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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 Ing Jan 25. 2024

240125 악착같은 마음

울고, 욕하고, 또다시 시작하고

지난주 일요일에 남 모르게 비밀 고백처럼 쓴 글을 다시 읽어보았다. 지난번 폰 스크리닝에서 떨어진 이후 나는 그때 내가 버벅거렸던 것, 내가 어떻게든 말해보려고 애쓰던 그 기분, 무표정의 리크루터가 계속 생각이 났다. 그때가 내 안에서 맴돌아 나는 자기소개를 준비해 봐도 어떻게 나를 소개해야 할지 모르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영어도 싫고, 나에게 관심 가져주지 않는 곳에서 어떻게든 관심 끌어보려 노력하는 것도 싫었다. 


왜 나는 또 사서 고생을 하나.


그다음 폰 스크리닝 인터뷰 전에 자기소개를 고치고 또 고쳤다. 하지만 어떤 문장도 자신감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면접에서와 달리 나는 나에게 자신이 없어졌다. 


남편과 이야기하다 감정이 북받쳤다. 면접 준비를 못 하겠다고 울었다. 나를 달래주던 남편은 내게 물었다. "내년에 한국에 돌아갈까?" "아니" "그럼 한국에 있는 회사랑 일할래?" "... 아니" "그럼 열심히 해야지."


"이루고 싶은 게 있으면 열심히 해야지. 겨우 이만큼 하고 포기하면 안 되지. 그래야 인아답지."


내가 악착같았던 때를 떠올린다. 고등학생 때, 동아리에서 합창 지도할 때, 첫 회사에서 인정받으려 애썼을 때...

어쩌면 그 사이에 나는 나약해진 걸까? 그냥 쉽게 져버린 걸까? 지금까지 면접과 같이 그냥 잘 넘어가 주길 기대했던 걸까. 그냥 자신감이 없어진 게 아니라 그냥 악착같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닐까?


헤매던 며칠이 지나고, 미국에서 개발 공부를 시작해 취업에 성공하신 분과의 커피챗 시간이 왔다. 폰 스크리닝이 어렵고 부담된다는 말에,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


"인아씨, 폰 스크리닝에서 떨어지면 안 돼요. 이런 저도 폰 스크리닝은 항상 통과했어요. 저보다 더 경력 많고 화려한 인아씨가 다른 것도 아닌 폰 스크리닝에서 떨어지면 안 되죠."


취업하기 위해 거의 100개가 넘는 레주메를 봐왔던 일화나, 폰 스크리닝을 준비할 때 job description을 철저히 분석했던 얘기, 영어 자기소개를 누가 툭 치기만 해도 바로 나올 때까지 달달 외웠던 얘기를 들으며 나는 새삼 깨달았다. 내가 아직 덜 간절했구나.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그리고 그녀가 1년의 시간 동안 스스로 깨닫고 축적해 온 취업 팁을 공짜로 들으며 나는 내가 나약해졌다고, 그리고 내가 이 정도만 하고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적어도 저만큼은 노력해야 취업해도 떳떳할 수 있겠다.


그래 아직 질 수는 없지. 준비해서 되는 게 폰 스크리닝이면 내가 이거 가지고 좌절할 수는 없지.


그날 나는 다시 자기소개를 쓸 수 있었다. 화요일에 하나, 수요일에 하나. 인터뷰 전날에 회사별 자기소개를 새로 작성했다. 그리고 외웠다. 달달달.


화요일 인터뷰는 사실 폰 스크리닝보다는 기술 인터뷰에 좀 더 가까웠다. fullstack을 뽑는 포지션이라서 backend 관련 질문이 나왔다. HTTP status에 대한 질문, database CAP에 대한 질문. CAP는 내가 따로 들어보지는 못 한 개념이라 헤맸지만, 해당 상황 설명을 듣고, 그 경우 데이터의 일관성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나 같으면 배치 프로그램을 만들 것 같다고 대답했다. 맞는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면접관인 hiring manager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계속 긴장을 덜고 답변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수요일 인터뷰는 리크루터와 하는 폰 스크리닝이었다. 블록체인 회사였는데, 직전 팀의 경험을 잘 살려 대답했다. 물론 이 회사에 맞춘 자기소개도 득을 봤다. 자기소개와 왜 지원했는지? 두 가지 질문을 한 후 나의 질문을 물어봤다. 나는 미리 준비한 6개 정도의 질문을 물어봤다. 


둘 다 인터뷰 끝에 내게 다음 스텝을 안내해 줬다. 통과라는 뜻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미국에서의 첫 커피챗도 그 회사와의 스크리닝 인터뷰였던 것 같다. 끝에 내게 다음 스텝에 대해 알려줬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스크리닝에 한 번 통과한 적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다음 주에도 스케줄이 생겼다. 새로이 진행하게 된 프로세스는 없지만 취업은 한 번만 되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이력서를 다시 엎었다. 이제 v4다. 지원한 포지션은 100개를 넘었고, 현재 진행 중인 것은 4-5개이다. 더 연락이 올진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라도 잘 되면 성공한 것 아닌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나 싶은 마음과 함께, 그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대변하는 좋은 문장이 있어 공유한다. 이 문장을 남겨주신 분과 나를 다시 일으켜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양귀자-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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