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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u Ing Jul 16. 2024

240714 멋지게 보이고픈 3개월차

내가 모국어로 일했다면 이렇게 바보같지 않았을텐데

새 회사에 입사한 지 세 번째 달이 되었다. 세 달이면 통상 말하는 온보딩 기간이 끝난다. 지금 회사는 수습기간은 없지만 세 달을 온보딩 기간으로 두고 있다. 이번 달이 그 마지막 달이다. 이번 달이 지나면 나는 온전한 팀의 일원이 되어 있을까? 이번 한 달 동안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첫 번째 달 맡았던 작은 실험을 이제 마무리하려 한다. 실험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실험 결과를 멤버들에게 공유하고 변경사항을 적용해도 된다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실험 결과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큰 허들을 넘어야 한다. 실험 결과 리뷰 문서를 작성해야 하고 해당 문서를 발표해야 한다. 개발하고, 실험을 하는 것 보다도 내겐 더 어려운 일들이었다. 문서를 작성하는 것도, 결과를 발표하고 들어오는 질문에 답변하고, 반대되는 의견에 토론을 이어가는 것 자체도 어렵지만, 그 모든 것을 영어로 해야 하는 것은 더더욱 불편하다. 한국에서 일할 때 개발에 관한 것은 많이 논의해 봤지만, 정답이 없는 무언가를 각 잡고 발표해 본 적은 없었다. 가끔은 0과 1로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개발이 편한 것 같기도 하다.


다행히 내 첫 실험은 작고 나름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라 문서 작성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발표를 하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미팅 시간은 정해져 있고, 나 말고도 뒤에 공유할 사람이 있고, 나는 말이 빨리 나오지 않는다. 마음은 급하고, 머리는 내가 무슨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공유한 이후에 다른 멤버들이 질문을 하는 것은 더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질문이 들어오면 질문을 이해하면서 문서에 메모도 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면 감을 아예 못 잡을 때도 있다. 또 리모트 특성상 가끔 질문자의 음질이 안 좋은 경우도 있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마무리하고 한숨 돌릴 수 있었고, 내 바보 같던 모습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말이 안 되는 것을 알지만 한국어로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나는 최근 비교적 큰 실험을 하나 시작했다. 무려 개발 과정에서 3주 가까이 끌고 있었던 실험이었는데 드디어 시작할 수 있었다. 해당 PR에는 코멘트가 수십 개는 달렸다. 물론 CI에 의해 자동으로 달린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다. 큰 변경사항이긴 했지만 이것저것 확인하고 수정하느라 오래 걸렸다. 나 다음에 들어온 다른 신입 멤버와 이번 달 초 1:1하며 이 얘기를 꺼냈다. 혹시 본인의 프로젝트가 더딘 것 같다면 3주 넘게 끌고 있던 내 프로젝트를 보라고. 그 PR을 보면 아마 괜찮아질 거라고 말이다. 아무튼 스스로도 더딘 과정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던 그 프로젝트를 결국 배포했다. 후아, 드디어 털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회사는 Due date이 없다. 좀 심각한 버그는 듀가 있지만, 그 외 사소한 버그나 프로젝트는 듀가 없다. 프로젝트를 받으며 듀를 어떻게 잡아야 하냐는 내 질문에 버디는 "Due는 없고, 네가 정 원하면 잡아줄 수는 있어! 내일까지 해올래?"라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 내가 정하기 나름인 회사다. 내가 바쁘고 빠르게 일하며 빨리 끝내고 싶으면 그렇게 하면 되고, 적당히 하며 적당히 느리지 않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된다. 이건 일을 떠나 승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승진에 대해 물어봤을 때 내 매니저는 비슷하게 말했다. 네가 빠르게 승진하고 싶으면 열심히 해서 보여주면 되고,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고. 영어 학습에 관련한 고민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했다. 네가 빨리 늘고 싶으면 열심히 더 말하고 연습하면 되고, 아니면 아니어도 괜찮다고. 사실 어느 정도 수동적으로 살아온 한국인에게는 좀 쉽지는 않다. 프로젝트의 기한이 없으니 하루이틀 마음먹은 것보다 늘어진다. 나에 의해 늘어질 때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답변을 기다리며 늘어지고 한다. 정해진 기한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의 답변을 독촉할 만한 아주 편하고 정당한 근거도 없다. 가끔은 그냥 기다리다 정말 아닌 것 같으면 조금 재촉한다. "혹시 시간이 된다면 내가 지난번에 물어봤던 거 한번 더 봐줄 수 있어? 내가 push 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리마인더로 얘기하는 거야~." 자율적인 만큼 내가 스스로 잘 제어해야 하는 회사이다. 휴, 가끔은 누가 그냥 언제까지 하라고 정해줬으면 좋겠다.


