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4
저는 크리스마스가 오기 한 달 전부터 캐롤을 듣습니다. 캐롤 특유의 분위기와 감성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인데요. 아련하면서도 따뜻한, 한편으론 외로운데 그러다가도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아주 어릴 적엔 친구를 따라 교회에 다닌 적도 있었습니다. 다른 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하나는 선명하게 기억나요. 크리스마스날 교회에 가서 노래를 불렀던 그날. 열심히 불러서 내려왔더니 엄마는 제게 안 좋은 버릇이 있다며 잔소리를 했습니다. 정말 속상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만큼 크리스마스의 목적에 맞게 보낸 날이 또 없겠네요.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일이니까요. 이와 비슷하게 석가탄신일은 석가모니의 탄생일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은 날이죠. 아마도 그 탓에 명칭이 '부처님 오신 날'로 바뀐 듯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이 두 기념일을 모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휴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나라가 '유교' 국가의 뿌리인 것에 비해 공자의 탄생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는데요. 왜냐하면 제가 다니는 학교가 공자 탄생일에 쉬기 때문입니다. '공부자탄강일'이라 부르는 이 날을 기념하고 쉬는 만큼 우리 학교는 논어를 배운 학생만이 졸업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이 많은 학생들을 화나게 만드는데요. 지루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친구들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논어 수업에 흠뻑 빠졌습니다. '효', '가족', '장례'와 같은 우리나라의 많은 문화나 정신이 어떤 뿌리에서 시작됐는지도 배울 수 있었기에 흥미로웠고, 일단 교수님의 수업 구성이 알찼습니다. 그중에서도 평생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구절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공자에게 물었다.
"한 마디 말씀으로 평생토록 행할만한 것이 있습니까?"
"'서' 이리라.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을 남에게 바라지 마라."
공자는 평생토록 행할만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서'는 공감에 기반한 이해와 배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는 항상 '충'이라는 개념과 세트를 이루는데, 충은 진심을 다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자신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진심을 다해 '충'만하게 경험한다면 우리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여 '서'를 발휘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저도 아플 땐 누구보다 아파하고, 행복할 땐 누구보다 충만하게 행복할 때, 그 경험들만이 나 자신을 이해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기 이해가 남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재료가 됐습니다. 정치철학자 한나아렌트는 말했습니다.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은 행동할 줄 안다.' 아플 때 누구보다 충만하게 아파 본 사람은, 비슷한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지 이해하고 공감합니다. 그리고 공감하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공감의 행동은 '해야 한다'가 아닙니다. '하게 된다'에 가깝습니다. 해야 한다는 생각에선 나오지 않는 책임감과 열정, 사랑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절대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면 안 됩니다. 이 질문은 결국 '해야 한다'라는 뿌리에서 비롯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공감은 사람을 저절로 행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땐 '해야 한다'는 접근보다 자신이 무엇을 '하게 될지' 느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내가 무엇에 공감할 수 있는지, 또 어떤 것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공감은 밖이 아닌 내 안에서 우러나오기 마련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충만히 경험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자유와 고통을 경험하며, 나를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다 보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배웁니다. 그렇게 타인을 공감하게 되면 인생을 걸 만한 자신만의 소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삶의 의미를 자신이 직접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반대하는 편입니다. 삶의 의미나 소명을 자기 스스로 부여하는 것은 '애씀', 즉, '해야 한다'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소명이 아닙니다. 소명은 영어로 Calling, '부름'입니다. 내가 소명의 일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소명이 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소명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참을성 있게 내 인생을 경험하며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여'가 아니라 '발견'이 보다 올바른 단어라고 믿습니다.
