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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까만 오른발 Sep 15. 2022

내가 요즘 싱크대도 만들어야 되고 좀 바빠

싱크대가 좋다

JTBC 토일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 중'

  우리 집안 분위기와 비슷한 염가네, 그리고 싱크대 일을 하는 구 씨. 정말 내 경험과 비슷한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단지 구 씨의 멋짐과는 거리가 먼 나.


  20대 때 아르바이트로 딱 '나의 해방 일지'에 나오는 규모의 싱크대 공장에서 일을 해 봤다. 사장님 혼자 운영하시는 싱크대 공장이었다.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먼지 가득한 공장 안에서 싱크대를 만들어봤고 포터 1톤 트럭을 몰고 나가 설치해봤고 A/S도 나가봤다. 힘들기는 했지만 대놓고 땀을 흘려도 괜찮았고 점심밥도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새로운 싱크대를 설치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싱크대를 철거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오래되고 낡아 문도 잘 닫히지 않고 기름때가 군데군데 낀 싱크대를 장도리로 뜯어낸다. 그 싱크대에 묻어있는 사람의 냄새가 난다. 오랫동안 묵은 냄새가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다. 비록 낡았지만 정갈하게 닦인 싱크대를 보면 연식이 오래된 올드카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만 효용성이 다했을 뿐 싱크대를 가득 채웠을 그릇과 식료품과 잡동사니가 왔다 갔다 하거나 구석에 박혀 오랫동안 있었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이미 습기에 부푼 합판과 빛을 읽은 코팅은 다시 살아내기 힘든 상태를 보여준다. 그리고 새로운 싱크대를 기다리는 주부님의 설렘 가득한 눈빛이 내 뒤통수를 찌른다. 과감하게 기존 싱크대를 뜯어내고 새 싱크대를 설치한다. 


  새 싱크대의 설치를 마무리하고 싱크대를 설치하면서 생긴 톱밥과 먼지를 시너를 묻힌 수건으로 깨끗하게 닦아낸다. 정갈하고 깔끔한 새 싱크대가 놓인 부엌은 형광등의 빛 밝기부터 달라 보인다. 고객님의 만족 가득한 미소를 보며 뒷정리를 하고 나온다. 신축 아파트에 설치한 싱크대를 점검하기 위해 맨 꼭대기 층부터 1층까지 하루 종일 계단을 타고 내려온 적도 있다. 전동 드라이버와 여분의 피스를 주머니에 넣고 걸어 내려오며 싱크대를 설치하면서 생긴 유격을 없애고 수평을 맞추고 더러운 부분을 닦아내는 작업도 해봤다. 


  신축 아파트의 새로운 인테리어와 널찍하고 깔끔한 거실과 방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이런 아파트에서 내 새로운 삶을 꿈꿔 봤다. 아직도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있지만 그때에는 꿈을 꾸며 계단을 내려오다 보니 정말 그 꿈을 현실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여전히 그 꿈을 꾸고만 있다.


  새 싱크대를 만드는 작업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아르바이트 기간을 모두 마치고 나서 임금 체불이 있었고 노동부에 신고도 해봤기에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 씨의 모습을 보며 그때에 내 기억을 다시 감상해보니 소소하게 재밌던 순간들도 있었다.


  이렇게 글감으로도 써먹을 수 있어서 마냥 헛수고한 것만은 아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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