세계와 돈에 관련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탑다운 형식의 인간이 많은 듯합니다. 그래서 바텀업 형식 인간들은 자기 스스로를 '틀렸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두 방식 모두 맞고 틀린 건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나에 맞게 사는 거죠.



저와 같은 바텀업 형식의 인간이라면 현실의 꿈과 목표는 반 고흐의 스케치처럼 아주 모호한 생각을 가지고 조금씩 그림을 그려나가다가, 그림이 점차 모습을 보일 때쯤 나의 목표도 함께 명확해질 겁니다. 그러니 지금 정말 하찮으리만치 모호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생각을 용감하게 흰 도화지에 던지고 인생이라는 그림을 그려보세요. 점차 그림이 다듬어지다 보면 언젠가 '내'가 아닌 인생이라는 그림이 자기 스스로 모습을 비추어 나에게 꿈과 목표를 알려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그때까지 천천히 그림을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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