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는 금쪽이라 포기해버린 나의 편협한 생각.
나도 학교에 다닐 때는 수업시간에 몰래 먹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이 아이들도 그 재미에 요즘 빠졌나보다.
그러면 걸리지나 말던지.
양 볼이 통통해져서 입술에는 침을 잔뜩 묻히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 눈치를 본다.
내가 빨간 펜을 입에 가져다 대며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면 달달한 냄새가 진동한다.
"간식은 수업 끝나고 교실 밖에 나가서 먹으라고 했지?"라고 좋게 얘기하려 이를 악물고 얘기해도 아이들은 절대 안먹었단다.
추궁에 추궁을 거듭하면 뒤이어 나온 진술이 얘도 먹었단다.
나 혼자만 죽을 수 없어 같이 죽는다는 본능은 초등학생 때부터 생기나보다.
그렇게 내가 이 학원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고나서부터 나와 티격태격하던 4학년, 5학년 여자아이 둘이 있다.
목소리도 너무 크다.
내가 이성을 만날 때부터 거르는 사람은 목소리가 너무 크고 경박한 사람이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자기 감정에만 충실해 목소리조차 제어하지 못하는 안하무인의 인간.
이걸 본성이라 여기며 자기는 어쩔 수 없다며 고래고래 내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이 살아있는 렉카들의 소리를 내가 더는 듣지 않으려면 내가 말을 걸지 않는 방법 뿐이었다.
과제를 주고 기존 수업 시간보다 20분 정도 빨리 내보냈다.
그냥 나가라 했다.
칭찬도 일절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다정하다.
영어가 쉽고 재밌는 과목이라는 속성만 인지시켜주면 되는 연령이라 생각해서 최대한 친절하게 대한다.
하지만 딱 두 아이에게만 차별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할 정도로 했다.
안그럼 내가 그만 둘 생각으로 대했다.
그렇게 3일 정도 했을까.
어제는 이 아이들이 정말 조용했다.
그리고 과제도 열심히 수행했다.
심지어는 다른 학생들이 잡담을 하는데도 이를 악물며 참는 모습이 보였다.
딱 둘이 같은 날에 그렇게 예쁘게 행동을 했다.
과제를 검사받으러 나에게 왔을 때 나는 내가 보았던 모든 감동적인 순간에 대해 얘기했다.
교실에 들어올 때도 발을 쿵쾅대며 구르지 않고 조용히 들어와서 자리에 차분히 앉았다.
친구들과 얘기하고 싶을 때도 나를 응시하며 입을 꾹 닫고 '봐봐, 나 목소리 안내고 공부만 한다?'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공부만 했다.
심지어 과제도 세 장을 풀고 나오라 해도 두 장만 하고 나오며 오늘 여기까지만 하면 안되냐며 징징대던 아이들이 꼬박꼬박 눌러쓴 글씨로 세 장을 채우고 나왔다.
두 아이가 똑같이 시간차로 나에게 감동으로 펀치를 때려왔다.
신체적 접촉을 제한하고 이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감사를 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눈물이 날 뻔 했다.
사람 안 변한다는 걸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꾸준히 불변의 법칙으로 삼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변할 수 있으며 그 감동은 엄청나다는 걸 직접 보여줬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낳아보지 않는 내가 느낄 수 있는 엄청난 인류애였다.
오늘 출근할 때는 이 두 아이들을 위해 간식을 사 가야겠다.