지난 한 주는 다른 팀원과 페어로 아이디에이션을 하는 주였다. 프로덕트의 어떤 개선사항이든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가져와 발표하면 되었다. 나는 팀에 합류한 초기에 이와 같은 프로덕트 아이디에이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뻤다. 그리고 실제로 멤버들이 가져온 아이디어가 프로덕트에 언젠가 어디선가 반영되는 것도 보았다. 빨리 내 아이디어를 보여주고픈 생각에 나도 아이디에이션 기회가 있기를 바랐고, 매니저에게 나도 참여하고 싶다고 얘기했다. 그렇게 내 차례가 왔다. 사실 까먹고 있다가 발표 전 주에 문득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와 페어인 멤버는 발표 한 주 전에 아이디에이션을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니 어떤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야 할지 막막했다. 다른 팀원들이 지난번 공유했던 아이디어들은 너무 멋지고 합리적으로 보였는데, 내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들은 사소하거나 뜬구름 잡는 이야기뿐이었다. 페어로 진행한 다른 팀원은 사소해도, 현실성 없어도 괜찮다고 얘기해 주었다. 마음의 짐을 많이 내려놓고, 겨우겨우 아이디어 제안 문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그 일주일 동안 진행한 미팅은 정말 솔직히 쉽지 않았다. 내가 말할 거리를 준비해갈 수 있는 미팅과는 달리 만나서 생각을 펼치고 토론해야 하는 미팅은 정말 나를 진땀 나게 했다. 그런 형식의 미팅이 익숙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언어적인 한계가 컸다. 내가 이렇게 내 생각을 제대로 전달 못하는 바보였나 싶을 때도 많았다. 아이디에이션을 위한 미팅을 하고 나면 항상 등과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우리가 만든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날이 왔다. 문서에 작성한 내용을 읽으면 되는 거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나름 문서도 잘 썼다. 그리고 미팅 들어가기 전에 한 번 읽어보기도 했다. 꽤 괜찮았다. 하지만 막상 발표를 시작하니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하... 떠는 모습 보여주기 싫은데, 멋지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마음과는 달리 나는 더듬거리기도 하고 입이 편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입에 붙지 않은 영어 발음은 바보처럼 나왔다. 그래도 떠는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 계속 웃으며 여유로운 척을 했다. 후 드디어 내 파트가 끝났다. 나머지는 페어 멤버에게 넘겼다. 


아이디어와 발표 스킬에 대한 피드백 모두 호평이었다. 페어로 진행한 멤버는 내게 멋진 발표였다고 했다. 나 또한, 아이디에이션이 처음인 나를 잘 이끌어준 동료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무사히 잘 끝냈지만 기운이 쭉 빠져버렸다. 과연 나는 언제쯤 영어로 이런 것들을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어쩔 때는 영어로 꽤 의사소통을 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런 때가 오면 영어로 일하는 것이 막막하게 느껴진다. 1년을 일하면 괜찮아질까, 5년을 일하면 좀 프로페셔널해 보일 수 있을까. 10년을 일하면 그래도 영어로 일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게 될까? 모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타국에서의 일은 생각보다 더 쉽지 않다.


좋은 일도 있었다. 매니저와 1:1을 하던 중 매니저가 내게 새로운 프로젝트 하나를 제안해 줬다. 네가 좋아할 만한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면서 말이다. 정말 100퍼센트 내 취향 저격이었다. 게다가 새로운 프로젝트를 내가 혼자 맡아 시작하는 것이라 내 프로젝트 리딩 능력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저는 지난 두 달 동안 네가 했던 일들을 보면서 이 프로젝트가 생각났다며, 좋아할 줄 알았다고 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되어 정말 기쁘다고,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내게 추천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내가 했던 것들을 관심 있게 보며 딱 맞을 일을 추천해 주는 매니저라니! 정말 행복해지는 날이었다. 


미국에서 생활한 지 반년이 흘렀다. 기대했던 해외 생활과 해외 회사 생활은 즐겁지만 때때로 버겁기도 하다. 가끔은 밥을 안 해 먹어도 배달시키거나 10분 걸어가서 먹을 수 있는 생활이 그립고, 마음 터놓을 수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이 그립다. 날 때부터 썼던 언어로 의견을 주저하지 않고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이 그립고, 기쁨도, 슬픔도, 아쉬움도 마음먹은 대로 100퍼센트 표현할 수 있던 자유가 그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해외에서, 특히 미국에서의 삶과 일을 지속하고 싶다. 없으면 없는 대로 만들어 먹는 것도 아직은 재미있고, 주말마다 광활한 자연을 탐험하는 것도 즐겁다. 회사에서는 정말 한국과는 다른 경험을 많이 해본다. 다양한 장점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일하며 일에 정답은 없다는 생각도 들고, 나 또한 나를 어딘가에 맞추기보단 내 장점을 또렷이 만들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세계적인 프로덕트의 일원으로 일하며 프로덕트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도 꿈만 같다. 


나는 매니저에게 언제쯤 온콜(일주일 동안 팀의 긴급 요청을 처리하는 사람)을 맡을 수 있는지 물었다. 온콜까지 맡게 된다면 정말로 이 팀의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일원이 될 것 같았다. 8월에는 온콜을 맡기로 했다. 첫 온콜을 맡게 되면 정말 많이 헤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이번에 헤맨 것들에는 익숙해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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