생각해 보면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제가 자연스럽게 한 행동들은 모두 공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제가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때 제 심정은 절망스러움이었습니다. '절망스럽다'는 말도 안 나왔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틈새도 없이 그저 절망이라는 상태가 지속되었습니다. 인간관계, 내 정신 상태, 그리고 나의 모든 상황이 날 절망으로 이끌었죠. 지금에서야 군생활이 나에게 많은 이해를 가져다주었다고 말하지만, 그 당시에 저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실제로 입대한 지 6개월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행복하다는 느낌을 잠깐 맛봤습니다. 저녁 늦은 시간, 작전지에서 회식을 하고 내려가다가 GP 철책에 놓인 불들이 초라하지만 제겐 너무나 아름다운 야경이었고, 순간적으로 모든 고통이 싹 씻겨져 내려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얼마나 충격적이었으면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날까요. 그제야 내가 6개월 동안 정말 힘들었구나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힘든 동안에도 저에게 소소한 위로를 주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대화하는 동안은 아무런 잡념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대화 주제가 특히, 각자의 힘듦을 털어놓는 순간이라면 그보다 더 큰 위로는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병은 이제 막 들어왔기에, 사회에서 어떤 일을 겪고 들어왔으며 얼마나 힘들고 생각이 복잡한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물꼬를 트면 많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고, 그런 작은 순간들이 큰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믿음이 확신으로 바뀐 날이 기억납니다. 한 선임과 불침번을 서고 있었습니다. 전역이 정확히 100일 남았던 선임이었죠. 선임과 이야기하다가 처음으로 제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놀랍게도 선임은 나와 똑같은 힘듦을 신병 때 겪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정말 평생 잊을 수 없는 위로를 얻었습니다. 해결책을 얻은 대화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누군가가 공감해 줬다는 사실이 저를 치유해 줬습니다. 그리고 확신했습니다. 신병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마침 또래상담병이었던 선임이 전역을 앞두고 있어서 새로운 또래상담병을 뽑아야 했습니다.(재밌는 사실은, 바로 위의 선임이 기존의 또래상담병이었다.) 그때만 해도 또래상담병은 그저 명목상 존재하기만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딱히 하는 일이 없었죠. 하지만 저는 이 직책을 받아서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대장님이 소대원을 모두 모아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을 때, 저는 재빠르게 손을 들었습니다. 휴가 같은 보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저만 손을 들었고, 또래상담병이 되었습니다.
또래상담병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신병면담이었습니다. 신병들이 처음 들어오면 그들과 꼭 면담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로운 걸 시도한다고 어떤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휴가 1일도 없었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충만했습니다. 혹시나 저와 같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게 아니더라도 신병들과 미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면 좋잖아요. 내가 진심으로 한 행동들은 그런 공감에서 비롯된 사랑의 행동이었습니다.
처음에 아무런 생각과 경험이 없을 때 우린 공감할 재료가 없습니다. 나 자신을 제대로 대면해 본 적이 없다면 재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알아채지 못합니다. 대학생들은 자신이 취미가 없고 남들에 비해 뚜렷한 취향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각자의 취향이 뚜렷합니다. 내가 나를 모를 뿐이죠. 이 정도는 취미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아주 예전에 쓴 글이 있습니다.
어릴 때 제가 가장 부러워한 친구들이 누군지 아시나요?
좋아하는 색이 있는 친구들이었어요.
"넌 무슨 색깔 좋아해?"라고 물으면 1초 만에 "난 보라색!"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요.
왜냐면 나는 그런 게 없었거든요.
가만 보면 하늘색도 참 예쁜데, 보라색도 너무 이쁜 거 있죠.
그래서 친구들한테 "나는 하늘색 좋아한다!"라고 말하지 못했어요.
다른 색도 하늘색, 보라색만큼 좋아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항상 "난 잘 모르겠어"라고 말했어요.
근데 그렇다고 좋아하는 색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그냥 이 색깔도 좋고, 저 색깔도 좋았답니다.
불과 몇 년 전 제가 제일 부러워한 사람들이 누군지 아시나요?
좋아하는 일이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넌 뭘 할 때 행복해??"라고 물으면 1초 만에 "난 디자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요.
왜냐면 나는 그런 게 없었거든요.
가마 보면 교육도 나쁘지 않고, 소비자학도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서 막상 하나를 골라서 미래로 달려 나가야 할 때면,
그 정도로 좋아하는 건 아니라며 주저했어요.
그래서 항상 "난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어요.
근데 그렇다고 좋아하는 일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그냥 저는 두루두루 좋아하는 사람인 거죠.
어릴 땐 취미가 없다고 속생해 했지만,
사실 누구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나는 항상 나한테 너무 높은 기준을 세웠어요.
이 정도 좋아하는 걸로는 내가 즐기는 취미라 말할 수 없어
이 정도 좋아하는 걸로는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라고 말할 수 없어
이 정도 좋아하는 걸로는 내 인생을 걸만큼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없어
나 같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어요.
저는 그래서 이런 내 모습이 너무 미웠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책이 나에게 이렇게 말해줬어요.
네가 틀린 게 아니라고요.
생각해 보면 꼭 하나를 정할 필요가 없었어요.
우리는 왜 항상 하나의 정답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항상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으로 생각할까요.
두루두루 좋아할 수 있는 거예요.
그 정도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이 작은 깨달음이,
내 모습을 사랑하게 만들었답니다.
저는 하늘 보는 걸 정말 좋아해요. 왜냐하면 하늘엔 모든 색깔이 담겨 있거든요.
오늘은 칙칙한 회색이네요. 칙칙한 회색 덕분에 이렇게 차분한 글을 쓸 수 있었으니, 완벽한 하늘이에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만을 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직 무엇에 공감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래서 뭘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바로 내적인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면서 나를 이해하길 기다리는 건데요. 내적인 믿음에 관하여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